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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와이너리를 지킨다

와이너리 방문기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18. 6. 1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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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너리에 가본 적이 있다면 주인의 환영인사 후, 자신 소개로 이어지는 걸 들었어본적이 있을 것이다. "증조할아버지가 지금의 건물을 사 와이너리로 개조했다~" 아니면 "두 세기 전 나의 조상은~" 같은 문장으로 시작되는 가족과 친척들이 와인계에 몸담게된 사연과 현재의 규모로 크는데 겪었던 성장통 이야기를 들려준다.



걷고 있는 나의 머리 위를 마하(Mach)의 속도로 지나가는 신예 전투기에 비교할만한 인터넷 속도와 미처 작동법도 익히기 전에 성능 개선된 하이엔드 제품이 연달아 등장하는 초고속 편리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지만, 정작 첨단기술이란 멋진 포장이 감추고 있는 불편과 재앙을 예언하는 능력은 그렇게 낳아진건 없다. 그런 점에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수단이 낙후했던 과거에 한 가족이 몇 백 년간을 와인 하나로 버티어 온 능력은 높이 살 만하다.


와인을 만들어온 지 꽤 오래된 와이너리에 가보면 가족과 친척이 서로 이끌어가는 패밀리형 기업이라도 일반기업에서 볼 수 있는 조직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다만, 부장이 김아무개나 상무가 이아무개가 아니라 성이 똑같은 한가족임이 다를 뿐이다.


할아버지는 포도밭 관리, 아버지는 양조, 어머니는 경리나 일반 업무를 맡고 있고 자녀나 손주는 대학교에서 양조학이나 와인마케팅을 전공하면서 와인 시음행사나 박람회를 거들면서 감각을 익히고 가업에 일조를 한다. 이렇게 삼 세대가 이끌어 가는 견고한 트로이카 구조는 그들이 생산하는 와인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원천이며 미래에 있을 새로운 와인 취향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혈연적인 유대감이 강한 이탈리아 와이너리 생태계에서 다닐로 트라부꼬(Danilo Trabucco)는 어찌 보면 낙동강 오리알 같은 존재다. 다닐로는 양조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7년 11월 부친상을 당한다.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와인을 배우면서 어려움을 헤쳐 나아가야 할 나이에 가족의 지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보통, 양조 고를 졸업하면 와인 생산자의 수습생으로 들어가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가업에 복귀하는 게 와이너리 가족에서 태어난 자녀의 후계자 코스다. 날벼락같던 부친상은 다닐로한테 슬퍼할 시간조차 허락지 않았으며 4헥타르 남짓한 포도밭과 생전에 아버지가 구매 협상 중이던 1헥타르의 포도밭의 운명이 다닐로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아버지를 저세상으로 보내는 날 다닐로가 페이스북에 올린 포스팅은 슬픔을 탄식하기보다는 가업 상속자로서의 각오가 내보인다. "아빠는 우리를 위해 너무 많은 일을 했어요. 오직 아빠만이 할 수 있는 멋진 포도나무를 심을 사람이 필요해서 하늘이 아빠를 데려갔나 봐요. 지금부터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나의 인생이여, 이제는 안심하고 여행을 즐기세요." 


다닐로의 부친인 니콜라(Nicola)는 생전에 양조 및 포도재배 컨설턴트로서 동료들이 생산하는 와인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기 일처럼 나섰다. 마씨코 산(Monte del Massico) 남쪽에 포도밭을 소유한 생산자들치고 니콜라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니콜라의 도움으로 이 지역의 와인 품질 수준은 향상되어 1989년 마씨코산 일대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Falerno del Massico 란 원산지 명칭명으로 DOC 와인 등급에 오르게 된다. 그간, 자신의 꿈을 접고 남의 일만 돌보던 니콜라는 드디어 2003년 첫 빈티지를 시장에 출시하면서 이탈리아 와인계에 데뷔한다.



<트라부꼬 와이너리의 스물한 살 다닐로 사장의 현재 포부는 세 가지다>

1, 이탈리아 와인 평가지 감베로 로쏘에서 그가 생산하는 7종 와인 중 최소 한 종류가 트레비끼에리(tre bicchieri)상을 받는 것.

2, 현재 3만 병의 연 생산량을 3년 이내에 5만 병으로 늘리는 것.

3, 아버지가 발견한 "프리미티보 델 마씨코(primitivo del massico)"품종의 대중화.


트라부꼬 와이너리는 캄파니아(Campania)주 최북서쪽 마씨코 산이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고만고만한 크기의 팔레르노(Falerno) 마을에 소재하고 있다. 이 산 반대편에는 라찌오(Lazio, 로마가 속한 주state)주 남부가 시작된다. 마씨코 산은 반도처럼 육지 끝에서 불거져 나와 티레노해와 맞닿아 있다.


마씨꼬 산은 몇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으며 그중 록까몬피나(Roccamonfina)란 휴화산 등성이에 트라부꼬를 비롯한 여러 생산자들 소유의 포도밭이 몰려있다. 석회석이 두껍게 쌓인 층 위를 화산재가 덮은 후 굳어진 토양표면을 짠 습기가 배인 바닷바람이 불어와 쓰다듬어 준다. 2017년 이탈리아 대부분 와인 산지에 턱없이 비가 적게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씨코산 등성이에 조성된 포도밭은 건강하고 잘 익은 포도를 낳은 이유다.


마씨코 산에서 재배되는 품종은 팔랑기나, 알리아니코, 피에디로쏘, 프리미티보 이며, 맨 앞의 팔랑기나 품종으로는 팔레르노델 마씨코 비앙코(화이트 와인) 와인을, 나머지 세 종류의 레드 품종은 혼합하거나 단일 품종만으로 팔레르노 델 마씨코 로쏘가 만들어진다. 이 와인들은 Vinum Falernum 이란 이름으로 2천 년 전에도 인기를 누렸는데, 물론 양조방식이 다르고 맛이 현재와는 하늘과 땅 차이겠지만 그 당시에 이 와인의 명성은 로마제국 황실에 까지 닿았다.


로마시대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Marcus Valerius Martialis, 40~102년)는 팔레르노 와인의 인기를 다음처럼 기록했다. "맛있는 와인은 2 sesterzio만 주면 사는데 팔레르노 와인은 3배인  6 sesterzio를 줘야만 살 수 있다". 로마시대 학자인 플리니우스는 "로마 황제가 사랑한 와인은 높이가 차이나는 포도밭(높은 순에서 낮은 순으로 Concino, Faustiano, Falerno)에서 오며  Austerum(강한 맛), Dulce(단 맛), Tenue(부드러운 맛)으로 구분된다"라고 했다.


트라부꼬 와이너리는 7종의 와인을 생산하는데 그중 마씨코 산의 자연환경과 개성을 제대로 담은 와인은 네 종류다.


<16 Marzo> 2017년 산, 팔랑기나 100%


와인이름은 1997년 3월 16일을 뜻하며 다닐로가 태어난 날이다. 다닐로 아버지가 득남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심은 포도로 만든 와인이며 마시코 산 260미터에 있는 "Vigna Alessandro"포도밭에 심어졌다.


한 여름에 포도 완숙이 되기 때문에 선선한 바람이 부는 새벽 1시에 손 수확한 후 양조장에 보내진다. 스테인레스 스틸 용기안에 발효가 끝난 와인과 효모가 섞인 상태로  5개월간 놔두어 숙성시키는데 가끔씩 스틱으로 휘저어주면서 복합적인 향과 맛이 우러나오는 걸 촉진한다.


건강한 포도만으로 만든 와인이 갖는 탱글탱글한 감귤, 복숭아, 흰 꽃 향기와 구운 빵 향기가 구수하다. 중간 보디감에 타닌 감도 살짝 느껴지며 쌉싸름한 아몬드 맛의 여운이 매력적이다.



▲ RAPICANO 2014년 산, 알리아니코(80%)와 피에디로쏘(20%) ,

라피카노는 트라부코의 품질의 자존심이며 가장 인기 있는 와인이다. 복잡한 과정으로 양조를 거친 후 장기 숙성에 적합하다고 판단된 와인만이 지하 8m 밑 셀러에서 3년 숙성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와인 이름인 라피카노는 팔레르노의 방언이며 조금도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일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와인에서 느껴지는 힘, 튼튼한 구조, 숙성 능력이 단어 뜻에 적당하기 때문에 와인명으로 선택되었다.


연 1200병 생산되며 36개월의 숙성기간 중  바리크에서 12개월, 나머지 기간은 병 숙성과 안정을 거쳤다. 질감이 부드러운 타닌과 각종 스파이시, 가죽, 초콜릿, 진한 자두, 블루베리, 체리향이 화사하다. 산미는 알코올에서 오는 뜨거운 느낌을 감소시킨다.



▲ ERRE,알리아니코 100%, 2015년 산,

두,세 번 사용한 바리크에서 12개월 숙성 후, 병 숙성을 12개월 했다. 향기가 또렷하고 금방 구분해 낼 수 있기 때문에 편안히 마실 수 있는 대중적 와인이다. 와인 이름은 먹잇감 찾으러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붉은 개미를 뜻하며 장난기와 생기 넘치는 젊은이를 빗대는 속어이기도 하다. 산미와 타닌이 적당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어 병 바닥이 순식간에 드러나다.



▲ PRIMO ANTICO, 2015년 산, 프리미티보 델 마씨코 100%,


이 품종은 풀리아주의 프리미티보 와인의 원재료인 '프리미티보 디 만두리아(Primitivo di Manduria)' 와 다르다. 다닐로의 부친이 우연히 발견한 포도나무를 포도 품종 연구소에 보내 유전자 검사 후에 프리미티보 품종의 클론임이 판명되었고 풀리아주의 프리미티보와 구분하기 위해 '프리미티보 델 마시코'라 불렀다.


다닐로 부친이 아직 살아있을 때 새 클론임이 밝혀진 직후 양조한 와인이라 실험적인 면이 있다. 말고삐가 풀린 말처럼 폭발적인 향기를 발산하는데 좀 더 차분했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들었다.


산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위치하는 팔레르노는 육지와 바다의 산해진미가 풍성하다.그래서 로칼 맛 집에 가면 메뉴는 바다요리와 육지요리로 구분되있다. 갓 잡은 문어를 데쳐 만든 샐러드, 연어회, 스파다 마리네이드(황새치 회를 올리브 오일과 레몬즙에 잰 것)등 바다의 신선함과  돼지고기 각종 부위로 만든 햄과 살라메 소시지, 특히, 고춧가루가 박혀있는 매콤한 소시지는 육지의 풍만함이 전해진다.


바다 요리

육지 요리 



이곳의 무공해 자연에서 자란 부팔라 물 소 젖으로 만든 모짜렐라 치즈는 짙은 크림색이 도는 매끈한 막이 둘러싸고 있으며 깨물 때 흘러나오는 신선한 우유의 맛은 고소하기가 이를 때 없다. 부팔라 치즈와 브로콜리, 라자냐 면을 겹겹이 쌓아 오븐에서 구운 라자냐는 팔레르노에서 놓칠 수 없는 맛이다.





스크리펠라는 계피맛이 진한 롤 빵으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에 먹는 귀한 음식이다. 결혼식 날 새벽에 신부와 신부 가족이 준비해서 결혼식 피로연 때 대접하던 음식으로 요즘은 디저트로 일반화 됐다. 식은 스크리펠라도 맛있지만 따끈할 때 먹으면 진한 아메리카노 커피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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