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르파 Scarpa 와이너리는 상호가 주는 선입견이 있어서 방문을 오랫동안 미뤄왔던 곳이다. 이름인 스카르파는 신발이란 뜻의 이탈리아어인데, 한 켤레도 아닉 한 짝이라 선뜻 방문할 마음이 일지 않았었다. 이곳의 와인을 과거에 몇 번에 걸쳐 시음한 적이 있었는데 와인이 남기는 여운이 특이해서 한 번 가보고 싶었지만 위치가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와인 산지 같은 잘 알려진 와인루트에서 벗어나 있어서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방문을 다녀온 후에야 상호인 스카르파는 신발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알았고 나머지 한 짝은 스카르파를 방문하면 자연히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스카르파 와이너리의 시작은 18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네치아 출신 안토니오 스카르파(Antonio Scarpa)가 북이탈리아 피에몬테주 니짜 몬페라토 마을에 정착한 후 와인을 처음 만든 연도다. 상호는 설립자인 안토니오의 성을 따 스카르파라 지었다. 하지만 스카르파가 와인을 본격적으로 만들고 유통을 시작 한때는 1930년도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진게 없지만 1940년 스카르파 가족은 베네치아로 귀향하기로 결심한다. 1949년, 마리오 페셰(Mario Pesce)라는 걸출한 인물이 스카르파 가족 양조장과 포도밭을 인수한다. 마리오 페셰는 양조가 이면서도 와인 네고시앙을 운영하고 있는 와인 전문가였다. 스카르파를 인수하기 전 이미 프랑스 부르건디와 알사스에 유학 가서 다양한 와인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와인 선진국에서 배운 와인 메이킹 모델을 고향에서 실천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었다.
인수가 끝나자마자 마리오는 그의 꿈을 이룰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천한다. 그는 와이너리 운영정책과 양조 방식의 기틀을 잡는 몇가지 원칙을 세운다. 첫 번째는 장기 숙성 원칙인데 오크 숙성과 병 숙성을 포함한다. 운영 초창기 시절, 이탈리아 와인 소비 취향은 그해 만든 와인은 다음 해에 다 소비시킨다는 거였다. 와인 생산자들은 상품 회전력을 짧게 해 자금을 빨리 회수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리오 페셰는 트렌드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와이너리에서 숙성을 길게 하면 와인 품질이 좋아지는 한편 수명도 늘어난다고 프랑스 유학시절 배웠다.
그는 50헥토리터(5천 리터) 사이즈 보테(빅 베럴)에서 숙성하기로 한다. 스카르파는 두 종류의 보테를 사용하고 있는데 품종에 따라 감바(Gamba)와 가르벨로토(Garbellotto)를 사용한다. 바르베라 품종은 거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데 프랑스 산 알리에 오크(French Allier oak)로 제조한 감바에서 숙성하면 섬세함과 우아함을 얻는다. 스카르파의 시그니처 와인인 Barbera d'Asti Superiore Docg La Bogliona와 Barbera d'Asti Docg I Bricchi 와인은 이 안에서 최소 2년 숙성한다.
일반적으로 보테는 여러개의 참나무 널빤지를 조립해서 만드는데 이때 보테 형태를 잡기 위해서 널빤지 내부를 토스팅 한다. 하지만 감바 보테는 물에 미리 담가 유연해진 널빤지로 조립한다. 물을 흡수한 나무는 유연해져 모양을 만들기 쉽고 와인에 오크 구운 향을 남기지 않는다. 또한, 물에 담근 널빤지는 두께의 변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네비올로 와인은 장기간을 견디어야 하기 때문에 구조가 중요한데 슬라보니아산 오크로 제작한 가르벨로토 오크통에 숙성하면 숙성력이 증진된다.
병 숙성 기간도 매우긴데 가볍고 산뜻한 맛이 나는 영한 와인(돌체토, 루께, 프레이사, 화이트 와인)은 출시 전에 최소 6개월 놔둔다. 바르베라 다스티나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와인은 최소 2년 병 숙성기간을 갖는다. 오크 숙성이 끝나면 와인은 병에 담기는데 이는 와인에 과한 쇼크를 일으킨다. 와인이 파이프를 통과하면서 충돌과 마찰을 일으키는데 이때 와인은 거칠어지거나, 신맛이 강해 지거나 코 찌르는 듯한 냄새가 난다. 따라서 병에 넣은 뒤에 어둡고, 습도가 맞춰진 지하에서 밸런스와 조화를 얻는 시간을 오래 갖는 게 중요하다.
두 번째 원칙은 밭 관리 방식이다. 스카르파는 50헥타르를 소유하고 있는데 25헥타르는 자연 상태(숲이나 들판)로 놔두었고 25헥타르는 포도밭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자연환경과 포도밭의 비율을 같게 하면 지속가능 농법이 가능해져 포도나무에서 건강한 고품질의 열매가 열리고 결국 프리미엄 와인 생산이 수월해진다.
1962년 마리오 페셰의 조카인 카를로 카스티노(Carlo Castino)가 합류하면서 급성장기에 접어든다. 카를로 카스티 노는 알바 양조 전문학교를 졸업하지 마자 양조에 뛰어들었고 2007년 은퇴하기까지 장장 45년간 스카르파의 와인 메이커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마리오 페셰는 사업을 물려받을 후손이 없어서 2002년 스위스 사업가에게 넘긴다. 2014년에는 러시아 기업이 인수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카르파 와인의 품질과 맛은 마리오 페셰가 활약하던 시절과 변함이 없는데 이유는 외풍과는 상관없이 카를로 카스티노가 우직하게 양조를 진두지휘 했기 때문이다.
카를로 카스티노는 은퇴 후 와이너리 사택에 거주하면서 컨설팅을 맡고 있다. 양조 후계자로 지목된 실비오 트린케로(Silvio Trinchero)에게 그의 모든 양조법을 전수하는 중이다. 와인메이커가 바뀌더라도 품질과 맛을 유지하기 위한 만만의 준비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데로 와이너리 본사는 니짜 몬페라토다. 바르베라 다스티와 모스카토 다스트의 원산지인 아스티 시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바르베라, 프레이사, 루케, 돌체토, 브라케토, 티모라쏘, 모스카토 같은 아스티 토착품종 와인에 집중하며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는 원산지에서 재배한 포도를 양조와 숙성하는데 원산지 경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스카르파는 역사가 깊은 와이너리라 원산지에서 한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와인들의 양조 및 숙성 허가권을 갖고 있다. 즉, 피오 체사레, 비에티, 엔리코 세라피노, 라 스피네타 같은 유서 깊은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와인 생산 전력이 있는 와이너리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바르베라 다스티 수페리오레 볼리오나 Barbera d'Asti Superiore La Bogliona 1996 빈티지
검붉은 색이 돌며 가장자리는 갈색 톤이 비친다. 바르베라가 26년이 지났는데도 신선미와 구조가 꼿꼿이 지니고 있다. 산미가 약간 도드러지는것만 빼고는 밸런스도 잘 유지하고 있다. 견과류, 버무쓰, 흑 자두, 체리, 계피, 정향, 락카 향기가 잘 어우러져 있다.
바르베라 다스티 수페리오레 볼리오나 Barbera d'Asti Superiore La Bogliona 2015 빈티지
라즈베리, 체리, 자두, 커피, 삼나무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신선한 산미가 붉은 과실의 향을 입안에 퍼트린다. 타닌이 있는 듯 없는 듯 느껴지며 입안에서 와인을 굴릴 때 질감이 뛰어나다. 산미, 짭짤함, 타닌이 섬세하게 표현되며 서로 잘 어우러져 우아한 밸런스를 선사한다.
바르바레스코 테티네이베 Barbaresco Tettineive 2018 빈티지
선명한 루비색과 투명함이 매력적이다. 체리, 장미향이 화사하게 퍼지며 부싯돌, 흑연 향이 뒤따른다. 젊은 네비올로의 우아함이 느껴지며 타닌이 입안에 번지면서 긴장감을 높인다. 섬세하고 작은 과일향과 깔끔한 산미가 싱그러움을 전한다.
바롤로 테티모라 Barolo Tettimorra 2017 빈티지
바르바레스코보다 조금 더 짙은 루비색이 돈다. 정향, 바이올렛, 장미향이 감미롭다. 락카 부케가 경쾌함을 곁들인다. 매우 정돈된 느낌의 타닌결이 돋보이며 중심에 탄탄한 구조가 버티고 있다. 산미가 높지만 여러 향기와 어우러져 우아하며 원만한 맛을 낸다. 밸런스가 잘 잡혀 안정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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