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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살라 주정강화 와인(1)

시칠리아 와인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13. 11. 2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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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살라 성당


                                                                1773년 영국 리버풀 출신 상인 '존 우드하우스'와 그의 승무원들을 태운 엘리자베스호는

시칠리아 서해안을 항해하는 중 폭풍우를 만난다. 마침 배는 마르살라(Marsala)해안

 근처를 항해중이라 그곳으로 피신한다.


일단 우드하우스와 그의 승무원들은 이곳에서 폭풍이 멎기를 기다리기로 하고 시장기를

달래려고 주점에 간다. 그곳에서 일행은 이곳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와인을 맛보게 된다.


                                                                                                       존 우드하우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가 마셨던 와인은 '페르페투움(Perpetuum)'이라 불리는 마르살라의  전통와인이였고

맛과 향이 강하며 복합적이고 남부지중해의  뜨거운 햇빛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우드하우스는 와인을 마시면서 그 맛과 향이 예전에 많이 마셔보던 와인과 매우 비슷함을 알아차린다. 바로 영국인이

매우 좋아하는 쉐리와 포트와인의 그것이였다.


마르살라 주민들은 이 페르페투움 와인을 커다란 밤나무통에서 덜어내 마신 다음 새 와인으로

덜어낸 양 만큼 보충했다. 그렇게 하면 먼저 보관되던 와인과 새 와인이 섞이게 된다. 이 밤나무통은

이런 반복적인 행동에 따라 계속 채워지게 되므로 

이곳 방언으로 '반복'을  뜻하는

 "in perpetuo"가  "perpetuum"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우드하우스는 상술이 뛰어난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 와인을 영국에 가져가서 팔면 대단한 성공을 거두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는데, 우선 고향사람들의 반향을 알아보기 위해 50 pipes(1 pipe=412리터)를 구입해

영국에 보낸다. 마르살라에서 영국까지는 매우 멀기때문에 와인맛이 변하지 않도록 증류주를 넣어 알콜도수를

높이는 것도 우드하우스는 잊지않았다.


영국에 도착한 페르페투움와인은 "sun belt"에서 온 와인이라고 소개되었고 우드하우스의 직감대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선 벨트'는 일 년 내내 햇빛이 내리쬐고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작열하는

대지를 식혀주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특정한 나라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일년에 맑은 하늘을 보기 어려운 영국인의 이국적 취향을 자극하는 곳이다.


서쪽으로는 포루투갈 '두에로 계곡'부터 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를 지나 동쪽에 있는 터키해까지 이르는 지역으로 옛날부터

스위트와인과 주정강화와인이 많이 나는 곳이다. 


첫 물량이 성공을 거둔 우드하우스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마르살라에서 살기로 결정하고 포도밭도 구입하고 생산시설도 확충한다.

 조그만 해변도시에서만 마시던 와인은 우드하우스의 상술을 만나 '마르살라 와인'으로 변신해

그의 상선과 함께 전세계로 팔려나갔다.


그가 파는 마르살라의 인기는 대단해서

1800년 3월19일  트라팔가 해전의 영웅 "넬슨"제독과  "마르살라 판매 계약"을 맺게된다.

아마도 마르살라와인을 마신 영국 해군들이 용기를 가다듬어 프랑스 해군과 벌인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을지도 모른다.


존 우드하우스의 성공스토리는 그동안 스페인(쉐리), 포루투갈(포트,마데라) 주정강화와인만 취급하던  동향인들의 야심을 자극해

시칠리아 섬으로 몰려들게 했다. Benjamin Ingham, Joseph Whitaker은 마르살라 와인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marsala factory를 

지어 마르살라와인의 상업화을 이루었다.


  자기네 앞마당에 와서  타국인이 거두는 성공을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하던  시칠리아 사람들도 뒤 늦게나마 마르살라 열풍에 동참하게

되는데 선구자는 '빈첸조 플로리오(Vincenzo Florio)'란 시칠리아 와인대부다. 마르살라에서 멀지않은 Bagnara Calabra 출신인 플로리오는 1832년에

마르살라 전통방식에 따른 마르살라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또한, 그도 성공을 거둔다.

영국상인들이 하던것처럼 플로리오도  마르살라를  99척의 배에 실어 전세계를 누비게 했다.


                                                                              플로리오 와이너리의 '플로리오 마르살라'



마르살라 와인이 인기를 얻자  영어식 이름으로 불리는 마르살라가 등장했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S.O.M.(Superior Old Marsala),"G.D (Garibaldi Dolce ), "L.P."(London Particular), "I.P(Italian Particular)
  "O.P." (Old Particular), C.O.M. (Choice Old Marsala), P.G. (Particular Genuin), P.D. (Pale Dry), I.M.(Italian Marsala).

이중 몇 개의 표현은 마르살라 와인규정 (예:G.D=Garibaldi Dolce)에서도 허용해  아직도 간간히 와인 라벨에 등장한다.










여담으로 20 세기초 미국에서 금주령이 내려졌을때 마르살라와인은 'Hospital Size'란  특별 문구가 추가되어

미국시장에 수출되는데 "하루에 작은 컵 1잔"을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광고 덕을 보았기 때문이다.







1931년 이탈리아 공화국 정부는 마르살라 와인을 보호하기 위해

"마르살라와인 생산가능 지역 경계선표시(Delimitazione del Territorio di Produzione del Vino Tipico di Marsala)" 규정을

공표한다. 이로서 마르살라 와인은 이탈리아 와인으로는 처음으로 생산지역의 범위를 법테두리에서 지정받게  된다.

이법은 후에 '원산지 명칭 규정(DOC)'을 낳는  모태가 된다.


이렇듯 마르살라의 짧지않았던 170여년간의 승승장구 역사도

마르살라 보호규정이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2번의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해당기관의 부족한

법집행능력과 우유부단함 때문에 마르살라 와인의 명성은  오리무중에 빠진다.

 쉐리나 포트와인에 필적하는 인기를 누리던 마르살라는 이제는 이탈리아 주부들이 요리할 때 사용하는 요리용 술로

주방애용품이 되었고 빵집에서는 디저트용  재료로 변용되었다.


1969년은 마르살라 와인이 재기하는 중요한 해로

  '이탈리아 관보(Gazzetta Ufficiale)'에 마르살라와인이 DOC 등급에 올랐다는 낭보가 발표된다.

한 동안 요리용 와인으로  주방을 전전하던  마르살라 와인은 1773년 우연히 마르살라에 도착한 

존 우드하우스 를 매혹시켰던 그 시절의 페르페투움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마르살라 주정강화 와인(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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