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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와인 여행> 중세 모습을 되찾은 언덕 마을, 미식 핫플레이스로 뜬다

블로그 운영자가 쓴 와인칼럼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24. 8. 2.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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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텔로 디 포스티냐노 마을. 마을형체는 9~10세기 무렵에 등장했다고 하며 뾰족한 지붕 위로 감시 탑이 솟아있고 그 밑으로 돌집들이 삼각형 구도를 이루는 전형적인 중세마을이다>

 

전통가옥과 언덕 마을을 모티프로 한 사진예술로 독보적인 경지에 오른 노만 카버 주니어(Norman Carver Jr.)가 출판한 사진집 중에 Italian Hilltowns가 있다. 작가는 사진집의 표지로 이탈리아 움브리아주의 카스텔로 디 포스티냐노를 선정했다. 그리고 낙점한 이유를 '이탈리아 언덕 마을의 전형성을 보여준다'로 들었다. 책 출판은 1979년도에 있었지만 사진 촬영 기간은 이보다 12년 앞선 1967년도로 작가가 이탈리아 여행 중에 작업한 것들이다. 원판과 최근에 찍은 최신판을 포개면 두 사진의 윤곽선이 거의 일치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원본에 실린 건물들은 53년 전 것으로 비록 자연 퇴화로 인한 노후와 퇴색함이 역력함에도 불구하고 보존 상태가 완벽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사진이 일으키는 일시적 착각일 뿐. 마을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파괴와 소생을 왔다 갔다 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카스텔로 디 포스티냐노( Castello di Postignano. 이하 포스티냐노)는 지형의 90% 이상을 산과 언덕이 차지하는 움브리아주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녹색공간의 우월함은 움브리아를 두고 이탈리아 허파란 별칭을 따라다니게 했고 담양과 춘천 등 17군데 한국 도시도 가입한 슬로시티 국제연대 본부를 유치하고 있다. 포스티냐노의 형체는 이탈리아가 고성 건축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9~10세기 무렵에 등장했다. 뾰족한 지붕 위로 감시 탑이 솟아있고 그 밑으로 돌집들이 삼각형 구도를 이루는 마을을 첩첩 산이 두르고 있다. 이러한 은둔적인 위치와 마을 구조는 자연발생적이다. 일찍부터 정주하던 주민들이 그들의 생활방식에 맞게 그때그때 필요한 시설물을 확충한 결과다. 포스티냐노는 아시시, 스포레토, 폴리뇨, 노르차 같은 동부 움브리아의 부유한 자치도시가 둘러싸고 있어 일찍부터 교통 요충지로 떠올랐다. 이러한 천혜의 위치를 십 분 발휘해 농업, 철가공 및 섬유업이 번성했다.

 

 

노만 카버 주니어가 이곳을 방문한 1967년은 지반 침하 조짐이 역력했고 집 기초가 불안정해지자 주정부가 주민 이주 명령을 내린 직후다. 이어 1997년에 강진이 발생했고 이는 도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황폐화를 초래했다. 똑같은 참사가 아시시 대성당에도 덮쳤는데, 조토와 치마부에 마에스트로가 완성한 프레스코 성화를 산산이 조각낸 주범이기도 하다.

 

<산 로렌조 성당은 문화센터로 기능이 바뀌었으며 각종 음ㄴ악회, 연극, 퍼포먼스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지진 엄습에 앞 선 1990년대 초입. 두 명의 건축가가 합작한 미르토 MIRTO Srl란 건축회사가 마을 복원에 나섰다. 복원 설계도 기술검사와 복원 승인이 떨어지자마자 이들은 마을 성인에 봉헌한 성 로렌조 성당 복구작업에 나섰다. 16세기 중앙 제단화를 재현하던 중 발생한 지진은 제단을 허물어 트렸고 그 와중에 벽안 쪽에 끼어있던 프레스코화가 드러났다. 제단화보다 1백 년 앞서 제작된 십자가 상이 세상 공기를 쐰 것은 잠시. 13,420개 조각으로 부스러졌고 복원사들이 달려들어 맞추는데만 3년이 걸렸다고 한다. 본모습을 되찾은 성당은 문화센터로 용도가 바뀌었으며 프레스코화를 무대 배경 삼아 각종 음악회, 연극, 퍼포먼스가 열리고 있다.

 

뜻밖의 강진으로 설계도를 다시 손 봐야 했다. 지진이 재연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 하에 구조 설계를 내진구조로 변경했다. 새 설계도가 승인을 얻는데 10년이 걸렸고 2007년에 재개한 작업은 2014년에 종결되어 번창했던 중세도시의 모습을 되찾았다.

 

면적이 상암 축구장의 60%밖에 안 되닌 초미니 마을

 

포스티냐노 여행의 출발 점은 산 허리춤에 자리 잡은 중앙로다. 와인 바, 기념품 가게, 레스토랑, 호텔, 성당, 박물관 같은 방문객의 필요충분조건은 이 거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출발점을 어디로 하던지 마을 한 바퀴를 도는 데 30분이 채 안 걸린다. 한 켠에는 당구장도 있고 학교도 복원해 놨으나 거주민 중에 아동이 있는 가정이 없어서 휴교 상태다.

 

마을로 가는 수단은 엘리베이터와 산비탈을 따라 지그재그로 엇갈림 배치한 돌계단이 전부다. 원래 말이나 사람 통행을 우선시한 중세 길을 재현했기에 모터 장착한 수단은 접근이 불가능하다. 복원한 집은 호텔로 활용되고 있으며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어 일명 분산식 호텔이라 한다. 호텔 키를 열고 들어가면 현대 건축이 주는 규격화된 느낌보다는 가정집에 초대받았다는 아늑한 감성이 와닿는다. 주택은 일반인에게 분양도 하고 있으며 실제로 가구가 점유한 집도 있다.

 

 

 

포스티냐노는 건축가 없는 건축물이란 별명을 듣고 있다. 허물어진 마을을 다시 일으키는데 건축가 업무의 대부분이 원주민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일이었다. 사람들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기억조각에 의지해 옛 마을 퍼즐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돌멩이 파편이나 깨진 자갈이라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제 자리에 끼워 맞췄다. 면적이 1헥타르의 60%밖에 안 되는 좁고 긴 공간을 60여 채의 집이 빼곡히 들어차 있지만 전혀 답답하지 않다. 구조를 엇갈리게 배치해 집집마다 조망권을 누리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강진의 여파로 파괴되었던 한 쌍의 성당 벨을 1999년 다시 제자리에 매달았다. 종을 주조한 곳은 바티칸 시국이 추천한 곳으로 벨을 세기에 걸쳐 제조해 오고 있는 이 분야의 일인자다.

<수도원으로 이용되던 가옥을 복원하던 중 프레스코화가 발견되었다. 이과정에서 벽난로로부터 날아온 그을음을 뒤집어쓴 그림이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다>

 

 

미식과 포스티냐노의 집점-빈첸조 과리노 셰프

<포스티냐노 식객의 디너 타임을 지휘하는 빈첸조 과리노 셰프(우측). 비니 & 올리 와인 바의 아페리티프와 라 타볼라 로싸 레스토랑의 풀코스는 그가 요리사 시절부터 총괄 셰프를 거치면서 체득한 지중해, 유럽, 동양 요리의 퓨전이다>

 

포스티냐노의 가장 운치 있는 순간은 노을이 질 무렵이다. 공복감이 보채기 시작하는 오후 6시경 비니&올리 와인 바의 아페리티프 타임과 라 타볼라 로싸가 제공하는 풀코스 향연이 깨어나는 시간이다. 메뉴는 정평 있는 레스토랑에서 잔뼈가 굵은 빈첸조 과리노 셰프가 세심하게 짰다. 셰프는 요리 솜씨가 출중했던 할머니의 음식을 자양분으로 삼아 마음에 요리사의 꿈을 틔웠다. 호텔 요리 전문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로잔, 취리히, 밀라노에 소재하는 미슐랭 셰프 문하에서 하이퀴진을 섭렵했다. 이후 시에나, 나폴리, 코모에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레스토랑에서 총괄 셰프를 맡아하며 미슐랭을 안겨주었거나 별의 갯 수를 늘리기도 했다.

 

2017년에는 창의적인 지중해 요리(La Cucina Creativa Mediterranea di Vincenzo Guarino)란 책을 발간했고, 이 책은 Gourmand Word Cookbook Awards 대회에서 창의적인 지중해 요리 부분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그의 핑거푸드 세계는 포스티냐노에 상주하기까지 거쳐온 지중해, 유럽, 동양을 녹여내고 있다. 으깬 대구살 크림을 채운 마카롱, 올리브 튀김에 핀 연어알 꽃, 초콜릿 코팅에 둘둘 마른 식용 금박지가 등장할 때마다 감탄사의 강도가 세진다. 그의 창작성은 그릇과 음식의 매칭에서도 발휘된다. 원, 세모, 네모의 정형성을 벗어난 무형 접시, 타원형 돌판, 크리스탈 접시, 도자기 소재가 총동원된다. 그릇은 다년간 그와 프로젝트를 협업해 온 그릇 장인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아페리티프로 한층 고조된 식용은 라 타볼라 로싸 레스토랑이 달래 줄 차례다. 레스토랑을 잇는 계단을 은은히 비추는 가로등은 마치 친구 집 마실 가던 길을 밝히 던 전등처럼 온기를 발산하고 있다. 둔중한 목재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대편에 바위 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이 암벽에 기대어 지어졌음을 숨기지 않는 훌륭한 자연산 인테리어다. 몇 천만 년 전에 바다에서 융기한 암벽이라 하는데 거친 결을 따라 파도무늬가 나있다. 레스토랑 한가운데는 오크 소재 정사각형 테이블이 차지하고 있다. 하루에 열 명이 정원인 규모에 딱 들어맞게 특별주문 한 거라고. 셰프가 코스를 완성하는 과정은 마치 쿠킹클래스와 흡사하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식객은 수강생 입장이 되어 셰프가 능숙한 솜씨로 음식을 다루는 순간을 지켜본다. 일단, 주방에서 일차로 완성된 음식들은 중앙 테이블에 딸린 작업대 위에 놓인다. 셰프는 즉석에서 개발한 소스를 끼얹거나 토치로 로스팅해 음식을 완성한다.

<코스는 6~7개 메뉴로 구성되며 전채요리부터 디저트까지 식재료는 일관적으로 조화로움을 이룬다. 시계방향으로 바카라와 로베야 치즈, 비둘기 고기 푸아그라와 누텔라와 노촐라, 로 스캄포, 크레마 피스타키오 바리아지오네, 도피오 플린 라비올리>

 

셰프는 소믈리에이기도 하다. 그의 미식 세계에 등장하는 와인은 그가 와이너리에 가서 시음한 것들이다. 이것이 불가능했던 와인들은 시음회를 방문해 생산자 대면 시음을 반복한 후 선별한 것들이다. 셰프의 와인 리스트는 화려함과 거리가 멀지만 정통과 내추럴 취향의 구색이 잘 갖추어져 있다. 세계 와인 산지를 잘 안배했으며 가격대도 다양하다. 셰프는 메뉴와 어울리는 파트너를 스킨 컨택을 장기간 갖은 앰버와인이나 몬테팔코 사그란티노를 제안한다. 다소 강한 맛이나 포스티냐노에서 가장 근접한 와인 산지가 트레비아노 스폴레티노와 몬테팔코 사그란티노란 지역성을 놓칠 리 없는 셰프가 센스를 발휘한 거다.

 

핑거푸드와 코스 메뉴는 파올로 베아의 내추럴 와인과 짝을 이루었다. 베아 가족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포도밭을 경작했으나 가족 이름을 내세운 병입와인 출시는 1980년대 잠피에로 베아가 해낸 공로다. 베아 가족은 제초제나 농약 사용을 배척하는 유기농 옹호자며 농사 일정, 와인 따라내기(랙킹), 병입 날짜는 월력을 참고해 결정한다. 아황산은 와인 안정화를 위해 병 코르크를 막기 직전에 주입하는데 1리터당 63mg을 넘지 않는다.

<파올로 베아의 주력 와인. 중앙에 있는 와인이 아르보레우스 IGT Umbria Bianco>

 

2015년 산 아르보레우스 Arboreus IGT Umbria Bianco 앰버 와인-  움브리아 토착 화이트,  트레비아노 스포레티노를 압착한 껍질과 모스토를  29일 접촉한 상태로 알코올 발효와 침용을 했다. 오크통에 옮긴다음 효모 앙금 숙성을 143일 유지하면서 복합미와 숙성풍미를 농축했다. 베아 가족은 포도나무를 느릅나무 주위에 심는데 이를 마리타타 수형이라 한다. 포도가 가지를 원나무에 돌돌 말면서 자리기 때문에 수확철이 오면 느릅나무가 열매를 맺은 것처럼 보인다. 나무 키만큼 성장하다 보니 그루 당 소출량이 140kg 정도로 다산이며 수확철에는 사다리를 탄 농부가 열매를 따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앰버와인답게 노살색이 강렬하며 오렌지 색채의 섬광도 내비친다. 복숭아 잼, 말린 오렌지 껍질, 후추, 타임, 오레가노, 로즈마린의 지중해 허브와  바다내음이 이탈리아 감성을 풍긴다. 첫 맛은 미네랄이 주된 풍미를 이루나 산미와 결합하여 응축미가 감돈다. 껍질에서 우려낸 타닌이 입 근육을 살포시 조이면서 입안에 긴장감이 돈다. 모든 요소가 제 자리를 잘 잡은 듯한 구조의 안정감이 돋보인다.

 

-주소 Castello di Postignano Sellano(PG)- Umbria, Italy

-이탈리아 주요도시에서 소요시간과 거리- 로마 150km, 피렌체 210km(2시간 30분), 아시시 52km(60분)

- 주요 철도역에서 올 경우: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철도역이나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Spoleto행 열차를 타고 Spoleto역에서 하차한다. 역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 홈페이지 https://castellodipostignano.it/en  호텔고 라 타볼라 로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예약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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