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바다가 천리 길, 사르데냐 섬의 마모이아다가 튀는 이유(1)

블로그 운영자가 쓴 와인칼럼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24. 9. 11. 01:29

본문

 

봄 어느 날, 나의 이메일함은 발신자가 사르데냐 섬인 초대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순간 내 마음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가 고래지식을 속사포처럼 쏟아 놓을 때 장면이 떠올랐다. 그녀 주위로 푸른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가 오버랩되 듯 내 마음은 에메랄드 빛 지중해가 찰랑대는 사르데냐의 백사장이 비쳤다. 하지만 발신주소를 검색창에 띄우자마자 검색된 영상은 모래사장에서 1백 Km나 먼 마모이아다 산촌을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다 얄궂게도 설봉사진도 보여주고 있어 지중해 섬은 모두 온화한 기후일거란 나의 짧은 기상지식이 발각 났다.

 

섬의 섬, 마모이아다 Mamoiada

 

사르데냐 섬은 제주도의 열 배나 크고 지중해에 떠 있는 섬 중에서 면적이 두 번째로 넓다. 이탈리아 여름 휴양지 순위의 상위를 점유할 정도로 이탈리아인의 영원한 피서지다. 휴양섬인 특성상 공항은 해양 리조트와 접근성이 좋은 해안도시를 따라 빙 둘러 지어졌다. 여행목적지가 마모이아다라면 일부러 해안 루트로 돌아가지 않는 한 바다 구경은 비행기 이착륙 때만 가능하다.

 

                             <마모이아다 마을 걷다 보면 곳곳에 마무토네를 묘사한 벽화가 눈에 띈다>

 

마모이아다는 사르데냐 중동부를 아우르는 누오로 지방(군, Province)을 구성하는 열 군데 자치도시(코무네) 중 하나다. 누오로 지방은 로마문화가 주류인 고대 이탈리아 문화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로마가 자궁에 막 착상했을 무렵 사르데냐는 이미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를 거치면서 돌멘, 암굴묘지 같은 거석문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기원전 16세기에서 3세기 중반에 섬을 지배하던 부족은 누라기 문명을 낳았다. 누라기란 누라게 nuraghe란 돌탑에서 온 단어로 돌로 쌓은 만든 돔 모양의 성채다. 이런 누라기 군이 섬 전체에서 1만여 곳이 발견되며 이는 3km마다 한 개 꼴로 누라기가 있는 셈이다. 누오로 지방은 누라기 문명의 본거지로 일명 누라기 계곡으로 유명하다. 발견된 누라기 군이 30군데에 이르며 도무스 데냐 나스(Domus De Jenas)란 선서시대 암굴 묘가 3백여 개에 이른다.

 

<요정의 집이란 뜻을 지닌 도무스 데 야냐스 암굴 묘는 누오로 전역에서 3백여 개나 발견된다>

 

마모이아다의 랜드마크

 

마모이아다는 1천 미터의 연봉이 둘러싼 분지에 자리 잡고 있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강풍이 산병풍에 부딪혀 기세가 한 풀 꺾인 바람은 분지 쪽으로 흘러들어 가 달궈진 대기를 식힌다. 인구대비 와인 가구 비율이 높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인구가 2천5백 명인데 2백여 가구가 가내 양조시설을 구비하고 있어 와인 자급도가 높다. 여기에 병입 와인을 제조 및 판매하는 33군데의 와이너리까지 합하면 주민 10.8명당 한 개 꼴로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다

 

포도밭 면적은 350여 헥타르로 해발이 7백에서 1천 미터의 산등성이에 흩어져 있다. 굽이치는 산등성이를 돌아가다 보면 지중해 관목, 코르크나무, 올리브, 목초지, 누라기 잔해, 포도밭이 스친다. 밭 가장자리는 코르크 나무 열이 심어졌고 울타리 구실을 한다. 연령이 20살이 넘는 코르크나무에서 벗겨낸 코르크는 장인의 솜씨를 만나 사르데냐의 토속 관광상품으로 변신한다. 코르크 채취 주기는  10년에 한 번인데 막 껍질이 떨어져 나간 부분은 상처를 입은 듯 빨간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마을을 걷다 보면 마무토네 축제를 묘사한 벽화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마무토네의 본 뜻은 가면 또는 이 가면을 쓰고 가무하는 자를 뜻하나 지금은 전통 축제로 자리잡았다. 축제는 마을 수호성인인 산 안토니오를 기리는 1월 17일에 막이 오르는데 검은 탈과 양털 옷을 입은 마무토네 무리가 도심을 행진한다. 이들은 일정한 박자로 걷기와 신체를 흔드는 동작을 반복하는데 몸을 흔드는 순간 등에 달린 수십 개의 종이 일제히 울린다. 원시적인 복장과 무거운 발걸음은 누라기 탑을 쌓은 부족과 연관이 있어 보이나 사실 마무토네 출현시기와  춤의 의미는 알려진 바 없다. 탈은 마모이아다 상징으로 정착해 지역 내 와인과 농산물 포장에는 탈 마크가 부착되어 있다.

 

마모이아다의 드림와인- 카노나우와 가르나짜

 

마모이아다는 젊은 층이 중장년 인구를 추월한다. 사르데냐 농촌을 피폐화하는 젊은 층의 농촌 탈출 위기는 여기서 별나라 이야기다. 유수의 양조대학과 와이너리 수습을 마친 젊은 두뇌들이 귀향해서 배운 지식을 현지 와인산업에 접목시키고 있다. 포도 수확철의 흔한 풍경인 고용된 농부들이 추수하는 장면을 마모 이아다에서는 볼 수 없다. 생산자들끼리 팔을 걷어붙이고 돌아가면서 수확일을 거든다.

<마모야 협회 Associazione Mamoja' 로고. 협회소속 회원이 만든 와인은 본 로고가 부착 돼 있다>

 

2천 년도에 마모야 협회(Associazione Mamoja')가 결성되었는데 그 배후는 이렇다. 사르데냐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은 카노나우 cannonau다. 섬의 와인산업에 막대한 비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품종의 재배와 양조를 규제하는 법은 카노나우 디 사르데냐(Cannonau di Sardegna DOC) 규정이 유일하다.

 

포도밭의 95%를 카노나우가 차지하는 마모이아다는 거대한 규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이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빠진다. 이에 회원들은 보조 품종 조항을 폐지하고 카노나우 함량을 100%까지 끌어올리는 자체 규정을 마련한다. 자연 효모만 사용하고 포도는 알베렐로 바쏘로(alberello basso)로 키우는 등 타 지역 카노나우와 차별화를 두었다.

 

유기농 전문가에게 의뢰해 전체 포도밭에서 유기농 밭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또한, 협회 로고를 마무토네로 지정해 회원들한테 부착을 의무화했다. 현재 마모이아다가 원산지인 와인은 카노나우 디 사르데냐 Doc 외에  IGT(IGT Isola dei Nuraghi, IGT Barbagia, IGT Provincia di Nuoro)규정에 따라 제조되고 있다. 협회원들은 마모이아다 와인에만 효력이 미치는 등급이 신설될 날을 고대하고 있다.

 

 

바다 말고도 마모이아다에 없는 것이 또 있다. 사르데냐가 자랑하는 화이트 와인의 정수, 베르멘티노를 말한다. 대신 그라나짜(granazza)가 빈 공간을 채운다. 그라나짜와 카노나우는 유전상 동일하나 자연의 불가항력에 의해 적포도와 청포도로 갈라졌다. 잎 모양이 똑같고 성장패턴도 비슷해 열매가 열려야 적포도인지 청포도인지 구분이 갈 정도다. 이런 연유로 카노나우 와인은 그라나짜가 섞여 있기 마련인데 마모야 협회 출범 이후 주품종에서 제외시켰다.

 

무용지물 취급받던 그라나짜가 재기한 데는 주제페 세디레수 와이너리의 살바토레 역할이 크다. 그는 그라나짜만으로 양조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를 맛본다. 마모이아다에 어느 누구도 화이트 와인을 만들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드와인 양조법을 적용해 품종 테스트를 반복하는 동안 그라나짜가 장기 침출 조건에 놓이게 되면 놀라운 진면목을 발휘함을 알게 된다. 즉, DNA에 잠재해던 레드와 화이트 속성이 침용을 통해 발현되면서 오렌지 와인 기질을 얻게 된다는 거다. 타닌과 보디, 복합적인 풍미를 지닌 오렌지 와인은 업계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작년에 새로 조성된 10헥타르 밭 중 3헥타르가 그라나짜가 차지할 만큼 인기가 높다. 오렌지 와인과 나란히 화이트 와인도 선보이고 있다.

                                                     <Cantina Sannas의 Maria Abbranca 오렌지 와인>

 

사르데냐는 백세가 넘는 노령인구가 2백여 명이나 살고 있는 세계적인 장수섬이다. 이에 질세라 카노나우도 수령이 일흔 살은 보통이고 백 살이 넘는 고목이 흔하다. 고목들이 자라는 모습은 분재와 흡사하고 이를 두고 키 작은 나무란 뜻의 알베렐로 바쏘(alberello basso)라 하는데 태양이 강렬하고 여름이 극도로 건조한 풍토가 낳는 재배법이다. 자란 나무가 성인 무릎에 닿을 정도로 작기 때문에 물을 적게 빨아들이며 그루 당 결과율이 2kg 내외다.

 

<주제페 세디레수의 알베렐로 바쏘로 키운 카노나우. 경사가 급한 언덕에서 선호되는 재배법이다. 종종 멍에 진 황소가 밭을 가는 풍경도 목격되는데 밭주인에 따르면 관리와 비용이 높아 페라리 스포츠카 소유하는게 훨씬 경제적이라고 할 정도다>

 

바다가 천리 길, 사르데냐 섬의 마모이아다가 튀는 이유(2)로 이어집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