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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의 짧은 바롤로 여행

와인과 얽힌 짧은 이야기들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20. 12. 20.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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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틸리오네 팔레또 마을의 브리꼬 보스키스 포도밭

피에몬테주는 13일부터 옐로우 존으로 격하되었다. 지난 11월 4일 봉쇄조치의 최고 단계인 레드 존(zona rossa)으로 격상된 지 40일 만에 부분적이지만 이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단적인 예로 레드존일 때는 거주 도시 내에서만 이동이 가능했는데 단계가 격하되면서 피에몬테주 내에서는 도시 간 이동과 현 (province) 간 이동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성탄절에서 신정까지 대휴가 기간을 앞두고 이탈리아 정부가 신규 총리령을 곧 발표할 거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휴가 때 이동과 그로 인한 감염자 수가 다시 폭증할까 봐 이탈리아 전체에 봉쇄령(레드 존)이 다시 내릴 거라는 거였다. 새 봉쇄령까지 나에게는 열 흘의 시간밖에 없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집에 갇혀있는 동안 마음에 두었던 와이너리를 가 보겠다고 결심했다.

 

일단, 와인 가이드를 참고하고 좋은 평판을 얻고 있는 바롤로 와이너리를 몇 군데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와이너리들도 거의 40일 동안 문을 닫었기 때문에 과연 영업을 재기한 곳이 있을까 의문스러웠는데 다행히 내가 연락한 곳들은 옐로 존으로 격하되어 일반인에게 문을 개방한다고 했다.

 

17일 두 군데, 18일 두 군데. 약속이 잡힌 곳은 Paolo Manzone 와이너리, Cavallotto와이너리, Ferdinando Principiano 와이너리, Levia Fontana 와이너리다. 네 군데 다 바롤로 생산자이며 포도밭 규모가 20헥타르 내외이며 가족이 운영하는 패밀리 와이너리다.

 

오래간만에 간 바롤로 첫인상은 한산했다. 레스토랑이나 바 bar도 아직 문 닫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셔터에는 코비드로 인해 내년 신정까지는 영업을 중단하다는 안내문만 붙어있어 적막감이 돌았다.

 

일부 포도밭은 가지치기를 깨끗이 끝내고 열매 가지만 남겨놔서 깔끔해 보였다. 다른 밭들은 올해 열매를 맺었던 가지들이 시들은 낙엽을 달고 있었다. 신정연휴가 끝나는 대로 곧 가지치기를 시작할 거고 1월 10일 경이되면 가지는 깔끔해진 모습을 되찾을 거라고 어떤 바롤로 생산자가 알려줬다.

열흘 전에 바롤로 포도밭에 눈 덮인 사진이 SNS에 올라왔었다. 그래서 바롤로에 가면 곳곳에 눈 쌓인 풍경을 기대했는데 눈 흔적이 없었다. 바롤로 지역 밖에 있거나 계곡 아래쪽에 있는 포도밭에만 희끗희끗 눈이 남아 있었다.

 

갑자기 어떤 바롤로 생산자가 한 말이 생각났다. 자기는 명당 포도밭을 찾으려면 눈 온 다음 날 여기에 왔었다고. 바롤로 포도밭이 한눈에 보이는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눈이 덥혀 있지 않은 포도밭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눈이 순식간에 녹아 없어질 정도로 정남향. 이것보다 더 확실한 명당 포도밭을 찾는 지혜는 없을 것이다.

 

 

와이너리 식구들도 오랜만에 사람을 보니  흡족해하고 생기 있어 보였다. 와인도 더 맛보라고 새 잔을 계속 가져오기도 하고 새 병마개를 연신 열었다. 와인 설명하는 얼굴에 화색이 돌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와이너리들은 대체로 코비드 위생규칙을 대체로 잘 지키고 있었다. 방문객 인원수도 4인 이하고 제한하고  소독 젤, 테이블당 인원수, 테이블 간격도 잘 지키고 있었다. 시골이지만 마스크는 마치 꼭 입어야 하는 의복처럼 일상화되었다.

 

몬포르테 달바 마을 정상에 있는 야회 음악당

 영업하는 레스토랑을 찾는데 힘이 들거라 생각했는데 와이너리 직원한테 물어봤더니 한 군데 알려준다. 이 근 방에서는 그곳만이 유일하게 문을 열었다고 했다. 아무리 옐로 존으로 격하되었지만 레스토랑은 점심만 영업하고 18시 이후에 영업은 금지다.

 

한 곳이라도 열었다니 감지덕지할 밖에.. La Rosa dei Vini라는 레스토랑인데 바롤로에서는 유명한 맛 집이다. 와인 리스트도 훌륭하고 와인과 궁합이 맞는 전통음식 메뉴가 잘 짜여있다. 포도밭을 향한 전망 좋은 테라스 쪽 홀만 개방했는데 다섯 테이블 정도 차 있었다.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대화로 짐작컨대 손님들은 모두 이곳 주민들인 것 같았다. 와인, 포도밭, 날씨, 누구네 집은 포도작황이 별로 였다는 등. 와이너리 직원인 것 같기도 했고 손님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옐로 존으로 격하되었지만 아직 도시인들이 일부러 와인 시음하러 바롤로까지 원정 온다는 게 쉽지 않겠지 싶었다.

 

아뇰로띠 델 플린, 피에몬테식 전통 라비올로

 

 

바롤로 와인 소스를 곁들인 안심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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