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 오후 - 뜨거운 열풍이 한풀꺾여 서늘해진 정원 중앙에 놓여진 테이블 위에는
반쯤 비어진 프로세코병이 담겨진 투명한 아이스버켓이 놓여있다.
아이스 버켓 주위의 핑거푸드 접시는 비워지기가 무섭게 곧 채워진다.
실루엣이 들어날 정도로 꽉끼는 청바지 허리춤을 달듯말듯한 짧은 셔츠를 입은
청춘남녀들이 프로세코가 담긴 플릇(flute)잔을 들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레몬을 상상하면 입에 침이 고이는 것처럼 프로세코 단어를 들으면 뇌리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청량음료같은 시원한 이미지다.프로세코는 장소,시간에 상관없이 어떠한 음식과 같이 마셔도
멋드러지게 어울려 세계적인 붐이 일고 있다.
만일 이 플룻잔이 식혜 정도의 탁한 색깔이 나는 프로세코로 채워져 있다 상상해보자.
빛을 쫓아 잔을 이리저리 돌리면 유별나게 점도가 높은 곳에 눈이 멈추고 이곳에 손가락 끝을 넣어
비벼본다면 미끌거림이 손 끝으로 전달될것 같다. 점도를 뚫고 올라오는 버블이 희미하게 보인다.
여름의 시원한 정원은 페치카의 장작이 타고 있는 한 농가의 따뜻한 실내로 무대가
바뀐다. 오븐에서 막 꺼낸 키슈(여러 재료를 넣어 익힌 짭짤한 맛이 나는 케잌)에서 올라오는 김,
얇게 썬 프로슈토,살라메,숙성된 치즈 몇 조각이 놓인 나무접시를 보는것만으로도 언 몸이 녹는다.
밥알만 떠다니면 동동주라고 대뜸 대답할 만큼 탁한 빛깔을 가진 프로세코는 일명 "꼴 폰도col fondo" 라 불린다.
'꼴 폰도'는 이것을 마셔온 베네토 주민들이 부르는 말이고 베네토 국경을 넘으면
"rifermentazione in bottiglia"나 "쉬르 리 sur lie"로 바뀌어 불린다.
"rifermentazione in bottiglia"는 병 속에서 재발효했다는 뜻이며
"쉬르 리(sur lie)"는 발효후에 효모찌꺼기를 제거하지 않고 와인에 남겨두었다는 의미다.
프로세코의 탄산가스, 과실, 꽃 향기외에 뭔가가 더 있다는 암시를 남긴다.
효모찌꺼기와 프로세코 원액이 병안에 함께 존재한다는 말만 듣고
"그럼 샹파뉴 방식으로 만든 프로세코 군!!"라고 생각했으면 미리 앞서간 거다.
병안에 프로세코 원액이 효모와 접촉했을때 얻는것은 탄산가스뿐이지
샹파뉴 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에서 기대할 수 있는 복잡한 향기나 맛을 얻기 위한것은 아니다.
게다가 효모찌꺼기를 제거해 영롱한 황금색을 되찾으려는 데고르주망(degorgement,숙성후 병목에 가라앉은 효모찌꺼기 제거 과정)도
생략한다. 그냥 처음 병에 담았던 원료를 버리지 않고 그대로 마시기 때문이다.
꼴 폰도 프로세코는 두가지 방법으로 마신다. 마시기 이틀전에 와인병을 세워놓아 침전물을 가라 앉힌후 그 위에
뜨는 덜 탁한 프로세코를 마시는게 첫번째 방법이다. 마치, 발효가 끝나고 그위에 떠오른 발효주를
밑밥과 섞이지 않게 조심스럽게 떠낸 맑은 청주를 마시는것과 같은 이치다.
다른 하나는 꼴 폰도를 흔들어서 아예 같이 마시는 거다. 이쯤되면 프로세코는 거의 막걸리 정도의 색깔이다.
위↑: 꼴 폰도 프로세코의 색깔
어떤 방법으로 마셨을때 맛이 더 낳은가를 묻는건 적절하지 않은 질문이다. 두 방법다 맛과 향기가 다르고
함께 할 음식 맛의 강약이 다르기 때문이다. 첫번째 방법으로 마실때는 프로세코의 특징인 싱그런 과일향이
구운빵, 견과류 향과 같이 나기 때문에 야채요리, 숙성기간이 짧은 치즈, 프로슈토 햄으로 만든 전채요리와 잘 어울린다.
침전물이 떠다니는 탁한 프로세코는 버터에 구운 빵, 잘 구운 토스트, 호두, 땅콩의 향기와
산미가 부드럽기 때문에 강한 소스를 곁들인 파스타나 고기, 생선 요리와도 어울린다.
프로세코 꼴폰도를 제대로 맛보려면 트레비소 언덕(Treviso,베네토주 북동쪽)으로 가면된다.
doc, docg 병목띠를 두른 프로세코를 생산하는 번듯한 규모의 와이너리는 잊어버리자.
기껏해야 포도나무가 열 그루 안팎인 텃밭에서 야채도 함께 재배하는 농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맛이다.
농부는 자기 텃밭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희뿌연 프로세코를 카라프 유리병에
넘칠 정도로 담아서 내올것이다.
촌부가 건내는 막걸리에는 김치조각이 간절하듯
트레비소 촌부의 프로세코를 두 세잔 걸칠때는 손가락으로 집어먹는 살라메 조각이 제격이다.
얼큰하게 취한 촌부는 방문객이 마시고 있는 와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술술 풀어낼 것이다.
" 잘익은 글레라 포도주스를 압착해서 발효를 해야 하는데 추운 겨울이라 이녀석이 갑자기 발효를 멈추게 되지.
그러다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면 동면하고 있던 와인이 갑자기 깨어나 발효를 다시 시작하게 된단 말이야.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부활절 몇 주전에 발효를 멈춘 와인에 효모를 넣은 다음 병입구를
단단히 막아두지. 그리고 기다리기만 하면 발효를 끝낸 와인은 우유빛깔의 거품이 살살올라오는 와인으로 변하지"
촌부의 할아버지가 마셨고 지금은 촌부가 마시고 있는 프로세코 꼴폰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프로세코의
조상인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꼴 폰도는 촌부 집에 가야만 맛 볼 수 있는 희귀 프로세코가 되었을까?
바로 프로세코 와인을 대중화 시킨 마르티노티(샤마방식,탄산가스를 큰 압력용기에서 발생시킴,
이방법으로 시간과 노동력을 줄일수 있었음)방식의 발명과 이것이 예전에 프로세코 마시던
방식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병안에서 일으키던 탄산가스는 대형 압력용기에서 일으키는것으로 대체되었고
가스 발생한 후 소용없게된 효모찌꺼기는 필터링으로 제거한 후 병에 담았다.
물론, 커다란 압력용기에서 만드니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효모를 제거하니 색상도 훨씬 투명해졌지만
마시려고 일부러 뚜껑을 열지않는한 간직하고 있던 프로세코 본연의 맛은 잃게 되었다.
<꼴 폰도 프로세코의 종류>
"아소로 프로세코 (Asolo Prosecco DOCG)" 이름으로 생산되는 세가지 타입의 프로세코
중 하나이며 종류는 다음과 같다.
①드라이 프로세코(Asolo Prosecco)
②프리짠테 프로세코 (Asolo Prosecco Frizzante) > Rifermentazione in Bottiglia
③스푸만테 프로세코 (Asolo Prosecco "Spumante Superiore).
②번 프리짠테 프로세코는 최고 기압이 2.5인 약발포성으로 병에 효모를 넣은 상태로
재발효(rifermentazione in bottiglia)시킨것은 따로 구분해 Asolo Prosecco Frizzante- Rifermentazione in Bottiglia 란
와인이름으로 불린다(꼴 폰도는 베네토지방에서 불리는 약발포성 프로세코의 별명이며
일반적으로는 Rifermentazione in Bottiglia로 더 알려져 있음).
아래↓: 자세한 프로세코 와인 지도(빨간색 부분이 꼴폰도가 생산되는 지역)
프로세코는 단일 와인으로는 생산량에서 이탈리아 최고를 자랑한다. 베네토주와 후리울리 베네치아-줄리아주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Prosecco DOC, Conegliano Valdobbiadene DOCG, Asolo DOCG 세 종류의 프로세코가 생산된다.
Prosecco DOC는 대중형이며 매년 3억병(2014년 기준)이 생산된다.
반면, 소규모의 언덕지형에서만 생산되는 고품질의 프로세코는 Conegliano Valdobbiadene DOCG와 Asolo DOCG이며
Conegliano Valdobbiadene 프로세코는 총 6천 헥타르의 포도밭에서 매년 약 8천만병, Asolo 프로세코는
약 520 헥타르에서 1백 50만병이 생산된다. 경쟁자인 Conegliano Valdobbiadene 프로세코가 Asolo 프로세코에 비해
53배 더 생산되는 셈이다.
Asolo 프로세코의 원료인 글레라(glera) 포도가 자라는 포도밭은 모두 남향이며 뒤쪽에는
그라빠 산(Monte Grappa)이 버티고 있다. 피아베 계곡(Valle Grappa)을 따라 내리꽂는 찬바람의 위세는
한 여름에도 포도를 얼게할 정도지만 그라빠 산에 부딪쳐 한풀 꺾인다.
이회토에 점토, 모래가 이상적인 비율로 혼합되었고
자연현상에 의해 부서지기 쉽지만 글레라 포도 성장에는 최적이다. 토양은 붉은색을 띄는데
이는 땅이 수천만년전에 형성되었음을 말하며 산도 함유가 높아 스파클링와인의 생명인 산도를 높인다.
<꼴폰도 프로세코의 미각후각 특징>
많은 애호가를 매혹시키는 프로세코 특유의 배, 사과, 하얀 꽃, 자몽같은 향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꼴 폰도는 잔에 따를때까지 효모와 접촉했었기 때문에 호두,땅콩과 같은 견과류, 효모, 버터에 구운빵,
약간의 바닐라 향기가 난다. 생산자에 따라 약간의 페인트 냄새도 올라온다.
탄산가스가 혀에 닿아 부스러질때 느껴지던 간지러움과 날카로운 산미는
꼴폰도 프로세코에서는 우유 식감 정도의 부드러움으로 바뀐다.
산미가 부드러워 혀와 위장에 자극을 주지않아 소화가 쉽게된다.
위↑: 글레라 포도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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