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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빈티지 와인에 대한 로망과 환상

와인과 얽힌 짧은 이야기들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20. 11. 22.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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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애호가라면 올빈 로망과 환상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다.사진은 2006빈티지 겜메 산타페 와인

와인 애호가라면  대부분 올드 빈티지 와인에 대한 로망이 있다. 식탁에서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저렴한 와인들은 일상의 소확행이다. 하지만 10년, 20년 숙성한 와인은 어떤 궁극적인 맛에 대한 환상과 오랜 기다림의 설렘이 겹쳐져 인생 와인을 꿈꾸게 된다.

 

여기에 와인이 만들어진 그때의 나의 과거를 담고 있는 기억의 창고 역할도 한 몫 한다. 이옵빠(Ioppa) 가족이 16년 전에 양조한 겜메 와인을 오픈하기로 한 결정은 그래서 각별했다. 또한, 이옵빠 와인은 작년 이맘때의 어떤 추억과도 닿아있다.

 

이옵빠 와이너리는 북피에몬테 겜메 시에서 멀지 않은  로마냐 세시아(Romagnano Sesia) 마을에  양조장 겸 본사와  30헥타르의 포도밭을 경작하고 있다. 가족은 1852년 겜메마을에 정착했고 이후 7세대째 겜메와인을 만들어오고 있는 저력 있는 겜메와인 생산자다(▶겜메와인과 테루아 정보는 "토양의 나이가 3억 년인 곳의 와인"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blog.daum.net/baeknanyoung/239?category=4327)

 

그날, 한국 지인분들과 같이 이곳을 찾아갔고 겜메와인 시음 차례가 왔다. 겜메 와인, 겜메 발시나, 겜메 산타페로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매우 흥분했다. 주품종인 네비올로에 15% 이내로 소량 블랜딩 한 베스폴리나 품종이 서로 결합하면서 내는 맛의 하모니는 황홀함 자체였다. 마지막에 시음했던 겜메 산타페(사진에 올린 와인)는 '이렇게 멋진 와인이 어떻게 가격이 이렇게 착할 수 있지'를 연발하게 했다.

 

시음 끝 무렵에 나를 포함한 세 명이 겜메 산타페 2006을 구입했다. 이후 몇 달에 걸쳐 각자 시음하고 소감을 단톡 방에 올렸다. 한 분은 구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열었고, 다른 지인은 몇 달 후에, 그리고 나는 올해 11월 17일 개봉했다.

 

첫 번째 지인은 심한 코르키 때문에 와인이 역해서 버렸다고 했다. 두 번째 지인은 와이너리에서 느꼈던 그 맛 그대로라 했다.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누어졌고 와이너리에서의  느낌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최상에 2표, 최악에 1표가 나왔다. 올빈에 대한 로망과 내가 구입한 2006 빈은 과연 최상 아니면 최악 쪽일까 궁금했졌다.

 

★시음 소감을 말하기 전에 와인 정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산타페 Santafe 포도밭에서 수확한 네비올로(85%)와 베스폴리나(15%)로 양조했다. 포도밭은 남서쪽을 향한 언덕에 있으며 점토질로 돼있다. 네비올로는 수령이 60년이다.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25일 알코올 발효를 마친 후 슬라보니아산 오크통에서 4년 숙성했다. 이후 2년 더 병에서 숙성과 안정을 거친 후 출시되었다. 알코올 농도 13.5도

 

겜메 산타페 2006빈티지 백라벨

개봉 직후--> 전체적으로 벽돌색이 돌며 오렌지빛 섬광이 비친다. 젖은 종이와 고무 탄내가 확 올라왔다. 잠시 뒤에 후추, 피망 향을 살짝 피웠다.

 

20분 경과 후--> 먼지, 검붉은 자두, 가죽, 버섯 향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고 향기가 걷히면서 삼나무 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과일 아로마와 숙성하면서 얻게 되는 부케가 공존했다. 젖은 종이 향은 희미해졌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산도는 매우 높았고 타닌은 혀 주위를 조이다가 서서히 입안 전체로 퍼졌다. 과일의 풍미가 입 안에 가득 찼다.

아로마와 부케는 원숙한 가을의 느낌이지만 타닌과 산도로 짐작되는 와인 맛은 봄을 연상시켰다.

 

40분 경과 후--> 삼나무, 말린 장미와 비올라 향, 감초, 오렌지 껍질 말린 향 등 은은한 향기가 스며 나왔다. 혈액, 금속의 비릿한 향도 나왔다.

 

타닌은 공기 접촉시간을 충분히 놔둬서 그런지 좀 유연해졌으나 산미는 모서리에 닿은 것처럼 날카로웠다. 알코올과 보디감이 주는 중후한 느낌은 천천히 전신에 퍼졌고 오래 남았다.

 

나는 정말 좋은 와인은 하루를 지나면 그 진가가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개봉 당일날은 웬만하면 향기롭고 속된 말로 제 값을 한다. 그래서 첫날 아무리 맛있는 와인이라도 3분의 1 정도는 남겨놓고 그다음 날도 똑같은 느낌인지 테스트한다.

 

24시간 뒤-->매우 실망스러웠다. 어제의 모든 향기는 온데간데없고 종이 젖은 향, 축축한 지하실 냄새가 날 뿐이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30~40분을 기다렸으나 변한 게 없었다. 와인 구조가 가두어 두었던 향기와 풍미 벽돌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올빈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한편으로는 어떤 경험 많은 양조가가 한 말이 떠올랐다. 와인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환경이 바뀌거나 다른 환경에 놓이면  변할 수 있다고 했다.

 

어쩌면 내가 올빈 와인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갖고 있거나 경험이 부족해서 오는 실망감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2006 빈티지가 예외적으로 숙성력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양조가 말대로 숙성실을 갑자기 벗어난 와인이 다른 환경에 놓이자 급변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와인도 품종의 유전자, 토양, 자란해의 자연환경, 자신을 빚은 양조가의 경험에 따라 숙성력의 증감과 가치가 달라진다. 양조가 손을 벗어나면 유통과정이나 구매자의  보존 과정에 따라 와인의 수명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올드 빈티지를 개봉하는건 일종의 내기와 같다.내가 운이 좋으면 본전이고(기대와 로망을 충족) 그렇지 못하면 좋은 경험을 했다고 자기만족선에서 그칠 도리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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