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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노에게 진정한 피에몬테 와인이란

피에몬테와인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23. 9. 1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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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누군가 피에몬테 와인을 소개해 달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베르사노 와이너리를 추천하겠다.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이름을 댔으니 질문자는 내가 자신의 의도를 잘못짚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베르사노를 추천한 나의 의중은  이렇다.

 

베르사노는 자신의 역량을 토착품종에 기울여왔고 포도산지는 포도 형질이 100% 발현되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품고 있다. 먼저 베르사노한테 토착품종은 어떤 의미일까? 네비올로, 바르베라, 돌체토, 루케 같은 본산지가 피에몬테 주고 주 밖에서 자란다 해도 원산지의 맛을 따라올 수 없는 풍미의 불변성이다. 화이트 와인은 아르네이스와 코르테제로 빚어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아로마와 산도를 지니고 있다. 거기다 제품 카탈로그는 스위트 와인 라인업도 탄탄하다. 중후함과 장기 숙성을 브랜드 이미지로 키워 낸 와이너리 답지 않게 모스카토 다스티와 브라케토 다퀴 와인이 베르사노 매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베르사노의 10군데 카시나. 카시나 우측에는 카시나 별로 주품종을 표시해 놨다>

베르사노 본사는 니짜 몬페라토 Nizza Monferrato 마을에 위치하며 본사를 축으로 몬페라토와 랑게 와인 산지가 빙 둘러싸고 있다. 이는 본사에서 생산현장까지 이동거리를 대폭 줄여 접근성과 물류의 선점을 확보하는데 기여를 한다. 게다가 밭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카시나(Cascina) 단위로 나누었다. 카시나는 안뜰을 중심으로 거주지, 농산물 창고, 가공소, 축사가 마주하고 있는 경작지가 딸린 농가의 옛말이다.

 

피에몬테 DOCG 등급 지역이 19군데임을 고려할 때 베르사노의 프리미엄 와인 비율은 55%에 달한다. 230 헥타르의 밭은 전부 자가 소유이며 이를 면적 대비 자가 비율로 순위를 매겼을 때 베르사노는 피에몬테 1위를 차지한다. 연 생산량은 1백만 병으로, 1헥타르 대비 산출량이 4350병 수준으로 회사의 고품질 소량생산 원칙을 반영한다.

                                               

                     금수저를 포기한 아르투로 베르사노

 

1930년대, 니짜 몬페라토에서 잘 나가고 있던 변호사 아르투로 베르사노(Arturo Bersano). 크레모시나 궁을 보는 순간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화살이 그를 겨냥했다. 궁과 포도밭이 자아내는 경치 앞에서 그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아르투로가 금수저 직업을 포기하고 와인 사업가로 전향하겠다는 폭탄선언이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는 바르베라 다스티나 모스카토 다스티 같이 돈이 되는 브랜드가 태어나기 전이라 그의 선언은 굴러들어 온 복을 걷어 차는 무모함으로 비쳤다.

 

하지만 이미 결심이 확고 했던 그는 크레모시나를 인수하고 1935년 와인 양조에 착수한다. 크레모시나는 아르투로에게는 최초의 밭이라는 의미 외에도 그가 와인업계에 연착륙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50미터 해발고도의  완만한 능선, 석회석과 점토성 토양과 온화한 기후는 그의 품에 양질의 바르베라를 안겨주었다. 크레모시나는 창립 초기부터 따로 분리해 바르베라 다스티 수페리오레 라벨로 출시한 이래 베르사노의 아이콘 위상을 86간 지켜왔다. 2018년에 니짜 크레모시나로 등급이 상향했으며 이는 수페리오레 급보다 수확량은  대폭 줄었으나 숙성 기간은 배로 늘어난 하이엔드급 바르베라다.

 

이후 아르투로가 이끄는 베르사노의 성장 곡선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시기에 아르투로는 '좋은 와인을 마시고 싶으면 포도밭을 구입해라 Se Vuoi bere bene, comprati un vigneto'라는 자신의 소신을 표명했는 데 이 문구는 와인업계의 명언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크레모시나부터 열 번째 카시나인 '카시나 산 피에트로'를 인수하기까지 베르사노를 관통한 철학이기도 하다. 즉, 내게 속 한 밭만이 철저한 품질 통제가 가능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베르사노에만 있는 특별한 것들

<아르투로 베르사노의 저택과 와이너리 경내는 고인이 생전에 수집해 놓은 3천여 점의 골동품이 보관 및 전시중이다>

오크 숙성실은 지하에 배치하는 게 상식이지만 베르사노 숙성실은 지상층에 노출되어 있다. 원래 지하에 있었으나 인근의 강이 자주 범람해서 셀러가 여러 번 침수되자 현재의 장소로 옮긴 거라고 한다. 파사드는 니짜 몬페라토 기차역 청사와 마주 보고 있다. 원료의 신선함을 최고로 꼽는 현대 건축 콘셉트, 즉 양조장과 포도밭의 동선을 짧게 가져가는 추세와는 동떨어져 보일 수 있다. 이는 도로 인프라가 열악했던 시절, 판매실적은 철도와의 접근성이 판가를 하던 시대적 배경과 맞닿아있다. 와인이 기차에 실려 신속하게 소비지에 접근할 수 있다는 물류 우월성은 매혹적이었다.

 

1960년은 아르투로한테는 매우 중요한 해다. 세라룬가 달바 소재 13헥타르의 카시나 바다리나(Cascina Badarina) 밭을 인수하면서 바롤로에 입성했다. 주 활동지역이 몬페라토인 사람이 바롤로에 진출했다는 것은 유형자산을 늘린 것 외에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피에몬테주 출신 생산자라면 꿈꾸는 네비올로 로망이 작용한 거다.

 

까다로운 네비올로를 단련시켜 바롤로로 위상을 끌어올렸다는 것은 와인메이커로서 내공과 경험을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이후 미켈레 끼아를로, 라 스카르파, 라 스피네타와 함께 바롤로 지역 밖에서도 바롤로 양조 및 숙성 특권을 부여받은 유서 깊은 와이너리에 이름을 올린다. 2022년 4월에 베르사노는 칸누비 바롤로를 론칭했다. 칸누비는 바롤로의 170개의 크뤼 중 하나로 바롤로 생산자라면 탐내는 크뤼의 정상이다. 첫 빈티지는 리제르바 2016으로 3천3백 병이 시판 중이다.

 

    골동품 마니아이자 병 수집가인 아르투로

<경내에 전시중인 1898년 산 증기 기관차. 1970년 이탈리아 철도청이 베르사노 박물관에 기증했다>

아르투로는 골동품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베르사노 경내에 들어오자마자 눈에 띄는 물건은 발효탱크나 압착기가 아니라 농기구 박물관이다. 아르투로의 사택을 개조한 인쇄 박물관은 수제 와인 라벨, 수제 와인병, 광고 포스터, 수기로 쓴 메뉴, 와인지도, 고서적 등 3천 여점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대부분은 기증받은 것들로 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6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수레다. 1817년 작 '포모나 이탈리아나 백과사전'도 보관 중이며 이는 이탈리아 최초의 토착품종 백과사전으로 160페이지 분량의 초판이다. 글은 품종학자이기도 한 저자가 친필로 작성했고 그림은 화가한테 의뢰했다. 총 176부가 인쇄되었고 출판 당시 오직 귀족과 와인 전문가만 구입할 수 있던 한정본이었다.

 

<아르투로가 디자인한 메조 리트로 피에몬테제 병>

아르투로가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면서 수집한 17~18세기 와인병 콜랙션도 볼 만하다. 그는 메조 리트로 피에몬테제(mezzo litro piemontese)란 와인 병과 라벨을 직접 디자인했다. 이 병은 500ml 사이즈로 17세기에 제작된 이탈리아 최초의 와인 병인 포이리노타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특허출원도 받았다. 이병은 수집가 아이템으로 선보이고 있는데 베르사노 아이콘 레드 와인이 담겨있다. 라벨의 캘리그래피는 그의 손 글씨로 빈티지풍의 고급스러운 느낌을 낸다.

<페데리카 마시멜리 신임 대표이사>

안타깝게도 아르투로는 후계자 없이 세상을 떠났다. 1985년에 그와 절친했던 비아조 소아베와 우고 마시멜리가 인수했다. 2021년에는 우고 마시멜리의 장녀 페데리카가 지분을 인수하였고 단독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베르사노는 24종류의 와인을 시판 중이며 시그니처만 모아 논 셀랙션과 리제르바는 다음과 같다.

루케 디 카스타뇰레 몬페라토 Docg 2021. Ruche' di Castagnole Monferrato Docg San Pietro Realto 2021

 

베르사노가 최근에 인수한 '카시나 산 피에트로 레알토는 루케 품종의 크뤼로 알려졌다. 해발 250미터에 정남을 바라보며 토질이 서늘하고 배수성이 좋은 점토와 모래토로 이루어졌다. 제임스 서클링, 디켄터, 루카 마로니 같은 와인 평가지로부터 90점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른 새벽에 손 수확한 16년 수령의 루케를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숙성했다. 딸기, 복숭아, 체리, 핑크 로즈, 바이올렛, 후추의 향기가 터져 나온다. 비 온 뒤 숲이 발산하는 이끼, 제라늄의 은은한 여운을 머금고 있다. 싱그런 산미와 순한 타닌이 내는 밸런스가 유려하다.

<베르사노의 하이엔드 바르베라. 왼쪽부터 니짜 크레모시나와 니짜 리제르바 제네라라>

니짜 Docg 크레모시나 2018. Nizza Docg Cremosina 2018

2017년을 기준으로 이 전에는 바르베라 다스티 수페리오레로 선보였고 이후는 니짜 크레모시나로 바뀌었다. 아르투로를 매혹시켰던 크레모시나에서 재배한 바르베라만 모았다. 12개월 보테숙성과 6개월의 병 숙성을 거쳤다. 중심은 짙은 루비색을 비치며 잔 언저리는 밝은 루비색을 띤다. 체리, 블랙커런트, 오리엔탈 향신료, 오레가노, 타임, 아니스, 민트, 감초 향이 화사하다. 산도와 부드러운 타닌이 내는 조화가 뛰어나며 흐트러짐 없는 구조는 완성도를 높인다. 미네랄의 쌉쌀함이 입안에 개운한 느낌을 준다.

 

니짜 Docg 리제르바 제네라라 2017. Nizza Docg Riserva Generala 2017

 

제네라라(Generala)는 1995년 인수한 크뤼로 크레모시나와 함께 베르사노의 정수인 니짜 바르베라에 선발된 크뤼다. 와인 등급을 변경하기 전 제네라라 밭에서 실시한 실험은 유명하다. 먼저 일조시간이 길고 토질이 뛰어난 5헥타르만 가려내었다. 오크와 와인 접촉 기간을 36개월로 늘렸을 때 와인과 오크의 반응, 오크의 간섭여부를 실험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2014년에 리제르바를 론칭했다. 8대 2로 구분한 와인을 프렌치 오크와 슬라보니아산 보테에 나누어 12개월 숙성한 후 동일한 기간을 병 숙성했다. 루비색 사이로 오렌지 빛이 비친다. 블랙베리, 샤워체리, 오크향, 계피, 바닐라, 감초, 민트의 농익은 내음이 매력적이다. 알코올의 묵직함과 풀 보디의 힘이 솟구친다. 강한 개성에도 불구하고 타닌의 섬세함과 절제된 산도가 돋보인다.

<베르사노의 바롤로 라인>

바롤로 Docg 바다리나  2013. Barolo Docg Badarina 2013

점토와 석회토의 조화에서 오는 레퀴오 토양의 힘을 발산한다. 보테와 바리크, 병숙성을 60개월 거치면서 세밀함과 우아함을 얻었다. 투명한 루비색이 영롱한 빛을 발한다. 오렌지 필, 딸기, 레드 커런트, 블랙베리, 흑자두 같은 검붉은 과일이 발하는 복합미가 뛰어나다. 바이올렛, 후추, 넛맥, 감초, 민트, 솔잎 향이 은은하게 코를 감싼다. 긴장감 있는 타닌과 산도가 균형을 이루다가 감초 향으로 마무리된다. 탄탄한 구조감에 생동감 있는 산미와 미네랑은 감칠맛을 더한다.

 

바롤로 Docg 리제르바 칸누비 2016. Barolo Docg Riserva Cannubi 2016

숙성과정은 바다리나 바롤로와 동일하다. 체리, 블랙베리, 자두, 장미, 라벤더, 스파이시 같은 매콤한 향에 이어 가죽 타바코, 말린 바이올렛, 흑연, 오크향, 카카오가 뒤를 잇는다. 뛰어난 산도는 체리와 장미 여운이 스며있다. 타닌은 세밀한 부드러움을 입안에 남긴다. 미디엄 보디의 유려한 질감과 꼭 짜인 구조가 완성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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