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들이 포도나무와 와인의 수송수단인 암포라를
피에몬테 지역으로 전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로마시대의 유명한 학자 플리니우스가 쓴 “박물지”에는
지금의 피에몬테지역의 와인산지와 일치하는 곳에서 와인생산용 포도밭이 융성했었고
양조한 와인은 큰 나무 통에 보관했다는 기록도 있다.
1559년 철의 두상(Testa di Ferro)으로 알려진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사보이공작 궁전에는
소믈리에라는 직책이 있었고 그는 시장에 가서 좋은품질의 와인을 사들이는 일을 맡아했으며
수고 댓가로 10~100 피오리니의 보수를 받았다고 한다.
1600-1700년도에는 왕족이나 귀족들 사이에서는 전원생활을 누리는게 유행이었는데
토리노 근교나 언덕에 전원 저택을 지었고,이것을 저택이라는 이탈리아어 “빌라(villa)”대신
포도밭을 뜻 하는 “비냐(vigna)”로 불렀다고 한다. 이는 저택주변에 큰 정원과 과수원을 조성했으며
거기에는 주로 포도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와인을 자급자족하기도 했지만 과잉량은
시장에 팔기도 했다고 한다.
1786년 카르파노(Antonio Benedetto Carpano)가 토리노 중심가
피아짜 카스텔로(Piazza Castello)근처의 한 건물에서 세계최초의 가향와인 '버무스(vermouth)'를 제조했고
몇 년 후에 친쟈노(Cinzano)가 모스카또 비앙꼬품종으로 동일한 주를 양조해 가향와인의 시대를 열었다
1797년 나폴레옹군대가 이탈리아를 무력점령 했고 강제로 문물을 개방하도록 해
피에몬테와인이 역사상 처음으로 알프스 넘어 프랑스에 알려지게 되었다.
피에몬테의 대표적 와인인 바롤로가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게되는 시기는
1831년 사보이왕국의 왕이였던 까를로 알베르또 왕 때부터인데, 왕의 측근인
벤소 카브루(Benso Cavour)에게 바롤로와인을 현대화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카브루는 그린자네(Grinzane)마을에 있는 그의 가문 포도밭을 실험실로 삼아
프랑스의 유명한 양조자인 루이 오다(Louis Oudart)를 불러 그 당시 첨단 와인의 대명사였던
부르고뉴식으로 바롤로와인을 개선했다.
벤소 카부르(Benso Cavour)
그 당시 바롤로는 발포성 스위트와인이였는데
이것을 스틸 드라이와인 양조법을 적용시켰고 따라내기(racking)와 병입도 도입했다.
1880년도 유럽에 불어닥친 필록세라의 횡포를 피에몬테주도 피해갈 수 없었는데
대부분의 포도재배농가가 농지를 버리고 대도시나 해외로 이민을 가 포도밭의 황폐화는 가속되었다.
그러나, 필록세라에 강한 미국 뿌리에 프랑스 가지를 이식시킨 대목개발로 아사직전의 유럽포도재배는
구사일생으로 다시 살아나게된다.
1966년에 이탈리아 최초의 와인등급인 DOC가 공표되었고
이후 1980년에는 DOCG가 추가되면서 이탈리아 와인규정이 체계화되어
이탈리아 와인의 전체적인 수준과 품질이 놀랍도록 개선,향상 되었다.
특히, 피에몬테주는 2012년 현재 16종류의 DOCG와 42종류의 DOC를 쟁취했고,
DOCG급 와인을 꾸준히 탄생시키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음은 물론
DOC이하 등급( IGT)을 허용 않 해 소량의 고품질 와인만을 고집하고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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