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어렸을 때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지를 따라 단골 와이너리에 들려 와인을 사오 곤 했다. 두고두고 마실 수 있게 다미자노 병(보통 50리터)이 찰랑거릴 만큼 돌체토 와인으로 가득 채웠다고 한다. 다미자노에 담긴 와인을 작은 병에 나누어 담는 일과 식사 때마다 지하창고에 내려가서 한 병씩 들고 오던 일은 남편의 몫이었다.
시아버님한테 유일한 와인은 돌체토였고 그래서 돌체토라 하지 않고 '와인(The Wine)'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건 시댁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피에몬테 가정도 비슷했다.
그런데 지난 수 십년전 부터 돌체토 와인이 찬밥 대접을 받고 있다. 돌체토 와인은 타닌과 산도가 무난하며 알코올과 바디감도 적당히 지니고 있어 서민적 취향에 어울린다. 바로 이 무난함이 돌체토의 아킬레스 건이 될 줄이야. 바르베라의 착한 가격과 원만한 맛, 네비올로의 숙성력과 고급 이미지에 밀려 개성이 불분명 해졌기 때문이다.
돌체토의 최대 산지인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로에로 지역에서 급속도로 돌체토 면적이 감소하는 추세며 급상승 세를 타고 있는 doc급 랑게 네비올로나 네비올로 달바 양조에 쓰일 네비올로 밭으로 용도가 바뀌고 있다.
와인 자체의 개성과 상품성은 둘째 치고라도 돌체토는 단풍 색깔이 화려하고 선명한 노란색을 띠어 랑게 가을 경관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다. 돌체토 와인 원산지가 대부분 풍경이 뛰어난 유네스코 자연유산 등재지역임을 볼 때 돌체토의 기여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바롤로에서 남서 방향으로 7km(자가용 기준 10분 거리) 떨어진 곳에 있는 돌리아니 지역에 가면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이름이 돌체토 달바에서 돌리아니로 바뀌고, 등급도 Doc에서 Docg로 상향되어 품질관리는 프리미엄급 수준으로 엄격해진다. 돌체토 와인의 매력인 붉은 과일향과 상쾌한 산미를 높이기 위해 밭 고도 제한을 최소 250m에서 최대 700m로 묶어놨다. 모든 밭은 71군데로 구분해놨고 단일 밭에서 나온 돌체토는 수페리어급으로 격상된다.
지질역사와 토양성분이 바롤로와 흡사하며 대형 오크 배럴에 숙성하면 네비올로의 말린 장미와 제비꽃의 고상한 향기가 솟아 나오며 숙성력이 5년~10년으로 길어진다.
돌리아니 와인 생산자는 50명 선이고 끼오네티, 코조 마리오, 포데리 루이지 에이나우디, 아보나 마르지아노, 카 비올라, 페케니노등이 세대를 이어가며 명망을 쌓아가고 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바롤로 와인에도 진출했다. 바롤로 생산자가 돌리아니로 진출한 역투자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와인만 맛있으면 되지 하는 심정으로 관심 뚝 할 수 있겠으나, 일부 수익성 좋은 품종에 쏠리는 현상은 걱정스럽다. 이미 랑게 지역은 와인이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다른 농작물이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결과는 다른 이탈리아 와인 산지에 비해 농작물 다양성이 떨어졌다. 거기다 포도마저도 똑같은 길을 간다면 요즘 세계적인 농작물 단일화 추세와 뭐가 다른가. 재력이 든든한 바롤로 생산자들이 이런 집중하를 막는데 나서 줘서 토착품종 생태계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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