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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베마을에 대하여

베네토와인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13. 7. 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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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아베와인 조합 상징마크



소아베와인 생산자들의 모임인 "소아베와인 조합 "Consorzio Tutela dei vini Soave"의 상징마크는

'제노(San Zeno)성인' 이다.마크안에 성인은 빨간 제의를 걸치고 머리에는 높은 주교관(미트라)을

쓰고 왼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다. 그는 특이하게도 라틴계가 아닌 무어인(이슬람계,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혼열인종)으로서 기원후 360년에서 380년 까지 베로나 주교를 맡았었다.



주교가 살았을 때 이탈리아는 로마제국의 내부분열로 혼란에 빠져 있었고 북쪽에서는 훈족이나 게르만족이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시기였다.그 당시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은  다신교를 믿고 있었고 그가 책임을 맡았던 교구의 베로나 시민들도 다를 바 없었는데 주교는 이들을 잘 이끌어 기독교도로  개종시키는데 성공했다. 제노 성인은 포도재배와 와인에 상당한 관심을 가져 이에 대한 저서도 쓴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당시의 내,외 혼란으로 인해 와인용 포도재배와 와인소비가 많이 줄어들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교가  예전의 수준으로 돌리기위해 신자들에게 와인을 많이 마시도록 권장했다. 이런 이유로 제노성인은 소아베 와인 조합을 대표하는 상징인물이 되었고 동시에소아베와인 생산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택되었다.

  

                                                      

성인 사후1700년이 지난 지금도 베로나시민들의 그를 흠모하는 마음은 여전해 성인이 베로나의 수호성인으로 채택되었다.

특히, 성인 살아생전에 있었던 몇 가지 이야기는 제노 성인의 기적이라는 전설이되었다. 그 기적중의 하나는 성인과 악마와

내기 축구시합을 벌이는데 패자는 화산암으로 된 세례반을  승자에게  주기로 한다.

산 정상에서 갖은 축구시합에서 성인은 이겼고 약속대로 악마는 세례반을 구해야했는데 찾기가 쉽지않아 로마까지 가야했다.

간신이 세례반을 구했지만 무거워서 어깨에 짊어지고 베로나까지 운반해야 했다고 한다.


                                                            소아베 마을의 중심가(Palazzo di Giustizia)


다른 기적은 베로나 중심가를 흐르는 아디제강이 홍수로 범람했고  범람한 물은 시가지를 삽시간에 침수시키는 바람에 주민들은

모두 마을의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교회로 피신해야 했다. 마침 이 성당에서는 롬바르드족 왕의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결혼식장이 졸지에 수재민들의 피신처가 되었고 교회내부에 있던 축하객과 수재민들은 점점 불어나는 물을 보면서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때 성인이 나타나 기도를 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물은 더 이상 불어나지 않아 모두의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소아베 와인의 이름은 이 와인이 처음으로 생산된 장소이름을 빌린것이다. 독일 출신이며 이탈리아로 남하한 게르만족 중

수에비부족이 있었는데 수에비가 변해서 소아베가 되었다고 한다. 대문자로 쓰면 마을 이름이지만 소문자로 쓰면

우아한, 부드러운을 뜻하는 형용사인데 마을이름의 원인이 되었던 게르만족의 거칠고 울퉁불퉁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소아베 마을의 남문(베로나)


소아베는 면적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나는 와인덕분에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정상에 세워진 고성과 그 아래에 형성된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으로 유명하다. 베로나 외곽도로를 막 빠져나와 베네치아로 이끄는 파다나(Padana) 평원을 달리다보면

자연스럽게 이 성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 그 자태의 아름다움뿐만이 아니라 병참학에 대해 문외한 사람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성의 위치때문이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때문에 일찌감치 로마인들이 보루를 세웠고 10세기 초에는 방어목적의 요새로 바뀌었다.



델라 스칼라 가문의 군주 "칸그란데"


이 요새의 주인은 주변지역의  패권을 가진 세력에 따라 달라졌는데 수 십 번도 더 바뀐 성소유주 중 가장 이곳에 오래 머물렀던

인물은 델라 스칼라(Della Scala)가문이다. ‘델라 스칼라가문은 베로나 출신가문으로 1271년 부터 1397년 밀라노 공국의

 잔 갈레아쵸 비스콘티공작에 패배될때 까지 베로나와 그 주변도시를 다스렸다. 셰익스피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은

델라 스칼라 가문이 베로나를 다스릴때  있었던 두 연인의 비극적 사랑이야기를  재구성해서 만든 희곡이다.




                                                                                             

 

델라 스칼라 가문 군주들은 소아베 요새의 중요성을 알아차려 방어력을 강화시켜 현재의 성모습으로 개조했는데  성 아래에 있는 마을을 보호할 목적으로 성벽도 건설했다. 후에는 각각 비스콘티 가문 - 베네치아 공화국 소유였다가 1556년에는

 그리티(Gritti)가문이 구입했는데 이로서 성은 더 이상 정치적 강자의 소유물이 아닌 개인재산으로 되었다.

1889년에는 베로나 시장을 역임했던 줄리오 카무쪼니상원의원이 이 곳을 구입했고 현재까지도 카무쪼니 가문 소유로

되있다.


'소아베 와인'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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