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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올로 와인 한 잔으로 니체 상념에 젖다

피에몬테와인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20. 10. 8.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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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오모 GHIOM 와이너리의  2015빈티지 네비올로 달바와인

기오모(Ghiomo) 와이너리의  네비올로 달바 와인을 리델 잔의 반이 차게 따랐다. 와인을 막 따랐을 때는 꼬릿 하며 축축한 냄새가 났다. 와인이 담긴 잔을 한 켠에 놔두고 30분 정도 기다리면서 와인의 변화를 지켜보기로 했다.

 

시간이 경과하자 와인은 가죽, 타바코, 정향, 허브, 삼나무 등 원숙한 향기를 피우기 시작했다. 타닌은 와인전체 맛과 잘 어우러져 밸런스가 돋보였고 목 넘김이 매끄러웠다.

 

생각건대 와인이 처음부터 원숙함을 드러내지 못한 이유는 와인이  5년 동안 병 안에 갖혀 있었던 탓으로 여겨진다. 그러다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억눌려 있던 본연의 향기를 물꼬 터지 듯 발산했다.

 

기오모 와인이 내게 준 인상을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경험했다. '니체의 삶'이란 책인데 저자가 니체가 지인 및 친구들과 주고받은 서신과 논문,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서 써 내려갔다.

 

니체는 나의 제2의 고향인 토리노(이탈리아 피에몬테주의 수도)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라고 일깨웠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나는 토리노를 선택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주 해야 할 현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니체는 삶의 무게에 눌려 있던 토리노의 진면목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맑은 시선을 되돌려 주었다.

 

니체가 토리노를 발견한 때는 그의 나이가 45세가 되던 해다. 니체가 56세에 사망했으니 그가 황혼에 접어든 무렵이었다. 몸이 유전적으로 허약했던 니체는 요양차 유럽 휴양지를 전전했다. 그는 아주 마음에 드는 도시를 발견하면 고향으로 삼고 연례 순회를 했다. 그의  연례 순회지는 니스, 실스마리아(스위스에 소재), 토리노로 알려졌다.

 

니체는 친구한테 보낸 편지에서 열광적으로 토리노를 찬양했다. 1만 20미터에 달하는 아치형 회랑은 햇빛 알레르기로 고통받는 니체 두 눈에 적당한 밝기를 드리웠다. 산책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는 습관이 있던 니체는 폭우가 내리는 날도 회랑을 유유히 걸으면서 메모장이 젖을 염려 없이 마음껏 메모를 해댔다.

 

니체에 헌정하는 기념물. 니체가 머물던 하숙집이 있던 건물에 세웠다

극심한 식이요법을 고집하던 니체의 식욕을 끌어올린 맛있고 값싼 토리노 식당들. 그 어떤 유럽 도시보다 풍미가 뛰어난 에스프레소와 수제 아이스크림. 수정궁을 본떠 만든 수발피나 갈레리아 등 니체는 지상낙원을 발견한 듯 열광했다.

 

니체가 토리노를 두 번째로 방문한 해 즉, 1889년 1월 3일 그 일이 벌어진다. 장소는 니체가 빌려 쓰던  3층 하숙집에서 매일 내려다보던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이다.

 

산책 후 집으로 돌아가던 니체는 마부가 말을 심하게 채찍질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니체는 갑자기 말에게 달려가서 말의 목을 부둥켜안고 통곡을 하다가 정신을 잃는다.

 

이미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과대망상증 징후를 보이던 니체는 말 사건을 계기로 평생 정신병을 앓게 된다. 마음을 저미게 하는 것은 철저한 고립생활과 외면 속에 써 내려간 그의 책들이 재평가받아 베스트셀러가 되기 몇 해 전에 정신병이 덮친거다.

 

오늘 나는 니체가 131년 전 걸었던 길을 따라가기로 했다. 니체가 감탄하던 그 건물과 거리를 나도 체험하고 있다는 생각에 토리노가 살아있는 생물체로 느껴졌다. 니체가 산책을 즐겼던 장소는 토리노 중심가로 한정되며 인구 9십5만 명이 사는 현재의  토리노에 비하면 아주 일부분이다.

 

니체는 네비올로 와인을 마셨을까?  책 어디에서도 니체가 와인을 좋아했다는 구절이 없다. 니체의 도시 토리노에서

 

갈레리아 수발피나. 수정궁 모양을 본 떠 만들었다. 우아한 자태로 토리노의 살롱이란 별명을 얻고 있다. 내부에는 고서점, 바, 귀금속 가게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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