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볕에 쬐인 포도나무 가지가 솜털을 단 새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와인은 만들기에 따라 50년이 넘는 보존력을 갖지만 정작 출발은 손톱만 한 싹이라는 게 여간 신비롭지 않다. 이탈리아 와인 산지를 그물처럼 연결하는 와인 가도(Strada Del Vino)도 여행객을 맞을 준비로 부산하다. 여행가도는 이탈리아 지역단위 와이너리와 지방 여행업계가 기획한 투어로 이탈리아 어디를 가든 와인 가도가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다. 와인 가도를 따라 중세 고성 뾰족탑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공기에는 와인향이 서려있고 아기자기한 공방들이 여행자의 시선을 훔친다.
로에로 와인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로에로 와인 가도도 덩달아 핫한 여행지로 부상 중이다. 흔히 로에로 크뤼 와인투어(Wine Tour tra i Cru del Roero)로 알려져 있는데, 로에로는 북이탈리아 피에몬테주 남부를 드넓게 차지하는 와인 지역이다. 잘 알려진 와인은 아르네이스 청포도가 원료인 로에로 아르네이스와 네비올로 적포도로 만든 로에르를 들 수 있다. 로에로 와인은 비에티, 부르노 자코사, 체레토 같은 생산자가 만든 브랜드가 한국에도 수입되고 있어 이미 로에로 마니아 층이 두텁다.
로에로 크뤼 와인 투어가 인기를 끄는 이유
로에로 크뤼 와인투어가 핫한 여행지를 선점한 데는 당일 투어가 가능하고 무엇보다 바이크족과 트래킹 족이 골고루 만족할 만한 4가지 투어 코스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어떤 투어를 선택하건 간에 로에로의 테루아를 확실히 챙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투어 코스를 개발한 이들이 밭 구석구석을 훑고 있는 로에로 와인 생산자와 로에로 로케 생태 박물관(Ecomuseo Delle Rocche del Roero)이라 그렇다.
또한, 비대면 투어의 총아인 셀프 여행을 만끽할 수 있는 무료 오디오 가이드 어플을 제공한다. 투어 전 현장에서 Izi.travel 어플을 스마트폰에 다운로드하면 된다. 다국어 지원이 되며 투어 구간마다 번호가 지정돼 있어 번호를 누르기만 하면 설명이 나온다. 구글맵과 동기화하면 실시간으로 이동경로를 표시해 준다.
각 코스마다 난이도, 해발고도, 오르막 길의 거리를 명확히 표시해 놨다. 언덕 경사도가 완만하고 표지판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포도밭 길을 제외하고 도로는 포장상태가 좋다.
어떤 투어이든지 출발점은 카날레(Canale) 마을이다. 카날레에서 북, 남, 서쪽 방향으로 와인가도가 뻗어 나간다. 카날레에서 출발해서 끝나는 순환코스다. 카날레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고 차를 대여했다면 피아짜 산 베르나르디노(Piazza S. Bernardino) 광장에 있는 무료 노상 주차장에 놔둔다. 주차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로에로 와인 컨소시엄 협회 사무실에 가면 와이너리나 투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완벽주의자라면 요깃거리나 생수는 여기서 미리 챙겨두는 게 좋다. 만일, 자유여행족이라면 와인가도에 흩뿌려져 있는 동네 맛집이나 바에 잠시 들려 슬로 푸드의 여유로움에 탐닉하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추억으로 각인될 것이다.
<로에로 크뤼 와인투어 제1코스- 아르네이스 기원을 찾아서> ★난이도 -초보자에게 적당. 도보여행 시 추정시간 약 3시간 30분. 총 거리 14 km, 오르막길 거리 300미터, 투어구간-23군데. ★난이도는 이탈리아 기준으로 초보자라도 쉽게 종주할 수 있는 코스로 트래킹은 E, 바이크는 MC로 표시한다>
시간에 쫓기거나 짧은 시간에 로에로 와인을 체험하고 싶은 여행자를 위한 맞춤 투어다. 북 카날레 마을을 빙 둘러싼 크뤼를 돌아보는 투어로 23개의 구간으로 채워져 있다. 최초로 아르네이스를 재배했다고 알려진 레네시오 크뤼의 경치를 감상한다. 14세기에 레넥시(renexij)라 불렸던 이 밭은 후에 아르네이스란 포도명으로 정착했다. 레네시오는 아르네이스 성장에 이상적인 점토, 미사, 모래가 적정 비율로 섞여있는 명당 밭이라 인근의 비슷한 토질을 갖는 받들도 지명을 레네시오라 지었다. 그러자 같은 이름의 밭이 4개로 늘어났고 사람들은 원조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레네시오 뒤에 촌락명을 붙였다. 레네시오에서 자란 아르네이스는 서양배, 청사과, 레몬, 사루비아, 타임, 허브의 화사하며 깔끔한 아로마를 발산한다.
<로에로 크뤼 와인 투어 제2코스- 점토의 힘, 로에로에서 타나로 강까지> 난이도-초보자에게 적당. 도보 여행 시 완주 예상시간 6시간 30분. 총 거리 25km. 오르막길 거리 500미터. 투어구간-31군데>
카날레 남부에서 출발해 타나로 강과 경치가 뛰어난 과레네 마을을 훑어보는 투어다. 과레네 마을은 로에로 소도시 중 바로크 건물 현존율이 가장 높고 로에로 발코니란 별명으로 불릴 만큼 타나로 강 전망이 뛰어나다. 카날레에서 카스텔리날도 마을 구간은 면적당 포도밭 밀도가 제일 높다. 베짜 달바에 소재하는 발마로제 밭은 탄성을 자아 낼 정도의 가파른 경사도를 자랑한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기울기는 자체적으로 독특한 미세기후를 형성해 긴장감 도는 네비올로 와인을 낳는다. 미세한 점토와 미사가 균일한 비율로 섞여 있으며 구조감이 뛰어나고 숙성기간이 긴 로에로 네비올로가 나온다.
<로에로 크뤼 와인투어 제 3코스-모래 천국, 로케에 도전한다> 난이도-초보자에게 적당. 도보여해시 완주 예상시간 5시간 40분. 총 거리 23km. 오르막길 거리 560미터, 투어구간-23군데>
로에로 동서를 관통하는 와인 가도로 로에로의 야성미를 만끽하는 투어다. 로케 Roche 사암 절벽이 만들어 내는 경관이 아찔하다. 로케는 22만 년 전에 로에로를 침범한 자연재해가 남긴 천연 조각품으로 이곳 주민들의 일등 스토리텔링 감이다.
로케-홍수와 모래가 만든 자연 조각-약 22만 년 전에 로에로 언덕은 남쪽에 위치한 랑게 언덕과 함께 고원지대를 이루었고 고원 하부에는 타나로 강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 날 지금의 알바 동쪽에 대홍수가 발생했고 이는 새 강을 낳기에 유량이 충분했다. 새 강 줄기와 맞닿는 지류가 쏟아내는 물이 흘러들면서 물이 불어난 강은 타나로 강 방향으로 돌진했다. 알바 근처에서 타나로 강이 새 강과 합류하는 순간 수심이 깊고 물살이 셌던 새 강에 휩쓸리면서 원래 수로를 버리고 물길을 서동 방향으로 바꾼다. 지반이 모래였떤 땅을 유속이 빠른 강이 침투하자 지반은 두부처럼 갈라졌고 단면이 드러났는데 이를 로케라고 한다. 단면 모양이 마치 자연 조각칼로 깎아낸 사암 절벽 같다. 로케 주면에 조성된 밭은 모래 함량이 높아 짙은 아로마를 자랑한다.
종착지인 몬테우 로에로 망르은 밤 숲이 유명하고 특히 4백 년 수령의 밤나무는 로에로 명물에 이름을 올렸다.
<로에로 크뤼 와인투어 제 4코스-로에로 파노라믹 코스> 난이도-초보자한테 적당. 도보 여행 시 완주 예상시간 6시간 40분. 총 거리 26km 오르막길 거리 660미터. 투어구간-30군데
흔히, 로에로 파노라믹 투어라고도 한다. 코스가 언덕 정상에 나있으며 길 한쪽에는 알프스 연봉이 펼쳐지며 반대쪽에는 엽서 같은 로에로 풍경이 지나간다. 언덕 정상에 솟아 있는 소도시를 통과할 때마다 감춰져 있던 성당, 아기자기한 골목, 중세 뾰족탑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발아래로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포도밭 정경이 깔린다. 로에로 토양 중 모래가 가장 많고 화석이 섞여있다. 제3코스와 돌아오는 길이 겹치는데 레포츠 마니아라면 3~4코스를 연결하는 둘레길 투어를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로에로 명소와 명물을 소개하는 (2)회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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