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안테프리마가 열린 피렌체 전시장. 끼안티 새 빈티지 160종, 모렐리노 디 스칸사노 새 빈티지 70종이 선보였다>
끼안티 와인은 매우 토스카나적인 와인이다. 광활한 생산지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끼안티 와인은 토스카나 곳곳에 침투해 있다. 피사 탑 구경을 하거나 팔리오 경마를 보러 시에나에 가더라도 심지어 몬테풀차노에 온천 여행 중이라도 지방마다 특색 있는 끼안티를 맛볼 수 있다. 차라리 끼안티가 안 나오는 도시를 찾는 게 더 쉽다고나 할까.
끼안티 와인이 토스카나의 굵직한 역사와도 맞물려 있음도 이유로 둘 수 있다. 피렌체의 자유무역과 금융업이 번성할 무렵, 유력한 가문이나 여러 길드 조합은 와인이 황금을 낳는 거위임을 감지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포도 농업이나 양조 지식은 수도원이 향유하는 신성한 분야였으나 피렌체의 실세들은 지식을 담 밖으로 끌어내 이들의 세속적인 물욕과 결합시켜 부를 쌓는다. 피렌체 곳곳에는 주점과 와인 창고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피렌체의 3대 길드 중 한 분파인 와인 길드(Arti dei Vinattieri)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메디치 가문은 와인을 잘 활용해서 정치세력을 돈독히 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적으로는 끼안티 와인을 즐겨 마셨으며 가문이 투자한 와인 무역에서 나온 이익은 금고를 살찌웠다. 또한, 메디치 지도자들은 카리스마를 확고히 하기 위해 와인을 활용할 줄 알았다. 피티 궁(Palazzo Pitti) 이전에 메디치가의 청사이기도 했던 팔라쪼 베끼오 궁 개조 때 안뜰에 세워진 기둥에 포도송이 부조를 새기게 했다. 16세기 코시모 1세가 외국대사를 알현하거나 공식업무를 수행하던 오백인의 방(Salone dei Cinquecento) 천장에는 끼안티 클라시코의 상징동물인 검은 수탉과 베르나차 디 산지미냐노의 알레고리화를 장식해 넣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끼안티 와인은 특정지역의 와인보다는 지명에 불과했다. 1398년 고문서는 끼안티 와인을 붉은색이 나는 와인이란 뜻의 베르밀리오(Vermiglio)라 했다가 어떤 문서는 베르나차(Vernaccia)로 기록해 놨다. 현재 베르나차는 품종명이자 동일한 품종의 와인을 아우르는 단어지만 중세 토스카나에서는 베르나차가 화이트 와인을 의미했다.
끼안티는 끼안티 지역이 아닌 곳에서 나온다?
레드와인도 됐다가 갑자기 화이트 와인으로 둔갑하는 끼안티의 불투명한 과거, 여기에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이 곁들여지면서 혼란은 가중된다. 둘 다 토스카나가 원산지고 끼안티란 공통어가 일으킨 불편함이다. 토스카나 현지인한테 지도를 펼쳐 보이며 끼안티의 위치를 물으면 손가락은 남 피렌체와 북 시에나 중간의 어느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끼안티 클라시코 지역이다. 끼안티 클라시코의 외곽 즉, 변두리에서 끼안티 와인이 나오므로 끼안티 와인은 끼안티 아닌 곳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혼란은 끼안티 와인의 최대 고객인 메디치가문과 연관이 있다. 1716년 코시모 3세 대공은 토스카나 3대 와인을 지정하고 와인별로 생산지역 경계는 물론 보호규정을 포함하는 칙령(Bando)을 포고한다. 이때부터 끼안티는 지명뿐만 아니라 와인 원산지로 묶인다. 이 칙령으로 시에나와 피렌체 사이에 있는 4군데 마을(라다 인 끼안티, 그레베 인 끼안티, 카스텔리나 인 끼안티, 가이올레 인 끼안티)에서 나온 와인만이 원칙적으로 끼안티 와인이 될 수 있었다. 20세기 초엽 이 지역은 원산지, 또는 원조란 뜻의 끼안티 클라시코 지역으로 따로 분류된다.
19세기에 들어 끼안티 와인은 다른 와인에 비해 좋은 가격에 팔려 나갔도 판매량은 3배로 뛰었다. 1932년 이탈리아 정부는 늘어나는 특수를 감당하기 위해 칙령에 변경을 가한다. 경계선을 피렌체, 시에나, 아렛조, 피스토이아, 피사, 프라토 지역으로 확장했고 결국에 끼안티는 7개 지역을 포함하는 대식구를 거느리게 된다. 추후에 변경이 가해지기는 했으나 지금의 끼안티 지역과 거의 일치한다. 1996년 끼안티 클라시코가 독립해서 자체 규정과 협회를 조직한다. 이로써 키안티는 원조가 빠진 끼안티로 남게 된다.
끼안티 지역
일반 끼안티와 7군데 세부지역(Subzone) 끼안티로 나뉜다. 일반 끼안티는 범용이란 뜻의 끼안티 제네리코(Chianti Generico)라고도 하는데 7군데 세부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다. 끼안티는 광범위한 Docg급 와인이라 각 세부지역마다 단위 협회가 있고, 끼안티 와인 협회가 단위 협회를 총괄하는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단위 협회는 개별 와인규정을 갖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와인품질을 통제한다.
세부지역은 다음과 같다- Chianti Colli Aretini, Chianti Colli Fiorentini, Chianti Colli Senesi, Chianti Colline Pisane, Chianti Montalbano, Chianti Montespertoli, Chianti Rufina
허용품종
끼안티 와인은 19세기 중반 베티노 리카솔리(Bettino Ricasoli) 후작이 완성한 끼안티 포뮬러(Formula di Chianti)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산조베제로만 양조하던 끼안티의 맛은 다소 거칠고 뻑뻑한 느낌이 있었는데 후작은 유연한 맛을 주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거친 후 포뮬러를 완성했다. 산조베제 풍미 개선에 적합한 품종과 블랜딩 비율이 핵심인 포뮬러는 산조베제 70%, 카나이올로 15%, 말바시아 비안카 15%로 정했다.
포뮬러는 와인시장과 입맛에 맞추어 여러 번 변했다. 모든 끼안티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기본틀은 다음과 같다. 주품종은 산조베제이며 함량은 병 당 무조건 70%를 초과해야 한다. 보조 품종은 무려 87개나 있으나 가장 많이 블랜딩 되는 품종은 말바시아, 트레비아노 토스카나, 콜로리노, 카나이올로,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메를로를 들 수 있다. 화이트 품종일 경우 최대 10%를 초과할 수 없고 국제 품종은 최대 15%까지만 섞을 수 있다.
품종별 특징
산조베제는 재배가 까다로운 단점이 있으나 지역별 차이가 심한 이탈리아 자연환경에 잘 적응한 탓에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다. 양조학 측면에서도 탁월한 적응력을 발휘해 스푸만테, 로제, 디저트, 드라이 맛의 와인 등 어떠한 스타일로 만들어도 품질의 균일과 아로마의 신선도를 유지한다. 밭 면적당 산출량 제한, 껍질과 주스의 접촉시간, 오크 숙성기간을 조절하면 가볍고 캐주얼한 스타일부터 묵직하고 집중된 풍미의 변주를 낼 수 있다. 타닌과 산도가 높지만 생산자의 역량과 경험에 따라 이들의 강약과 뉘앙스가 천차만별이다.
다음은 생산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블랜딩 품종이며 허용량은 최소 20%, 최대 30%로 정해져 있다.
카나이올로(Canaiolo)- 타닌을 부드럽게 한다
콜로리노(Colorino)-껍질에 과분층이 두껍고 검붉은 색이 돈다. 와인색을 짙게 한다.
트레비아노 토스카노-산미와 식감을 높인다
말바시아 비안카 룬가 델 끼안티(Malvasia Bianca Lunga del Chianti)-아로마를 높이고 무거운 느낌을 완화한다.
<와이너리 소개. 좌측부터 Marzocco Di Poppiano, Fattoria di Poggiopiano-Galardi, Fattoria San Michele a Torri, Frescobaldi, Tenuta Coeli Aula, Torre a Cona, Vecchia Cantina di Montepulciano>
타입과 고베르노 발효법
고베르노 발효(Governo all'uso Toscano)는 산조베제 식감을 부드럽게 하고 향미를 높이기 위해 애용되던 양조법이다. 지금도 이런 용도로 사랑받고 있으며 규정에는 고베르노 한 끼안티는 생기가 돌고 원만한 맛을 낸다고 했다.
잘 익고 건강한 포도를 일찍 수확해서 6주일 건조장으로 옮겨 말린다(아파시멘토). 정상적으로 수확한 와인이 발효가 끝나면 지게미를 걷어내고 오크통에 옮긴다. 여기에 건조한 포도송이를 압착한 모스토를 붓고 재 발효를 일으키는데 보통 수확 이듬해 봄이면 발효가 끝난다.
끼안티 타입은 안나타(annata), 수페리오레(Superiore), 리제르바(Riserva)가 있다. 안나타 타입은 수확한 다음 해 3월 1일부로 판매가능하다. 예외적으로 끼안티 루피나와 끼안티 콜리 피오렌티니 안나타는 오크 숙성을 의무로 하며 시판일은 수확 이듬해 9월 1일부터 가능하다.
수페리오레는 안나타와 리제르바의 중간 캐릭터를 지닌다. 최소 1년 숙성하며 수확한 다음 해 9월 1일부터 판매된다. 리제르바 타입은 침용과 오크 숙성기간이 최소 24개월로 늘어난다.
끼안티 타입과 개별 숙성기간을 정리한 테이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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