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블로그를 운영하지만 온라인 와인 매체에서 이탈리아 와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한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거주하는 이점을 십 분 발휘해 현장감 있고 진실성 있는 이탈리아 와인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다.
작년 2월부터 현재 진행형인 팬데믹은 연간 계획과 일정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놨다. 한치 앞길을 내다보기 힘드니 하루살이 마냥 하루하루를 연명해가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현재 이탈리아 코비드 상황은 이렇다.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에 따라 이탈리아 20개 주는 세 가지 색깔로 차등을 두고 있다. 레드 존, 오렌지 존, 옐로 존으로 레드--> 오렌지--> 옐로 순으로 이동제한과 사회활동 자유의 변동이 심하다.
예를 들면 레드 존은 최고 수준 제한령인데 본인 거주지가 속한 마을, 도시를 벗어 날 수 없으며(직업과 업무 사유는 제외), 22시 이후 통행금지, 레스토랑과 바의 영업시간 제한, 공연과 체육시설은 전면 영업금지다. 오렌지--> 옐로 존으로 격하되면 이동제한이 어느 정도 완화되어 도시, 군(province), 주(region) 간 이동이 가능하다. 작년 11월 이후 이탈리아 모든 주는 색깔이 수시로 변동되고 있어 마치 색깔 널뛰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탈리아 와인 행사 중 비중도가 높은 이벤트는 1월~2월 사이에 몰려있다. 개별 와인 컨소시엄이 주관하는 안테프리마(Anteprima)가 그러한데 일명 프리뷰(preview) 또는 엉프리뫼(en primeur)라고도 한다. 와인이 규정대로 와인셀러 숙성을 마치면 세상에 선보이는 연례 공식 행사다.
안테프리마는 와인 저널리스트, 와인 수집가, HORECA (식음료업계) 종사자, 애호가가 초대되어 와인을 시음 및 평가한 후 와인 오피니언을 자유롭게 형성하는 자리다. 이 오피니언은 그해 와인 판매량과 소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안테프리마는 연기되었거나 아직 개최 여부가 미정이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와인 안테프리마인 그란디 랑게(Grandi Langhe)와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안테프리마는 보통 1월 말에 열리는데 2월 말로 연기되었다. 2월 둘째 주와 셋째 주에 개최되는 안테프리메 토스카네(Anteprime Toscane, 토스카나주 주요 레드와인)는 5월 중순으로 미루어졌다.
어디 이것뿐이랴. 와인박람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탈리아 최대 와인축제인 빈이탤리(Vinitaly)는 6월 중순으로, 독일의 프로바인은 아예 취소되었다. 국제 와인품평회도 연기되거나 아니면 예정대로 개최하기는 하나 출품 와인수가 대폭 줄어들고 심사원 수를 제한하는 등 소규모로 치러질 전망이다.
진행 방식도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행정명령을 지키다 보니 대부분 비대면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비대면 행사, 일명 온라인 테이스팅이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어떻게 진행되는 걸까.
참가자(또는 신청자) 주소로 미리 와인과 자료를 배송하고 행사가 예정된 날에 주최자(생산자, 와인 강사, 소믈리에)가 미팅과 세미나를 비대면으로 진행한다. 시음 부분은 참가자가 자신의 스케줄과 재량에 따라 시음 날짜를 조정할 수 있는 플렉시블 타임 방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온라인 시음회는 보통 한 시간, 길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세미나와 질문 & 답변하는 시간도 빠듯하다.
안테프리마는 생산자들이 자신의 와인을 들고 와서 포도밭부터 양조 전 과정을 설명한다. 그러다 보니 행사장은 시음 와인 숫자가 수백 병에서 수천병에 달하고 양조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와인 냄새로 가득 차다. 수적 양적으로 두드러지는 행사는 슈퍼 감염원으로 눈총 받는 비대면 시대에 살고 있으니 새로운 시음 방식 모델을 구축하려면 쉽지 않다.
최근에 로에로 와인 컨소시엄이 제안한 'Virtual Anteprima'가 신선해서 여기에 소개한다. 작년에 팬데믹 직격탄을 맞은 로에로 컨소시엄은 일체의 공개 행사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올 해는 안테프리마 기간을 한 달로 연장했다. 신청자와 생산자(와이너리)를 소그룹으로 나누어 몇 차례에 걸쳐서 비대면 행사를 진행한다. 물론, 시음용 와인과 자료는 미리 신청자 집에 택배로 전달되며, 행사 당일날 신청자는 자신이 받은 와인 생산자들과 가상(virtual)으로 만나게 되는 방식이다.
참여 인원수가 제한적이고 미팅마다 생산자와 참가자가 달라지니 주어진 시간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다만, 와인 행사가 5월에 몰린다는 점이 걱정된다. 몰리다 보니 참가자 입장에서는 행사가 겹치므로 취사선택해야 한다는 점이 아쉽다. 이렇게 몰리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작년 경험이 반영된 것 같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감염자 수가 줄어들 거란 추측이 제 일의 변수였고 농번기 전이라 와인 생산자들이 시간에 쫓길 필요가 없을 거란 점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속담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라고 했다. 모든 게 예전과 같지 않다고 불평하기보다는 현실 상황에 맞게 적응해서 살라는 의미리라. 이탈리아는 작년 12월 말부터 코로나 백신이 투여되고 있다. 아직 접종률은 2.5% 미만인데 갑자가 화이자가 이탈리아에 백신 공급을 줄인다는 소식이 불거져 나와 국민 70% 이상이 백신을 맞게 되어 집단면역에 이르는 길은 멀어졌다. 하지만 여러 가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추진할 의욕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비록 소규모라 예전 같은 파급효과는 기대치에 못 미치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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