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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게의 작지만 석류처럼 속이 꽉 찬 와이너리(2)-팔라조 로쏘 (Palazzo Rosso)

와이너리 방문기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17. 11. 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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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투어를 하다 보면  대형 와이너리보다는 중소규모(연 20만 병 이하 생산규모)의 와이너리에서 더 환대를 받고 와인 양조에 대한 최신 정보를 얻는다. 코와 입이 "그만!" 소리를 지를 때까지 시음 와인 수 가 적정 수준을 넘을 때도 꽤 많다. 다니엘레와 모니카 남매가 운영하는 '팔라조 로쏘(Palazzo Rosso)'와이너리의 정문을 나왔을 때 내가 느낀 기분들이다.


다니엘레와 모니카 남매는 로에로에 25헥타르의 밭을 소유하고 있으며 포도밭은 지명이 포카파리아(Pocapaglia)란 마을에 모여있다. 로에로 지역 와인은 이웃인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마을처럼 돌체도, 바르베라, 네비올로 와인이 주가 된다. 하지만 로에로 와인이 이탈리아 와인등급에 DOCG로 지정될때 네비올로와 아르네이스 화이트와인이 같이 주품종으로 선택되었기 때문에 로에로에서는 레드 만큼 화이트의 비중이 크다.


참고, 로에로(Roero) 와인지역에 대해:랑게 언덕을 흐르는 타나로(Tanaro) 강은 동쪽에서 흐르다가 알바(Alba)에 도달하면 그 강줄기를 완만하게 비틀어 북동쪽으로 흐른다. 타나로강의 물길이 바뀌기 전 12km와 물길을 바꾼 후 북동쪽으로 26km 더 흘러간 구간은 랑게를 두 부분으로 나뉘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타나로의 물길이 전진하는 방향을 기준으로 할 때 강의 남쪽은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와인 지역이며 이 지역과 북쪽으로 대칭되는 곳은 로에로(Roero) 와인 지역이다.


                                          <위: 모니카와 다니엘레 남매>


참고로 로에로 DOCG와인 병의 라벨은 다음처럼 표시한다. 네비올로로 양조되었으면 Roero DOCG, 아르네이스로 양조된 것은 Roero Arneis DOCG로 표시되는데, 이것은 단순히 로에로 와인의 원료가 적포도와 청포도로 제한되지만 두 와인 모두 Roero DOCG 규정에 따라 만들어지므로 하나의 DOCG로 본다.


남매가 생산하는 와인은 로에로 와인의 특성인 레드와인과 화이트의 와인의 공존을 반영해 레드와인 50%, 화이트 와인 50% 로 구색을 갖추었다. 17세기 중반 크리스티나 섭정이 과실향과 산미에 반해 그녀의 총애하는 와인이 되었다는 후문이 있는 파보리타(favorita) 와인과 이것보다 열대 과일향이 두드러지고 산미가 원만한 아르네이스는 로에로 와인의 개성을 상큼하게 보여준다.


남매는 조부모와 부모세대가 구축한 고객층과 이탈리아내 와인 판매망을 견고하게 다졌다. 이들은 부모세대처럼 로에로 와인을 만들지만  때로는 와인Bar나 레스토랑 고객의 조언을 귀담아 듣는다.


2016년 3억 병 생산이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프로세코의 인기는 랑게의 생산자들이 외면할 수 없는 무게로 누르고 있다.

알타랑가나 아르네이스 스푸만테 같은 랑게 발 스파클링와인 출시로 어느 정도 프로세코의 랑게 진입을 늦추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프로세코와 유사한 트렌트의 스푸만테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대항하자는 적극적인 외침도 있었다.


남매는 '끼아로디루나(Chiarodiluna)'라는 약발포성 와인으로 목소리에 화답한다. 샤르도네(50%), 아르네이스(40%), 모스카토(10%)를 블랜딩한 꾸베(Cuvee)를 샤마 압력 용기에 넣어 탄산가스를 발생시켰기 때문에 버블이 상큼하게 입안에서 터진다. 탄산이 혀에 와 닿는 느낌에 따라 비바체(vivacce), 프리짠테(frizzante), 스푸만테로 나뉘며 단맛의 정도에 따라 드라이, 엑스트라 드라이(Extra dry), 브릿(Brut) 맛이 있다. 단맛이 덜할수록 탄산가스 방울 크기와 혀에 와 닿은 찌릿한 느낌이 덜하다.


남매 중 양조를 맡고 다니엘레는 바롤리스트(바롤로 와인 생산자)가 되는 꿈을 갖고 있었다. 바롤로 와인 지역 경계에서 11.5km(남매가 운영하는 와이너리에서 가장 가까운 Cherasco 바롤로 마을) 떨어진 곳에서 이 꿈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바롤로 와인의 가장 중요한 원료인 네비올로 포도를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 다니엘레한테 다음과 같은 대안이 떠올랐다. 바롤로 마을에 포도밭을 소유하지만 자본과 판로가 없어 포도농사만 짓는 농부와 협업해서 바롤리스트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마침, 디아노 달바와 베르두노(Diano d'Alba, Verduno는 바롤로 와인이 생산되는 마을) 마을에 포도밭을 갖고 있는 농부를 알게 되었고 그에게 양조및 숙성에 필요한 시설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바롤리스트 꿈을 향한 첫 발을 떼었다.


매년 농부들이 수확한 포도는 다니엘레의 양조장으로 보내지며 바롤로 와인 규정에 따라 양조와 숙성된 후 병입 되어 '팔라조 로쏘' 라벨이 부착된 채 다니엘레의 고객망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이쯤 되면 자본,기술과 원료공급자가 서로 윈윈하는 상생관계 구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때로는 다 숙성된 와인을 남매가 운영하는 '팔라조 로쏘' 건물로 옮겨와 병입 할 때가 있는데 바롤로 와인의 병입은 Cuneo군청 관할 지역 내에서만 할 수 있는 거리제한제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다니엘레는 흥미로운 사실로 우리를 그의 바롤로 세계로 안내했다. '바롤로의 색깔 접근'이라고 해야 할까!


레드와인의 색은 안토시아닌 색소가 알코올과 접촉할 때 우러나온 색소 성분 때문인데, 접촉 시간이 길면 색소가 많이 추출되어 레드와인의 색은 진해지고 반대로 시간이 짧으면 색은 연하다.그러나 네비올로는 우리의 기대를 벗어난다. 즉, 네비올로는 안토시아닌과 알코올이 접촉하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색깔이 옅어진다고 한다.


이 접촉 기간은 열흘을 기준으로 열흘 이전에는 껍질로부터 안토시아닌이 다량으로 추출되지만 15일 지나면 껍질이 오히려 안토시아닌을 재흡수한다. '디아노 달바(Diano d'Alba)'의 네비올로로 만든 바롤로는 8~10일간 접촉 했지만 색깔과 톤이 짙고 풍부했다. 반면, 15일 이상 안토시안을 추출한 '베르두노(Verduno)' 바롤로는 투명한 루비색이 돌았다.


좀 더 짙은 색의 바롤로는 네비올로의 풍부한 과실, 꽃, 감초 향과 섬세하면서도 강직한 탄닌이 느껴졌으며 투명한 루비색이 나는 바롤로는 금속 향기를 발산하다가 네비올로 특유의 과일과 꽃 향기로 변했다.


이런저런 설명을 신기하게 듣고 있는 나를 지켜본 다니엘레는 즉흥적으로 깜짝 쇼를 마련했다. 다니엘레의 부친이 생산했던 네비올로 와인이 이 백 여병 재고가 있는데 1년에 한 두번 특별한 날에 오픈을 하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이라고 했다. 너무 고마웠지만 이런 올빈을 갑자기 열면 닫혀있던 향기가 얼마나 빨리 열릴지 궁금했다.


                         <↑: 생전에 남매의 부친이 양조한1997년 빈티지 네비올로와인>

                                                          

코르크 마개의 상태는 좋았지만 일단, 향기 맡기와 맛을 보는건 수십 분 뒤로 보류했다. 색은 적갈색이 돌고 간간이 오렌지빛이 스며 나와 네비올로 와인의 건강한 숙성 상태를 알 수 있었다. 견과류, 메니큐어, 가죽, 버섯향이 차례로 피어났고 탄닌이 부드럽게 느껴졌지만  긴장감이 약해 와인의 절정기가 지난듯 했으며 반면에 산미는 상당히 두드러졌다.


남매가 한 잔 더 권유하는 제스처를 보냈지만 20분 이상 실온과 접촉한 와인이 이제 막 잠에서 깰 조짐을 보이는데 여기에 새 와인을 따르면 기다린 보람이 없어질까 봐 사양했다. 와인은 잔 바닥에서 엄지손가락 손톱크기 만큼 남았지만 산소와 접촉한 후에는 전혀 다른 맛과 향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잔 바닥이 비칠 만큼의 한 모금이었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입안에 착착 감기는 듯한 감동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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