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가을 겨울 테루아를 녹여내는 아파시멘토

블로그 운영자가 쓴 와인칼럼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24. 7. 25. 02:27

본문

<베로나 고 시가지의 피아자 델레 에르베 광장. 새벽에 광장에서 열리는 재래시장이 도심에 활력을 준다. 베로나는 해마다 아마로네 오페라 프리마 행사를 유치하고 있다. 뉴 빈티지 아마로네의 공식출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올해 출시한 아마로레는 2018 빈티지다>

 

아마로네 와인의 핵심 기법인 아파시멘토가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 후보 출마를 선언했다. 이 뉴스는 지난 2월 4일 개막된 아마로네 오페라 프리마 2018 빈티지 발표회에서 공개되었다. 한편, 아파시멘토 유네스코 등재 추진을 위임받은 과학 위원회 Scientific Committee는 신청서 작성을 마쳤다고 전했다. 만일 아파시멘토 등재가 확장되면 한국의 "김장문화"와 나란히 유네스코 인류무형 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유네스코 등재의 첫 절차인 신청서는 10페이지에 달하며 서류, 사진 및 비디오를 포함하고 있다. 작년 10월 21일 발폴리첼라 와인 협회가 유네스코 지지 캠페인 발표 후 지정 이메일, SNS, 와인 러버, 와이너리 직원들로부터 쇄도한 응원 메시지, 참여 의사, 아파시멘토 이미지에서 발췌한 거다. 과학 위원회는 등재신청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아파시멘토를 최초로 기록한 연대는 서기 580년으로 서고트족의 테오도리코 왕의 신하가 기록했다. 이후 발폴리첼라 지역에 1천5백 년 전수되면서 지역문화로 뿌리를 내렸다. 현재 8천여 명이 아파시멘토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며 이 기법으로 제조한 아마로네 와인이 매년 8천1백억 원의 매출실적을 올리는 등 지역사회 경제, 문화에 막대한 파급효과를 끼치고 있다".

 

본 신청서는 3월 30일 전에 이탈리아 외무부 산하 유네스코 선정 위원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위원회는 각지에서 접수된 후보자들 중에서 단일 후보를 가려낸다. 경쟁률은 해마다 차이가 나지만 평균 180대 1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단일 후보는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리는 심사 위원회에 보내지고 올해 안에 등재여부가 결정 난다.

 

아파시멘토는 가을 겨울이 만들어가는 테루아

 

인류역사에 와인이 출현한 이후 아파시멘토는 달콤한 와인을 만들기 위한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알맞게 익은 포도를 햇빛에 적당히 말리면 탈수가 일어나면서 단맛의 증진과 부차적으로 복합적인 향미도 얻었다. 남부 이탈리아는 수확기가 끝나도 햇빛과 건조한 기온을 유지해 이상적인 수축률과 농축미를 얻는데 2~3주면 충분했다. 그러나 아마로네 산지인 북이탈리아 베네토는 사정이 달랐다. 가을 우기가 닥치기 전에 재빠르게 거둬들인 포도는 아파시멘토 전래기법이 응집된 프룻타이오(fruttaio, 건조실)로 옮겨졌다. 건조 기간은 보통 3~4개월 걸리며 원래 크기보다 40% 정도 오그라들 때까지 놔두었다.

 

아파시멘토 하면 머리가 떠올리는 첫 장면이 시들은 포도자루 끝에 매달린 바짝 쪼그라든 포도송이가 십중팔구다. 앙상한 포도가 널려있는 목판자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선반에 걸려있다. 아파시멘토 여명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 다만, 달콤한 레초토 와인을 얻기 위한 수단이 20세기 중반에 아마로네 와인이 등장하면서 좀 더 정교해지고 다듬어졌다. 단맛이 대폭 줄어든 대산 1차 아로마 재현이라든가 산미의 보존, 타닌의 질감 개선에 맞춰지고 있는 추세다.

 

아마로네 와인은 " 막 수확한 포도는 양조장"이란 양조 관행과 거리가 있기 때문에 테루아 반영도가 떨어진다는 평판이 있다. 아마로네 오페라 프리마 2018 빈티지 발표회가 마련한 마스터 클래스는 이를 강력히 부인한다. 아파시멘토는 테루아 강화자(terroir enhancer)이자 테루아 촉진자 (terroir conductor)라 주장한다. 마스터 클래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봄, 여름과 공생하던 가지에서 잘려 나온 포도가 처음 직면하는 현실은 성숙의 강제 중단이다. 영양분과 물을 공급받던 뿌리에서 분리된 포도는 몸뚱이가 반으로 쪼그라들 때까지 천적에 혼자 맞서야 한다. 포도가 준비하는 최초의 스트레스 대처법은 무산소 호흡과 트랜스 레스베라트롤이란 항곰팡이 성분의 분비를 늘리는 일이다. 1차 기능인 당을 축적하면서 자체 생존력을 높이는 건 기본이다. 포도가 생존수단으로 만든 방어 부산물들을 우리는 아마로네 와인 형태로 만끽하는 거다.

 

탈수가 가장 활발한 시기는 수확 후 15일 동안이다. 이때는 상당수 푸릇타이오가 자리 잡고 있는 발폴리첼라 언덕이 가을에 접어들 무렵이다. 젖은 비로 대기는 눅눅하고 기온은 변화무쌍하다. 겨울이 오면 풍향이 북, 북동으로 바뀌고 보라바람이 동반한 건조함과 혹한이 계곡을 할퀴어 댄다. 때때로 아프리카 발 시로코 바람이 대기 온도를 올리고 습기를 공급한다.

 

균일한 수축률을 얻으려면 개별 품종의 특질 파악과 통풍 타이밍이 중요하다. 비가 내리면 창문을 닫고 환풍기를 튼다.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면 환풍기 전원을 끄고 창문을 열어놓는데 이는 첨단 온도 및 통풍 조절장치를 갖춘 최신식 푸룻타이오라도 예외일 순 없다. 보통 차고 습한 공기는 지면에 가라앉고 덥고 건조한 공기는 상부에 머문다. 지표에서 3m 떨어지면 평균 1도가 높고 상대습도는 5% 낮다고 한다. 건조한 공기가 습기를 빨아들이는 속도가 빠르므로 과피가 두껍고 알이 굵은 코르비나, 코르비노네는 상층에 펼쳐놓는다. 반면 껍질이 얇아 탈수가 빠른 오세레타, 론디넬라 포도는 밑 칸에 배치해 품종 간의 편차를 조절한다.

 

포도 알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통기성이 떨어져 곰팡이 피기 쉽다. 수확 직후에 알 틈새가 넓고 알이 적게 달린 포도를 선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피 두께, 과육의 크기, 송이의 크기는 품종의 유전적 특성이나 포도가 자란해의 날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강수량이 희박하고 더운 해는 과피가 얇다. 완숙도가 빠른데 비해 껍질 세포가 시간을 갖고 세포분열을 하지 못해 과피층을 늘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확 전에 비가 오면 포도알은 팽창하기 때문에 탈수가 지체된다. 과분도 중요한데 코르비나 과피는 코르비노네에 비해 얇지만 과분층이 더 두껍다. 과분이 두꺼운 포도가 그렇지 않은 포도보다 더 빨리 마른다. 포도가지가 자라는 형태를 잡아주는 수형도 기여를 한다. 페르골라(Y자 형태로 얽어 만든 목 기둥)를 타고 자란 포도는 알이 굵고 결실률도 우월해 속도가 느려진다.

 

포도가 싹을 틔우고 완숙기에 이르기까지 보통 6개월이 걸린다. 이어 최소 3개월, 최대 4개월까지 아파시멘토를 한다면 그저 양조 절차라 하기에는 1퍼센트 부족하다. 봄 여름의 테루아를 받아들인 포도는 푸룻타이오 안에서 가을 겨울의 테루아를 마주해야 한다. 그러니 아파시멘토는 포도가 놓친 계절을 되돌려주는 테루아 기억장치라 할 수 있겠다.

 

아파시멘토 하면 개선되는 점들

 

아파시 멘토는 속도가 느리고 기간이 길 수록 효능이 커진다. 즉각적인 효과는 포도당과 과당의 비율변화인데 과당 함량이 두드러져 단맛이 강해진다. 과당은 포도당보다 2배 이상 당도가 높고 혈당상승률이 적다. 적당히 먹으면 포만감을 주어 과식을 피할 수 있어 다이어트에도 좋다. 와인에 풋내나 초록 피망 냄새를 일으키는 피라진 성분을 휘발시킨다. 이는 테르펜 계열 분자를 활성화시켜 붉은색 과일이나 꽃이 향기의 주도권을 갖게 된다. 말린 상태를 오래 끌수록 산도는 낮아질 거란 우려도 있다. 실제로 사과산은 줄어들고 주석산은 늘어나 총산도는 되려 증가한다. 다만 단맛이나 글리세롤의 유질감이 산미의 감도를 떨어트리는 것뿐이다. 산미는 과일향에 신선도를 높이고 입의 신경을 누르는 묵직함을 완화한다.

 

폴리페놀도 덩달아 증가한다. 탈수에 직면한 포도는 물을 뺏기지 않기 위해 껍질 세포를 늘려 표피층을 두껍게 만든다. 껍질은 폴리페놀의 보고이며 과피가 쭈그러들수록 본능적으로 폴리페놀을 더 농축시킨다. 폴리페놀이 풍부한 와인은 숙성잠재력이 길고 안토시아닌과 타닌의 결합력이 단단해져 장기간 짙은 색깔을 유지한다.

 

아파시멘토 초반에 발폴리첼라 날씨는 변덕스럽다. 축축하며 서늘한 새벽과 햇빛과 바람이 흩날리는 오후가 반복된다. 아직 포도는 수분손실이 적이 곰팡이 감염에 민감하다. 아파시멘토의 관건은 곰팡이 제어에 달려있다. 해를 입히는 회색 곰팡이를 차단하고 귀부균 번식을 유도한다. 다행히 회색 곰팡이가 침투한 포도 껍질은 회색 꽃이 피어있어 쉽게 구분이 간다. 귀부균은 과피를 뚫고 들어가 안에 숨어버리기 때문에 맨눈으로는 분간이 안 가고 맛으로 만 식별할 수 있다. 늘어난 글리세롤은 풍만감을 선사하고 견과류, 버섯 내음을 짙게 하며 타닌 감촉을 매끄럽게 가다듬어 준다.

 

아파시멘토의 모든 혜택이 응집된 와인은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리제르바다. 출하하기 전 셀러 숙성기간은 최소 4년이나 관습상 6년까지 연장한다. 품종 구성은 코르비나(45~95%), 코르비노네(최대 50%), 론디넬라(5~30%), 베네토 주가 허용한 레드품종(최대 25%)을 블랜딩 한다.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리제르바 2016-테누타 산타 마리아 Tenuta Santa Maria 와이너리

 

라즈베리, 체리, 송진, 바이올렛, 제라늄 향이 봄날같이 흩뿌린다. 이어 후추, 계피향이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촘촘하게 짜인 섬유 같은 타닌 구조, 산미의 정갈함이 내는 조화미를 한껏 뽐낸다.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리제르바 2016- 스테파노 아코르디니 Stefano Accordini 와이너리

 

잔 중심은 검붉은 색, 주변은 붉은색 띠가 두르고 있다. 견과류, 열대과일, 꿀에 절인 체리, 후추, 정향이 잘 어우러져 있다. 버섯, 타바코, 낙엽 내음도 살짝 내비친다. 산미와 미네랄 성분의 결합력이 좋아 지금 오픈해도 손색이 없다. 달콤하며 순수한 과일향이 내는 분위기가 로맨틱하다.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리제르바 빈티지 2015- 라 콜리나 데이 칠리에지 La Collina Dei Ciliegi 와이너리

 

속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루비색이 영롱하다. 바이올렛, 말린 장미, 사워 체리, 유칼립투스, 감초향에 이어 타바코, 카카오, 커피 향이 마무리한다. 산미가 정갈하며 타닌이 혀에 닿는 순간 강한 흡인력을 갖고 입안 신경을 점령한다.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리제르바  2015-노바이아 Novaia 와이너리

 

달콤한 사워체리, 블랙베리, 카모마일, 말린 야생화, 견과류, 민트, 바닐라 향이 복합적이다. 여기에 타바코, 젖은 흙, 해조류 내음이 더해져 원숙미가 배가 된다. 잔당맛이 거의 없고 타닌의 짜임새, 산미의 신선도를 솔직히 보여준다. 밀도 있는 타닌의 구조는 긴장감을 높인다.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리제르바 체라숨 2013- 파밀리아 벤나티 Famiglia Bennati  와이너리

 

제라늄, 정향, 타바코, 흑자두, 블랙베리, 통후추, 끼나, 가죽, 흑설탕, 타바코 향이 조화롭다. 아니스, 락카향의 이색적인 풍미가 감돈다. 10년 숙성기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산도를 유지한다. 치밀한 타닌의 힘에 눌리지 않는 산미가 와인의 밸런스를 잡아준다.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리제르바 보산 2013-체사리 Cesari 와이너리

 

타르, 파프리카, 부싯돌, 육향, 아니스, 키나, 후추, 다크 초콜릿, 계피향이 고혹적이다. 오렌지, 흑자두가 감미로운 여운을 남긴다. 원만한 산미, 타닌, 미네랄이 어우러져 탄탄한 구조를 보인다.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리제르바 2013-파레쩨 Falezze 와이너리

 

타바코, 버섯, 후추, 삼나무, 감초, 정향, 아니스, 주니퍼베리, 키나, 민트향이 강렬하다. 흑연, 락카, 버섯향이 내는 중후함이 더해진다. 탄탄한 골격이 버티고 있는 타닌과 이 안에 녹아있는 강렬한 산미는 집중도와 생동감을 끌어올린다.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리제르바 2011-몬테 조보 Monte Zovo 와이너리

 

달콤한 블랙체리, 자두, 블랙베리, 건포도, 무화과 향이 맴돈다. 가죽, 젖은 흙, 바다 짠 내음에서 원숙한 부케가 스며 나온다. 알코올의 뜨거움과 풍성함을 만끽할 수 있다. 조밀한 짜임새를 지닌 타닌이 매끄럼과 기품을 선사한다. 젊은 와인 못지않은 산도가 주도하는 발랄함이 인상적이다.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리제르바 2008-도미니 베네티 Domini Veneti 와이너리

 

검붉은 빛깔은 열기와 산도의 임팩트를 숨기고 있다. 타바코, 락카, 열대 과일향, 다크 초콜릿, 송진, 오렌지 머멜레이드, 에스프레소, 조청, 블랙베리, 버섯, 가죽향이 시간을 두고 피어오른다. 산도와 타닌의 균형감, 풀보디의 힘과 중후함이 압도적이다.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리제르바 2006- 발렌티나 쿠비 Valentina Cubi 와이너리

 

17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천연향이 살아있음이 놀랍다. 라즈베리, 샤워체리, 장미, 라벤더, 유칼립투스, 송진, 바닐라, 타바코 뉘앙스가 생동감 넘친다. 키나, 넛맥, 타르, 한약, 오크 여운이 지속적이다. 타닌의 견고함이 혀밑에 잔잔히 가라앉으면서 미네랄과 산미가 모습을 드러낸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