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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피에몬테의 화이트 여왕, 에르바루체 와인을 아시나요?

피에몬테와인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22. 2. 2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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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로 냐비 와이너리 입구

까를로 냐비(Carlo Gnavi)는 내가 가 본 와이너리 중 밭 면적으로는 가장 작았던 곳이다. 3.5헥타르(1만 587평) 정도인데, 상당수의 이탈리아 와이너리가 패밀리 규모임을 가만한다 해도 이 정도면 개장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생 와이너리 일 거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냐비 와이너리는 120년 넘는 와인 양조 경력을 갖고 있다.

 

까를로 냐비는 현 와이너리의 소유자이며 최근에는 일선에서 물러나 포도밭 경작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의 친조카인 조르조 냐비가 영업, 사무, 홍보를 맡아하고 있다. 냐비 가족이 생산하는 와인은 에르바루체 디 카루소 Erbaluce di Caluso란 화이트 와인이다. 에르바루체는 품종명이고 카루소는 지명으로 '카루소 마을의 에르바루체'란 뜻이다. 이탈리아 대부분의 등급 와인이 원산지와 품종명을 나란히 세우는 관행에 따라지은 거다.

에르바루체 와인 독점 생산지역인 카루소와 인근 37개 마을(보라색 타원)

 

카루소는 피에몬테주(북이탈리아) 북동쪽에 위치한 카나베제(Canavese) 지역에 속하는 작은 도시다. 주도인 토리노에서 북동쪽으로 35km 떨어진 곳에 있다. 에르바루체는 라틴어 '알바 룩스 Alba Lux'에서 유래했는데 새벽의 찬란한 햇빛을 뜻한다.

페르고라에서 자라는 에르바루체 포도

에루바루체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카나베제 지역에서만 자라는 희귀품종이다. 품종의 조상이나 본산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사실은 없다. 다만, 어원인 Alba Lux가 라틴어임에 비춰 볼 때 적어도 2천 년 전부터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확실한 기록은 1606년 조반니 바티스타 크로체가 쓴 '토리노 인근 산에서 나오는 와인의 우수함과 다양성(Della Eccellenza e Diversita' dei vini che nella montagna di Torino Si fanno)'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책에서 저자는 에르바루체를 피에몬테의 토착품종 중 가장 귀중한 품종의 하나로 꼽았다.

 

에르바루체가 이곳에서만 재배되는 이유는 카루소를 포함한 카나베제 지역의 독특한 토양에 근거를 둔다. 일명, 콜리네 모레니케(Colline Moreniche)라 불리는 모레인 언덕인데 주변의 지리와 연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카루소에서 북동쪽으로 직진하면 발레다오스타 주를 거쳐 알프스 연봉에 이른다. 몬테비앙코(몽블랑), 몬비소, 몬테로사 등 험난한 알프스 산들이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있다.

 

4만 년 전부터 빙하기 때 알프스를 덮고 있던 빙하가 발레다오스타 계곡을 따라 하강을 반복했는데 이때 얼음덩어리가 떠내려 가면서 양쪽 기슭의 자갈과 모래를 낮은 곳으로 운반했다. 이렇게 퇴적된 물질은 모레인 언덕을 형성했으며 토양 주성분이 규소, 칼륨, 마그네슘인 화강암 기반을 이루게 된다.

 

모레인 언덕은 알프스의 혹한 바람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과 여름과 가을철에 일교차를 크게 벌여 놓아 포도의 완숙을 촉진한다. 에르바루체의 또 다른 특징은 페르고라(pergola) 구조에 유인해서 키운다는 것이다. 보통, 포도 가지는 인위적으로 유인해서 자라는 형태를 조절한다. 

페르고라(이미지 제공 https://www.enotecaregionaletorino.wine/canavese)

 

페르고라는 형태가 마치 그네를 달지 않은 그네 구조물과 비슷하며 소재는 나무다. 만드는 방법은 2~2.5미터 크기의 밤나무 말뚝 2개를 서로 마주 보게 땅에 단단히 꽂는다. 말뚝 간격은 최소 2미터를 떼어 놓는다. 그런 후 말뚝 꼭대기에  테또(tetto)라 불리는 막대기를 평행으로 얹은 다음 끈으로 단단히 고정한다. 말뚝을 타고 뻗어나가던 가지는 테또 아래에 열매를 맺는다.

 

페르고라의 등장 시기는 5~6백 년 전으로 추청 되는데 이때는 추위가 매우 혹독하고 우박의 피해가 잦았던 시기와 일치한다. 또한, 카나베제를 포함하는 북 피에몬테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땅이 항상 축축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땅에서 포도가 멀리 떨어져 있어야 습기를 피할 수 있고 통기성도 높아져 곰팡이나, 해충이 근접하기 어렵다. 또한 포도가 햇빛에 다량 노출되어 시트론, 허브, 살구 등 아로마 성분이 쌓이는 등 일석이조 효과를 얻는다.

<까를로 냐비의 와인>

에르바루체 디 카루소 와인은  1967년에 Doc등급에 지정되었고 2010년에는 Docg로 승급했다. 에르바루체를 재배, 양조, 숙성할 수 있는 지역은 와인 규정이 따로 정하고 있는데 카나베제 지역 즉, 이브레아와 카루소 시 사이에 있는 37군데 마을이다. Erbaluce di Caluso(드라이한 맛의 스틸 와인), Erbaluce di Caluso Spumante(샴페인 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 Erbaluce di Caluso Passito(아파시멘토 기법으로 만든 달콤한 와인), Erbaluce di Calsuso Passito Riserva(파시토 리제르바)등 네 타입이 나오고 있다.

 

냐비가족은 1950년대 초입에 까를로 냐비의 라벨을 부착한 와인을 출시했다. 이때 와인은 파시토 타입이었고, 이 와인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1970년대에 드라이 와인(달콤한 맛이 없는)에 뛰어들었고 최근에는 스푸만테를 도입했다. 현재 두 종류의 스푸만테를 라인업에 올려놨다. 조르조 냐비는 샴페인 방식의 스푸만테에 역량을 집중할 예정이며 병 발효기간을 점차로 늘릴 계획이다.

 

냐비는 와인 타입에 따라 수확 시점을 세 번 잡는다. 제일 먼저 수확한 포도는 파시토 양조에 보내진다. 페르고라에서 키운 포도는 완숙 시기의 차이가 많이 나는데 이를 이용한 지혜다. 두 번째 수확한 포도는 스푸만테를, 마지막 포도는 드라이 와인에 사용된다. 이렇게 타입별로 세 번 수확은 기본이고 해마다 횟수는 변동이 있다.

 

에루바루체는 유전적으로 리그닌 성분이 많다. 리그닌은 나무 피질 세포벽에 포함돼있으며 리그닌을 많이 타고난 에르바루체 품종은 수세가 좋아 가지가 단단하고 뻣뻣하여 일손이 많이 간다. 거기다 최소 세 번의 수확까지 가만한다면  3.5 헥타르의 면적이라도 농번기에는 얼마나 바쁠지 상상이 간다.

투르반테 에르바루체 디 카루소 DOCG 스푸만테 메토도 클라시코 브뤼 밀레시마토 

Turbante Erbaluce di Caluso DOCG Spumante Metodo Classico Brut Millesimato

2017 빈티지. 알코올 도수 12도.  병 안에서 2차 발효를 일으켰고 42개월 병 숙성했다. 진노랑색 와인을 가느다란 버블 줄기가  유영한다. 미세한 방울들이 연속적으로 피어오르며 줄기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버터, 구운 빵 같은 구수한 향기와 라임, 사과, 아카시아의 상쾌한 향이 조화를 이룬다. 페트롤 뉘앙스가 살짝 비치기도 한다. 산미의 신선도가 뛰어나며 짭짤한 맛과 밸런스를 이루어 탄탄한 구조감이 중심을 잡고 있다. 라임과 사과 맛이 상쾌한 여운을 준다.

페트로닐라 스푸만테 로사토 메토도 클라시코 브뤼 Petronilla Spumante Rosato Metodo Classico Brut

냐비 가족의 청일점 와인. 바르베라, 보나르다, 프레이사, 네렛토 디 산조르조를 블랜딩 한 로제 스푸만테다. 낭만적인 코랄색이 돌며 체리, 장미, 라즈베리, 산딸기 향이 잘 어우러져 있다. 알코올 도수 13%. 샴페인 방식으로 만들었으나 빵이나 이스트 향보다는 레드 품종의 꽃 향기가 두드러진다. 산미가 아삭 거리며, 감칠맛을 불러일으키는 짭짤함과 균형이 잘 잡혔다. 타임의 허브향이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에르바루체 디 카루소 DOCG 비냐 크라바 Erbaluce di Caluso Docg VIGNA CRAVA DOCG 2020

독일 리슬링처럼 목이 긴 알자스 병에 담았다. 알코올 농도 13%. 언덕 정상에서 자란 에르바 루체로 만든 냐비의 유일한 싱글 빈야드다. 에르바루체의 어원대로 짙은 황금색을 내며 아카시아, 카모밀라, 서양배, 자몽, 수풀, 민트향이 복합적이다. 개별 향기는 또렷하지만 겉돌지 않고 다른 향기와 조화를 이룬다. 산도는 높지만 원만함을 지녀 입안에 매끄러움을 남긴다. 오크 숙성은 피했으나 병 안에서 18개월을 보내면서 아로마가 섬세하고 구조도 잘 자리 잡은 덕에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뛰어나다.

레베이 에르바루체 디 카루소 DOC 파시토 리제르바 Revej Erbaluce di Caluso DOC Passito Riserva 2009

2010년 이전에 만들어진 거라 DOC 등급이다. 수확한 포도를  자연건조장에 널어 말리는데 해마다 건조시간은 빈티지에 따라 늘어났다 줄었다 한다. 기본 기간은 6개월이며 건조가 끝날 무렵 자루에서 송이가 저절로 떨어져 나온다. 송이에 난 구멍으로 귀부 균이 침투하는데 평균 감염률은 10~25% 정도라고 한다. 발효를 마치면 시멘트 탱크에서 8~10년 숙성한다. 알코올 농도는 14%, 숙성 능력은 최소 40년이다.

 

짙은 갈색이 돌며 와인은 오렌지 빛을 반사한다. 농축미의 임팩트가 대단하며 보디감과 계속 바뀌는 향기의 다양함이 경이롭다. 무화과, 살구, 대추차, 밤꿀, 호두, 스파이시, 아카시아, 유칼립투스 등 향기의 느낌이 중후하다. 묵직한 보디와 골격이 잘 어우러졌다. 와인이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으나 높은 산도가 개입해 무거운 느낌을 줄여준다. 삼킨 후에도 향기로운 여운이 10분 넘게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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