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일즈 출신 작가 로알드 달은 자신의 시신을 초콜릿, 연필, 와인과 같이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연필은 직업이 작가이니까 이해가 가는데 음식은 약간 의아했다. 생전에 얼마나 음식을 좋아했길래 이런 유언을 남길정도였을까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와 함께 묻힌 와인은 어떤 와인일까 궁금했다.
고인을 알게된 건 "맛"이란 단편소설을 읽으면 서다. 제목이 주는 뉘앙스에서 음식이 주제인 글로 오인하기 쉽지만 사실은 '와인'이 주인공이다. 나는 독서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소설 전개 과정이 온전이 와인에 초점이 맞추어진 소설은 "맛" 이 처음이다.
번역상 어색한 와인용어를 제외하고는 상황설명과 표현을 미루어 볼 때 전직이 소믈리에로 여겨질 정도로 저자는 와인에 조예가 있다. 특히, 주인공이 테이스팅 경험과 포도밭 지식에 미루어 와인 포도밭과 샤토를 구별해 내는 장면은 사실적이어서 소설 몰입도를 높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증권 중개인 마이크 스코필드는 '식도락가'라는 소모임의 회원이다. 모임의 회장은 리처드 프랏이란 유명한 미식가다. 마이크는 종종 자신의 저택에서 식도락가 회원들을 초대해서 저녁식사 모임을 갖는다. 마이크는 모임의 흥을 돋우기 위해 조그마한 내기를 건다.
그가 세심히 준비한 와인의 품종과 연도를 알아맞추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내기다. 와인에 조예가 깊은 리처드는 내기를 받아들였고 맞춘 대가로 마이크가 준비한 와인을 선물로 받곤 했다.
그날도 마이크 집에서는 미식가 모임이 열렸다. 이날 두 남자는 좀 과하다 싶을 만큼 내기를 건다. 마이크는 리처드가 와인을 알아 맞추지 못하면 리처드의 집 두 채를 갖게 되고, 리처드가 이기면 마이크는 애지중지 키운 외동딸 루이즈를 50대 노총각 리처드에게 시집보내야 한다.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마이크는 내기 와인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밭에서 나온 와인이라 리처드가 그 밭을 알아맞히기는 불가능하다면서 안심시킨다.
리처드는 프랑스 와인 지식(내기 와인은 프랑스산)과 미각을 동원해서 수백개의 가능성에서 지역, 마을, 포도밭 등급, 생산자, 연도 순서로 정답에 다가간다. 마치 잔가지를 쳐내고 좋은 포도열매를 피울 어미 가지를 골라내 듯 그는 용이 주도했다.
가장 생생한 표현을 이곳에 옮긴다.
"나는 지금 산지의 '등급'을 확인하려 하오. 그것만 할 수 있다면, 이 전투의 반은 이긴 거지. 자, 어디 보자. 이 포도주는 분명 일 등급 포도밭에서 나온 것은 아니오. 이 등급 포도밭도 아니야. 이것은 훌륭한 포도주가 아니야. 이 포도주의 품질에는 뭐냐, 거 뭣이냐, 광체, 힘이 빠져있어. 하지만 삼 등급 포도밭이라면...... 그래 삼 등급일 수는 있지. 하지만 삼 등급도 아닌 것 같아. 우리는 이 포도주가 좋은 해에 나온 거라고 알고 있소. 주인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건 이 포도주에 약간은 아첨을 하는 걸 거요. 여기서 조심해야 돼. 아주 조심해야 돼."
몇 분이 흘렀을까. 리처드는 와인이 보르도 산, 메도크 지역의 생줄리엥 코뮌에서 샤토 브라네크-뒤크뤼 1934년 산임을 알아낸다. 순간 마이크는 꽊 끼는 옷을 입은 듯 얼어붙었고 리차드의 얼굴은 승자의 고요한 오만이 내 비치고 있었다.
리차드의 승리가 확실해지는 그 때 반전이 끼어든다. 음식 시중을 들던 하녀가 갑자기 리차드 곁으로 다가가 안경을 건낸다. 주인의 서재의 녹색 서류장 위에 놓여있던 건데, 리처드가 저녁식사 전에 혼자 거기에 들어갔을 때 놓고 온 거라는 말과 함께...
서재는 리차드가 코르크를 뺀 와인이 숨을 쉬게하기에(디캔팅, decanting) 적합하다고 추천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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