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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도 콘테르노 유전자에 각인된 바롤로 끼

블로그 운영자가 쓴 와인칼럼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23. 7. 2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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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데리 알도 콘테르노를 이끌어가는 삼두마차. 알도 콘테르노의 삼남>

알레산드로 마스나게티가 작성하고 2010년에 바롤로 와인 협회가 승인한 MGA 지도를 펼쳐보자. 만일, 이 지도가 까마득한 옛날에 이미 존재했었고, 바롤로를 와인공급지로 삼으려는 불순한 의도를 품은 자들 손에 넘어갔다고 가정해 보자. 바롤로는 적에게 단시간 내에 자신들의 와인창고를 내주었을 것이다. 세부 묘사가 적나라하고 직관적이다 보니 비록 이방인이라도 지역파악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스나게티는 지도 밑작업할 때 토질의 다름, 경사면, 일조량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를 기반으로 밭을 170개로 분류한 다음 각 밭마다 이름과 색상을 배정했다. 열한 군데 바롤로 마을과 연대를 맺고 있는 극소 마을들의 정밀성, 곁가지처럼 뻗아 나온 소로는 디테일의 궁극을 달린다. 등고선 역시 밭의 위치, 고도, 기울기를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지리정보를 압축해 놓은 지도를  MGA, 크뤼 또는 싱글빈야드 지도라 한다. 참고로 MGA를 채우고 있는 총 천연색 칼라는 토질 하고는 무관하며 단지 밭의 경계선과 위치 분별을 돕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지도 맨이란 별명이 붙은 알레산드로 마스나게티가 완성한 MGA지도. 검은 선이 둘러 싼 부분이 부씨아 MGA다>

잠시 시선을 지도의 남쪽으로 옮겨 보자. 몬포르테 달바 마을 끝자락이 황색 경계선과 맞닿아 있는 게 보일 것이다. 이 선에서 남쪽으로 1센티미터를 벗어나기만 해도 바롤로 자격은 박탈된다. 마을 반대쪽으로 주황색 등고선이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데 여기가 부씨아(Bussia) 밭이다. 면적이 299헥타르로 이웃한 브리코 산피에트로(380헥타르)와 함께 크기로 1,2등을 다툰다.

 

덩치가 큰 만큼 와이너리 점유율도 역대급이다. 41개 와이너리가 부씨아 밭을 나눠가졌고 각자 부씨아 바롤로를 선보이고 있다. 작황이 특별한 해는 한정적이지만 리제르바도 출시한다. 여기에 와인메이커의 기량이 더해지면 부씨아의 다양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한편 부씨아는 MGA에 편향적이기도 하다. 부씨아에서 북서방향으로 10분 거리에 라모라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 콘카라는 MGA가 있는데  2.5헥타르가 채 안 되는 면적을 세 군데 와이너리가 나누어 갖고 있다.

 

형상이 긴 부씨아는 중앙을 통과하면서 인접한 바롤로와 카스틸리오네 팔레토 마을과 토양학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부씨아에 뿌리내린 포도가 다채로운 토양층과 만나는 이유다. 1천2백만 년 전의 바롤로 모습은 현재와 사뭇 달랐다. 땅 전체가 수면아래 있었고 육지가  쏟아 낸 생물유기체는 해저에 차곡차곡 쌓였다. 어느 시점에 이르자 해저가 솟구치기 시작했고 이 대격변은 바롤로 전체로 파급된다. 육지의 모습을 갖추는 데 7백만 년이 걸린 바롤로는 융기한 순서대로 세라룬가 달바 타입 토양과 라모라 타입 토양으로 구분된다. 전자를 레퀴오 사암토라 하며 묵직하며 구조와 보디가 강직한 와인을 낳는다. 후자는 산타가타(또는 토르토니아노)라 하며 모래, 점토, 석회석의 혼합토로 어린 바롤로라도 부드러운 타닌과 싱그런 과일 풍미를 선사한다.

 

알도 콘테르노 유전자에 각인된 와인 끼

부씨아에 정착한 이래 알도 콘테르노는 파봇 FAVOT이라 불리는 고풍스러운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파스텔톤 건물을 포도밭이 감싸고 있는 경치가 마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하다. 파봇의 멋진 자태를 음미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카스틸리오네 팔레토 마을에서 이어져 나오는 도로를 타고 접근했을 때다. 카스틸리오네 로케, 마리온디노 크뤼를 통과해 커브 길을 몇 번 돌면 몬포르테 달바 마을 팻말이 나온다. 여기서 전진하면 파봇이 고혹스런 자태를 드러낸다.

<파봇 FAVOT 건물. 알도 콘테르노 와이너리가 양조, 숙성실로 사용하고 있다>

알도 콘테르노는 1969년 창업한 이래 삼대에 이르기까지 콘테르노 유전자에 흐르는 바롤로 끼를 발휘했다. 알도 콘테르노의 아버지가 몬포르티노와 라 카시나 프란차 바롤로로 낳은 자코노 콘테르노다. 자코모한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인 조반니는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았고 그의 아들인 로베르토가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니깐  알도의 자녀들은 로베르토와는 사촌지간이다. 알도는 아버지 사업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철이 들면서 바롤로 이상향을 꿈꾸어 왔고 이의 실현을 위해 미국 이민길에 오른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해 미군에 지원했다. 비록 와이너리 창업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미국에서의 삶은 그에게 사업가 마인드를 심어주기 충분했다.

 

귀향한 알도는 부씨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포데리 알도 콘테르노를 출범시켰다. 바롤로의 1970년대는 지금의 바롤로와 비교했을 때 자석의 양극처럼 달랐다. 농부들은 농촌을 등졌고 포도밭이 헐값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때 알도는 싼 값으로 부씨아를 인수할 수 있었다. 현재 알도 가족이 직접 경작하는 밭이 29헥타르인데 대부분 이때 사들인 거다. 이 밭에서 다섯 종류의 바롤로는 물론 바르베라 달바, 랑게 네비올로, 랑게 화이트 같은 Doc 와인도 나오고 있다. 비록 Doc급이지만 밭이 크뤼 급이라 품질은 바롤로에 못지않은 수준을 자랑한다.

 

자연이 자신의 뜻대로 만든 와인

알도 콘테르노의 와인은 단순 명료하다. 자연이 하는 데로 내버려 두는 거다. 자연은 그 자체로 완벽하므로 완전하지 못한 것은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인식해 밖으로 밀쳐낸다. 자연은 와인을 만드는 능력을 내재하고 있다. 와인메이커는 자연이 저절로 균형을 잡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양조하다 보면 침전물을 제거할 필요가 여러 번 있다. 이때 와인을 놔두면 저절로 불순물이 바닥에 가라앉는다. 청징제를 사용하거나 여과 장치에 통과시키면 빠르게 투명한 와인을 얻지만 자연의 자정능력을 거스르는 거다. 자연 여과는 시간과 다 수의 탱크 설치 공간을 전제로 한다.

 

알도 콘테르노의 양조장 크기는 6천 평방미터로 이 정도면 연생산량을 2만 5천 병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생산량은 3분의 1 수준인  8천 병에 그친다. 자연이 자신에 리듬을 따를 수 있게 넓은 공간을 할애한 탓이다.

 

알도 콘테르노는 포도 건강에 예민하다 싶을 정도로 집착한다. 알도의 손주 알레산드로는 완전 무결한 포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이는 자연존중 개념과 맥락이 닿아 있다고 말한다. "포도가 건강하지 못하면 와인은 균형을 잃는다. 이를 만회하려고 보완제나 화학약품을 첨가하면 프랑켄슈타인 와인을 낳는다. 과학이 와인에 구조와 근육을 보강해 겉은 완벽한 사람 모습을 하고 있지만 영혼이 없는 괴물과 같다. 이탈리아 속담에 '혼자 말한다(Si parla da solo)'가 있다. 와인이 완벽하면 저절로 드러나므로 설명은 사족에 불과하다".

 

<좌측에서 우측방향으로 바롤로 리제르바 그란부씨아 2006, 바롤로 부씨아 로미라스코 2017, 바롤로 부씨아 치카라 2016, 바롤로 부씨아 콜로넬로 2016, 바르베라 달바 콘카 트레 필레 2019>

바르베라 달바 Doc 콘카 트레 필레 2019(Barbera d'Alba Doc Conca Tre Pile 2019)

바르베라의 진면목은 산미와 과일향기가 어우러질 때 드러난다. 바르베라가 부씨아 토양과 만나면 물 만난 물고기 마냥 기량을 발휘한다. 산미는 침샘을 자극하고 분비된 침은 혀에 남는 이물감을 씻어주며 입안이 가벼워진다. 바르베라의 산도는 강하지만 레몬처럼 시지 않다. 과일향기가 미뢰 표면에 보호막을 씌워 신맛을 반감시키고 산뜻한 맛은 살려주기 때문이다.

 

기울기가 심한 콘카 트레 필레 밭에서 딴 45년 수령의 바르베라로 만들었다. 파쇄한 모스토를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 채운 상태에서 10일간 발효와 침용 기간을 가졌다. 225리터 프렌치 바리크에 옮겨 유산발효를 마친 후 12개월 숙성했다. 감초, 초콜릿, 체리, 라즈베리 향이 청초한 느낌을 풍긴다. 와인을 비웠는데도 빈 잔에서 바이올렛과 장미향이 떠날 줄 모른다.

 

이런 느낌은 고급 바르베라에서 주소 감지되는데 이를 두고 '바롤레자'라 한다. 바르베라가 네비올로를 닮아가는 현상인데 바롤로 지역에서 흔히 발견된다. 섬세한 구조는 활력을 얻게 되어 단단함이 충만하며 산미와 어우러진 과일향이 또렷해진다.

 

알도 콘테르노의 모든 바롤로는 부시아를 촘촘하게 세분한 콜로넬로, 치카라, 로미라스코 밭에서 온다. 제각각인 토양의 특징을 조화롭게 담아낸 클래식 바롤로와 리제르바 바롤로가 있다. 타고난 토질을 끄집어내 개성을 부각시킨 부씨아 크뤼가 세 종류다. 콜로넬로, 치카라, 로미라스코 포도밭 순서로 향이 복잡해지고  타닌 골격이 굵어진다. 치키라, 로미라스코 부시아는 오직 알도 콘테르노만 출시하고 있어 모노폴 지위를 누리고 있다.

 

바롤로 Docg 부씨아 콜로넬로 2016 (Barolo Docg Bussia Colonello 2016)

2016 산 바롤로는 최상의 빈티지로 알려져 현지에서도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콜로넬로는 라모라타입 토양으로 모래, 마그네슘, 망간이 섞여있다. 비강을 파고드는 꽃 향기가 은은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콜로넬로는 대령이란 뜻으로, 밭 형세가 예사롭지 않음을 눈치챈 한 프랑스 대령이 자신의 사유지로 삼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콜로넬로는 다섯 군데 와이너리가 점유하고 있으며 이들 중 푸르노토는 리제르바로 생산하고 있다.

 

네비올로 품종 중 고품질과 낮은 소출량으로 검증받은 미켓, 람피아 수종이 자라며 수령은 40~45년 사이다.  30일의 알코올 발효와 침출이 끝나면 보테로 옮겨 28 개월 숙성했다. 이후 시멘트 탱크에 놔두면서 자연 여과방식으로 침천물을 걸러냈다. 감초, 민트, 유칼립투스, 발삼향이 코 끝을 간지럽힌다. 마치 꽃다발을 품은 듯 바이올렛 향이 강렬하다. 조직의 섬세하기가 실크와 같고 혀에 부드러움이 착 감긴다. 타닌은 순하면서도 응축미를 겸비하고 있어 밸런스가 출중하다. 숙성 잠재력은 30년으로 예상되나 지금 마셔도 진가를 드러낼 정도로 접근성이 뛰어나다.

 

바롤로 Docg 부씨아 치카라 2016 (Barolo Docg Bussia Cicasla 2016)

귀뚜라미라는 뜻의 치카라는 철, 석회석, 점토가 풍부한 세라룬가 달바 타입 레퀴오 토양에 속한다. 언덕 기울기가 심해서 비가 지하 심층까지 내려가는데 뿌리는 이 물길에 닿으려고 전력을 다한다. 지상에서 멀어질수록 뿌리는 더 긴장하며  이 긴장감이 와인에도 전달된다.

 

수령이 40~45년인 포도가 내는 산출량은 연 7천 병 밖에 안 되는 귀한 바롤로다. 딸기, 라즈베리, 체리, 카시스, 오렌지 필 향이 매혹적이며 장미, 비올라, 민트향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타닌이 신속하게 입 근육을 조여올 때 몰입도가 상승한다. 아삭거리는 산미와 쌉쌀한 미네랄의 감칠맛이 어우러지며 과일향기에 싱그러움이 스며있다.

 

바롤로 Docg 부씨아 로미라스코 2017 (Barolo Docg Bussia Romirasco 2017)

로미라스코의 존재는 1875년에 작성한 지도에도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깊다. 원래 푸스티나 백작부인의 영지였던 것을 알도가 사들인 것으로 백작부인은 파봇의 원주인이기도 하다. 치카라와 동일한 레퀴오 토에서 자란  50~55년 수령의 미켓과 람피아만 골라 담았다. 오크 숙성기간이 콜로넬로, 치카라보다  2개월 더 늘린  30개월이다.

 

발삼, 민트, 라즈베리,카시스, 장미, 감초향이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부드러우면서도 감칠맛 도는 산도가 특징이다. 꽉 찬 듯한 바디감과 밸벳 결을 지닌 타닌이 밸런스의 향연을 벌인다. 미네랄은 혀에 굴러다닐 정도로 신선하며 아몬드의 쌉쌀한 맛과 어우러져 풍미가 깊이를 얻는다.

 

바롤로 리제르바 Docg 그란 부씨아 2006(Barolo Riserva Docg Gran Bussia 2006)

알도 콘테르노가 막 와인 업계에 입문한 후 론칭한 바롤로다. 그의 의도는 그림엽서 같은 랑게 풍경을 와인에 담고 싶었다. 가을걷이를 마친 들판에 단풍이 들 무렵 화이트 트러플 향기를 머금은 랑게에 헌정하는 와인이다. 로미라스코, 콜로넬로, 치카라 밭에서 80년도 더 된 미켓과 람피아만 고르는 이유로 수확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블랜딩 비율은 로미라스코 70%, 콜로넬로 15%, 치카라 15%로 정해놨지만  로미라스코만  고정돼 있고 그 외 품종의 비율은 해마다 변한다.

 

보통 리제르바 바롤로는 작황을 최상인 연도로 제한하는 한정적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알도 콘테르토 한테는 클래식한 해를 의미한다. 클래식하다는 것은 포도 성장속도, 강수량, 습도, 일조량등 모든 기상 여건이 랑게의 전형적인 기상 흐름을 따른 해다. 무엇보다 포도의 건강상태를 봐 가면서 리제르바 생산을 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곰팡이 습격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포도는 따 놓은 당상이다.

 

2017년과 2022년은 기록적인 더위와 가뭄이 기세를 떨쳤다. 그러나 알도 콘테르노는  2017년 리제르바는 포기했지만 2022년은 만들기로 했다. 똑같이 덥고 가물었으나 2022년은 9월 초에 비가 내렸고 일교차 회복기미가 있었고 괘도 이탈했던 날씨가 원 자리로 회복했기 때문이다.

 

선별수확한 포도를 밭 별로 나누지 않고 제경기와 파쇄기에 흘려보냈다. 압착한 모스토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30일간 머물면서 발효와 침출기간을 보냈다. 보테에서 유산발효를 마친 와인을 3개월간 숙성한 후 병숙성을  6년 추가했다. 타바코, 정향, 가죽, 블랙 티, 철의 원숙함이 고개를 들며 체리, 라즈베리, 장미향이 화사한 꽃처럼 만개한다. 유칼립투스, 감초향은 사라질 줄 모른다. 산도가 출중하고 그 안에 타닌이 또렷이 자리 잡고 있다. 타닌의 감촉이 입안에 퍼지면서 혀는 긴장감에 휩싸인다. 타닌의 떨림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매끄러운 감촉이 황홀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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