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16세기 르네상스 저택에서 만난 아마로네 와인

와이너리 방문기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18. 3. 19. 00:26

본문



요즘 와이너리에 가면 볼 것이 많아 와인도 마시고 눈도 호강한다. 와이너리 오너 가족이 귀족의 저택이나 고궁 그리고, 수도원을 구입해 복원한 후 문화공간으로 변모시켜 와인 애호가 및 일반인들한테도 개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럴 여력이 없는 와이너리는 와이너리 경내에 의미 있는 곳을 예술의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입구에 와이너리의 생산 철학을 담은 조각을 세우거나 숙성실에 유명 화가의 그림을 걸어 놓는 게 그 예다. 일부 생산자들은 자사 소유의 포도밭에 옛날부터 있던 예배당이나 창고를 개성 있는 컨셉을 담은 건물로 개조시켜 포도밭 환경을 예술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러한 와인과 문화의 접목 활동은 와이너리의 이미지를 향상하면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에 가치를 부여해 와인 판매 증가에 기여한다.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도 지금 마시고 있는 와인이 멋진 조각품이 걸려 있던 셀러에서 숙성된 걸 알면 '어쩐지 더 맛있다'하며 흡족해 할 수도 있다.


2008년 알레그리니 (Allegrini) 가족은 발폴리체라(Valpolicella)계곡의 푸마네(Fumane)란 작은 마을에 있는 "빌라 델라 토레(Villa Della Torre)" 저택을 구입했다. 4년에 걸친 복원공사 후에 2012년부터 이곳은 알레그리니 와이너리의 공식행사 및 와인 미디어 행사, 관광객 방문 및 와인 시음 전담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와 인관련 행사 외에 각종 미술, 사진 전시회, 음악 콘서트도 유치해 일반인이 와인 세계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두도록 유도한다.


빌라 델라 토레의 외관을 처음 보았을 때는 최근에 복원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빛바래 보였다. 기와가 겹친 곳에는 이끼가 껴있었으며 돌멩이 벽담의 색은 전체적으로 노란색이지만 돌멩이 하나하나가 노란빛의 옅고 짙음이 달랐다. 안내자에 따르면 귀족의 저택이지만 농촌에 있는 까닭으로 시골 적 정취와 고풍스러움의 조화가 훼손되지 않게 과도한 복원을 자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빌라 델라 토레는 1560년에 완성되었으며 베네토의 지성이자 부호였던 '델라 토레' 가문 소유의 별장이었다. 저택을 설계한 건축가는 줄리오 로마노로 이 저택 말고도 만토바에 있는 Gonzaga Palazzo Te 궁을 설계했다. 저택은 당시 유행하던 르네상스식으로 지어졌으며 아담하며 주변 경치와 조화를 이루고 있어 귀족의 저택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이나 엄숙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다.



건물은 드넓은 농장 중심에 위치하여 델라 토레 가문의 영지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했으며 16세기 도시의 시끌벅적함에서 벗어나 정신의 안정감을 줄 수 있는 편안한 인테리어나 장식으로 세심하게 꾸며져 있다.


저택은 언덕 경사면을 따라 지어졌으며 방문객 환대나 주거 공간은 저택의 낮은 곳과 중앙에 모여있다. 빌라의 입구에는 호수 바닥에서 가져온 조약돌과  소라, 고동으로 벽이 장식된 그로따(grotta, 동굴)와 큰 연못이 위치한다. 연못에 난 계단을 지나면 페리스티리오(peristilio)에 도달하는데 마당 한가운데는 빗물을 모아두는 임프루비움(impluvium, 돌기둥이 받들고 있는 수반)이 서 있고 그 주변은 돌기둥이 늘어서 있는 회랑이 둘러싸고 있다. 이 회랑의 중간에 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중앙 홀이 보이고 홀 주변에 중세 가구와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로 꾸며진 방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저택의 가장 인기 있는 볼거리는 네 군데의 방에 있는 벽난로로, 각 방의 중앙 벽에 마치 당신을 삼킬 듯 입을 벌리고 있다. 벽난로는 악마, 천사, 사자, () 신 이란 별명을 갖고 있으며 벽난로에서 장작이 탈 때는 마치 화 난 조각이 화염을 쏟아내는 듯하다. 재미있는 건 이 벽난로들의 위치인데 천사는 악마의 반대쪽, 사자는 해신을 마주 보고 있도록 배치해 서로의 힘을 견제하고 있다.





저택의 가장 높은 곳에는 델라 토레 가문의 가족 예배당을 지어 신의 세계와 닿게 했다. 이뿐만 아니라 저택을 이루는 요소들은 각각의 존재 의미가 있는데 빌라 입구에 놓인 연못은 물, 동굴은 흙, 벽난로는 불을 상징하며 우주의 3대 원소를 저택 내부로 끌어드렸다.


알레그리니는 16세기경부터 와인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알레그리니 가족이 만들던 와인은 다품종 다 생산에 맞게 가꾸어진 밭의 한 모퉁이에 심어진 포도나무에서 왔다. 즉, 이탈리아의 다른 농부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농가였다가 1960년대 조반니 알레그리니가 가업을 이은 후 급속히 와인 전문 생산자로 변신한다. 이 시기는 일반 사람들이 갖고 있던 아마로네 와인에 대한 편견이 벗겨지는 때와 일치하기도 하다.


조반니 알레그리니가 가업을 이어받기 10년 전 아마로네 와인이 처음 탄생했을 때 레초토 와인의 단맛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아마로네의 신비로운 탄생보다는 실수로 태어난 실패작으로 여겼다. 그러다 조반니를 비롯한 일부 생산자들은 혀의 조임이 덜하고 묵직한 타닌과 높은 알코올, 밸런스가 잡힌 맛과 향을 부각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알레그리니 와이너리는 126 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 밭의 대부분은 발폴리첼라 계곡에 조성된 포도밭(총 6천여 헥타르) 중 옛날부터 우수한 레드와인 생산지로 알려진 클라시코 지역에 모여 있다. 클라시코 지역은 다섯 군데의 마을(Sant' Ambrogio, San Pietro in Cariano, Fumane, Marano, Negrar)을 합친 지역이며 발폴리첼라 계곡의 서쪽에 위치하며 이탈리아 최대의 빙하호수인 가르다 호수를 지척에 두고 있다.


거대한 호수가 기온을 완화하기 때문에 계곡에서 가장 기후가 온화하다. 또한, 강수량이 연 중 900~1100mm로 풍부하며 땅의 배수력과 저수력이 좋아 여름 가뭄이 심했던 2017년에도 클라시코 지역에서 자라는 포도들은 예년처럼 건강하게 맛을 농축할 수 있었다.


발폴리첼라 계곡은 예전부터 포도를 건조(아파시멘토, appassimento) 한 후 그 농축된 포도즙이 천천히 발효하고 숙성되는 느림의 와인을 즐겨왔다.알레그니리의 발폴리첼라 와인들은 건조된 포도의 사용 여부, 사용했다면 그 함량에 따라 시음 순서가 정해진다. 갓 수확한 포도로 만든 발폴리첼라 클라시코로 시작해 90일 넘게 건조된 건포도 100%로 만든 아마로네로 끝난다. 아마로네 전에 마시는 와인들은 아마로네라는 궁극을 가기 위한 신성한 준비 과정이다.




발폴리첼라 클라시코(Valpolicella Classico DOC) 2017년 빈티지, 9월 말 수확한 코르비나 베로네제 (65%), 론디넬라(30%), 몰리나라(5%)를 블랜딩 한 와인. 전체적으로 짙은 적색이 나지만 잔에 닿는 가장자리는 보랏빛이 돈다. 수확한 후 스테인리스 스틸 용기와 병 숙성을 4~5개월 했다. 달콤한 체리, 라즈베리, 와인 발효 향, 후추, 허브, 스파이시 향이 매혹적이다. 상큼한 산미와 탄닌이 조화롭고 중간 보디감 정도의 무게감이 입안에 느껴진다.


팔라쪼 델라 토레(Palazzo Della Torre IGT) 2014년 빈티지, 와인 이름은 '빌라 델라 토레' 저택 주변에 있는 26헥타 포도밭에서 왔다. 한 달 간격을 두고 수확한 코르비나 베로네제(70%), 론디넬라(25%), 산조베제(5%)를 블랜딩 했다. 포도의 순수한 맛과 건조된 포도의 응축미를 7:3으로 섞은 블랜딩의 묘미가 놀랍다.


양조과정은 다음과 같은데 먼저, 9월 초에 수확한 위의 세 품종 (전체 포도의 30% 차지)을 석 달 간 건조한다. 10월 초에 수확한 포도(전체 포도의 70% 차지)는 일반 레드와인처럼 발효시켜 스테인리스 스틸 용기에서 숙성한다. 다음 해 1월이 되어 건조가 끝난 건포도를 압착한 모스토를 숙성 중인 와인에 부은 후 2차 발효를 한다. 이후 오크통에서 젖산 발효를 한 와인은 프랑스산 배럴로 옮겨져 15개월 숙성한 후, 병에서 다시 7개월간 숙성한다.


짙은 루비색이 돌며 보랏빛이 섬광처럼 비친다. 와인을 따른 직후 건포도와 잘 익은 적색 과일 향이 나다가 버섯, 볏짚, 흙, 바닐라, 코코아, 계피 향기로 바뀐다. 미디엄 보디의 묵직함이 입안을 채우며 탄닌의 원만함과 아몬드의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 클라시코(Amarone Della Valpolicella Classico DOCG), 2011년 빈티지. 코르비나 베로네제(90%), 론디넬라(5%), 오세레타(5%)를 세 달간 건조한 포도로 양조했다. 상당수의 아마로네 생산자들은 코르비나, 론디넬라, 코르비노네 품종을 블랜딩해 와인을 빚지만 알레그리니는 코르비노네가 포도알이 커 와인의 응집력을 희석하기 때문에 오세레타 품종을 선호한다.


코르비나 베로네제 품종은 색소 성분이 풍부하며 껍질이 두꺼워 겨울 추위에 잘 견디어 장기 건조에 적당하다. 건조 후에 탄닌과 산미의 조화로운 결합과 그 안에 구조감과 우아함이 녹아든 멋진 와인이 된다. 여기에 소량(5%) 이지만 오세레타품종을 섞으면 과일향, 스파이시, 풍미감, 긴 여운이 강화되어 아마로네에 날개를 달아 준다.


검붉은 체리, 블랙베리, 말린 바이올렛, 발삼, 감초, 커피, 초코릿, 타바코 향기가 난다. 벨벳 같은 탄닌, 모나지 않고 상큼한 산미는 아마로네의 알코올에서 오는 단 맛의 느낌을 감소시킨다. 풀보디의 중후함과 구조감이 잘 결합한 깊고 다양한 풍미가 입안을 풍요롭게 감싼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