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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잘 마실께- 이탈리아 친구가 선물한 마음의 와인

와인과 얽힌 짧은 이야기들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21. 2. 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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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연령이 최소 40년인 포트와인, 1992년산 네비올로 달바, 1958년 산 가티나라 와인

몇 년 전에 알게 된 이탈리아 친구들로부터 선물을 받고 감동했다. 내가 토리노에 오래 거주하고 있어서인지 이탈리아 지인이나 친구들은 대부분 고향이 토리노다. 토리노가 북이탈리아에 속해있어서 이곳 사람들은 출신지와 관련된 편견 때문에  오해를 자주 받는다.

 

잘 알려진 편견으로는 차갑다, 이기적이다, 사교적이지 못하다. 고집불통이다 등을 들 수 있다. 나도 이런 지적들에 어느정도 동감하지만 꼭 토리노 출신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사람들은 국적, 나이를 불문하고 그런 성향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곳 사람들이 사교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에 동감한다. 그래서 거주한 지 15년이 지나서야 이곳 사람들의 성향을 대충 파악하게 되었고 늦게서야 현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빨리 익은 음식이 빨리 식는 법. 시간을 갖고 천천히 알게 된 친구들과 정을 나누고 소통하는 속도는 느리다. 서로 지나친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개인 생활을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배려심과 인정을 베푼다.

 

한 달 전 친구 부부가 성탄절 선물이라며 와인을 건넸다. 서로 알고 지낸 후 성탄절마다 와인 선물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새삼  떠벌릴 일은 아니지만 이번 선물은 뜻밖이었다. 먼지를 수북이 뒤 접어 쓴 올드 빈티지 네 병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대표 사진에 올린 와인들인데 사진에서 어느 정도 먼지를 닦아서 라벨이 잘 보인다. 막 받았을 때는 먼지가  두껍께 껴있어서 라벨 글씨가 안 보일 정도였다. 친구가 먼지도 빈티지니 너무 깨끗이 닦아내지 말라고 농담했다.

 

이 와인들은 친구부부의 외가 쪽 부모님이 작고했을 때 유물을 정리하다 발견했다고 한다. 이 와인들을 보는 순간 나한테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맨 오른쪽 와인은 수기로 Gattinara 1958년이라 적혀있는 게 보이고 좌측에 있는 두 개의 와인은 포트와인인데 생산연도(빈티지)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친구 말로는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지하 저장고에 있었다고 하니  40년은 족히 넘었을 거다.

 

이 와인들은 오랜 숙성을 견딜 수 있는 지구력이 대단한 와인들이며 친구가 직접 오픈해서 마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개 와인을 선물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무래도 내가 진지하게 와인에 빠져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분발해서 와인 공부하라는 진심도 담겨 있었을 거다.

 

1992년 산 네비올로 달바 와인은 아무래도 식초로 변했을 가능성이 높다. 친구말로는 10년 전에 똑같은 와인을 개봉했었는데 상태가 좋았었고 산미도 잃지 않았다고 했다. 1992년이면 우연찮게 조카 탄생연도와 똑같았다. 친구한테 이 와인을 다른 사람한테 선물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받은 선물을 선물하면  예의가 아니지만 워낙 희귀한 빈티지라 조카 녀석 서른 살 생일에 선물하고 싶다고 했더니 친구가 선뜻 Ok 했다.

 

언제 코비드 걱정없이 한국에 갈 날이 올진 모르겠지만 벌써 마음은 조카 생일날에 가 있었다. 조카가  동갑 띠 와인을 마시면서 행복한 생일을 맞이하는 그 순간을 꿈꾼다.

 

페라이라(Ferreira) 포트와인, 짙은 황갈색이 도는 타우니 스타일이다

 

페라이라(Ferreira) 포트 와인을 개봉하다

 

포트 와인은 포르투갈 디저트 와인이다. 포르투갈 토착품종을 섞은 주스가 알코올 발효할 때 도수가 70도 이상인 브랜디를 부어서 알코올 도수를 높인 와인이다. 브랜디를 붓는 순간 효모가 활동을 멈추면서 당도가 와인에 남는다.

 

1월 초순에 한국유학생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는데 디저트로 마실 와인을 선물 받은 포트로 정했다.

 

초대한 유학생은 작년 11월에 신랑과 함께 이태리에서 살고있다. 코비드 시대에 유학생은 다 빠져나갔는데 이 유학생 부부는 이태리 유학의 어려운 결심을 했다. 신랑은 올 수 없어서 와이프만 초대했는데 빈 손으로 올 수 없다고 케이크를 선물로 사 왔다. 토리노 중심가에 있는 한 베이커리에서 산 피에몬테 케이크라며 건냈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피에몬테산이 아니라 시칠리아 카싸타(Cassata)  케이크였다. 아무래도 외국인이니 현지 물정 모른다고 시칠리아 것을 피에몬테 거라고 속여서 판 것 같다. 정성이 많이 들어간 수제 케이크라 맛있었고 설탕절임 한 계절 과일 가니시가 얹혀 있어서 먹기에 아까울 정도로 예뻤다.

 

카싸타 시칠리아 전통 케이크

가당한 리코타 치즈, 초코 칩으로 채운 커스터드를 글레이즈로 코팅한 카세타는 매우 달았다. 거기다 가니시로 올린 과일 절임과 함께 하면 입안에 지진이 일 정도로 당도가 높았다. 개인적으로는 달콤한 스위트 와인과 마시기보다는 콘트라스트 궁합이 어울려 보였다.

 

얘를 들면 드라이한 맛 스푸만테(Brut)와 함께하면 와인 산미가 단 맛을 진정시키고 탄산가스가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해주어 와인과 케이크의 개성을 둘 다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Ferreira 포트와인

Dona Antonia Adelaide Ferreira 여사가 1751년 창립한 전통 깊은 와이너리다. 포도밭 관리부터 양조까지 창립 초기 때 매뉴얼화된 방식을 지키는 철저한 전통 포트와인 생산자다. 알코올 농도는 19.5도이며 타우니 스타일이다. 타우니 포트는 알코올 발효 중인 와인에 브랜드를 부어서 알코올 농도를 19.5도로 높인 다음  곧바로 오크통에 옮겨 장기 숙성한다.

 

짙은 황갈색이 돌며 와인을 따를 때 떨어지는 무게감에서 점도와 알코올 농도가 느껴진다. 고소한 호두, 군 밤, 조청, 버터 캐러멜, 흑설탕, 바닐라, 페인트를 떠올리는 산화취가 진하게 퍼져온다. 산미는 경쾌해서 날씬한 느낌이 들고 바디감이 묵직하다. 단맛이 높으나 끈적거리지 않으며 산미와 밸런스를 잘 이루어 단 맛에 격조가 있다.

 

호두의 고소한 맛과 여운이 상당히 길다. 와인을 다 마신 후 시간이 한참 경과했는데도 향기가 잔에 오래 남아있어 세월을 이기는 와인임을 증명했다.

 

▶포트 주정강화 와인 정리 blog.daum.net/baeknanyoung/375

 

이탈리아 마르살라와 포루투갈 포트 와인 대결

짙은 적갈색, 달콤함과 묵직한 알코올이 혀에 착 감기는 마성의 맛. 와인처럼 포도가 원료이지만 일반 와인 풍미와는 거리가 먼 주정강화 와인. 와인 앞에 붙은 주정강화란 수식어가 강한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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