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종의 생김새나 맛의 특성이 품종 명칭으로 굳어지는 예가 종종 있다. 이탈리아 토착품종에서 그런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
오늘 소개할 품종은 노시오라(nosiola)인데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북이탈리아) 주의 자생 품종이다. 노시오라는 이탈리아어로 헤이즐넛을 뜻하는 노촐라(nocciola)에 어원을 두고 있다. 노촐라가 주원료인 이탈리아 식품으로 대표적인 것은 누텔라와 페레로 로쉐 초코볼을 들 수 있다.
노시오라가 노촐라에서 온 경위는 대략 두 가지 이유로 모아진다. 첫째는 노시오라 와인이 헤이즐넛 풍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노촐라는 향기가 짙거나 강하지는 않지만 특유의 쓴 맛을 남긴다. 두 번째 이유는 포도송이가 완전히 익었을 때 노촐라 껍질색(엷은 브라운 계열)을 띤다.
노시오라는 재배지가 트렌티노주 알토 아디제 주로 한정되는 귀한 품종이다. 가르다 호수의 북부와 북동에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는 언덕과 평지가 집산지이며, 북쪽에는 돌로미티 알프스가 버티고 있다.
현재 노시오라 재배는 주도인 트렌토 시 주변으로 집중되있고 발레 데이 라기 지역, 콜리네 디 프레사노 언덕, 소르니, 라비스 마을이 해당된다. 이곳의 토양을 보면 긴 세월에 걸쳐 알프스산에서 실려 내려온 토사가 쌓여서 이루어진 퇴적토양이다. 기후가 온화하며 양지쪽에 자리 잡은 언덕지대는 노시오라 밭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가르다 호수(Lago di Garda)에서 불어오는 '오라 델 가르다(Ora del Garda)'남풍은 노시오라가 헤이즐넛 풍미를 얻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라 델 가르다 남풍은 정오와 석양 때 불어온다.
1세기 전까지 만해도 노시오라가 재배되지 않는 밭을 찾기 힘들 정도로 주 전체에서 재배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해마다 작황이 들쑥날쑥하고 만생종인데다가 국제 품종(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샤르도네..)의 인기가 높아지자 재배농가들의 노시오라 포기와 외면은 심해졌다.
노시오라 산지 중에서 토브리노 호수 주변은 로맨틱한 풍경으로 유명하다. 호수 주변에는 중세시대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토블리노 고성이 서있고 페르골라 기둥에 기대어 노시올라 밭이 펼쳐져 있다. 연인이 이 호수를 거닐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이탈리아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노시오라 포도로 빚은 와인은 스위트 맛과 드라이 맛이 있다. 스위트한 노시오라 와인은 비노산토 디 트렌티노란 이름을 따로 가지고 있다. 토스카나의 유명한 디저트 와인인 빈산토와 이름이 비슷한데 품종도 완전히 다르고 생산방식도 다르다.
손수확 한 노시오라는 일단 자연 건조실로 옮겨진다. 이때부터 포도는 아파시멘토를 거치게 되는데 다음 해 봄까지 이어진다. 이때 기상조건이 적절하면 귀부 균이 옮기도 한다. 노시오라의 아파시멘토는 보통 부활절이 있는 주에 마친다.
건조가 끝난 노시오라는 압착기에 눌러 주스를 얻은 다음 알코올 발효에 들어간다. 발효가 끝나면 소형 오크통 안에서 다년간 숙성한다. 아파시멘토 6개월, 거기다 오크 숙성하는 동안 증발하는 수분까지 합치면 비노산토 디 트렌티노는 귀하디 귀한 금수저 와인이라 볼 수 있겠다. 비노산토는 생산량이 적어 375ml 병 사이즈에 담기고 주로 성탄절과 부활절에 마신다.
그 외에는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잠시 놔두어 포도 아로마가 살아있는 드라이 와인으로 즐긴다. 아로마가 최고에 달하는 때는 대략 수확 후 2~3년 내다. 오크통에 숙성하면 오래 놔두고 마시기에 좋고 복합미도 훨씬 늘어난다.
시음 와인
칸티나 토블리노(Cantina Toblino) 와이너리, 2011빈티지 Vigneti delle Dolomiti Nosiola IGT, 알코올 농도 14%
칸티나 토블리노 와이너리는 1960년에 창립했다. 창립 초창기에는 트렌티노 지역 대주교가 소유했던 포도밭 40헥타르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이후 규모가 커지면서 영농협회 와이너리로 변모했고 회원농가가 6백 군데에 달한다.
토블리노 호수에 가꾸어진 밭에서 온 노시오라 100%로 만들었다. 알코올 발효 후 스테인리스 용기에서 숙성과 안정한 뒤 병입 했다.
시음 노트
이 노시오라는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숙성한 것으로 봐 수확 후 몇 년 안에 마셨어야 했다. 하지만 셀러 안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다가 시음 유효기간이 지난 뒤에야 발견되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 와인의 가장 큰 매력은 색깔인데 거의 황금색으로 찬란했다. 투명한 섬광이 비치기도 했다. 처음에는 향기가 올라왔지만 거의 어떤 향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한 20분 정도 지나자 사프란, 멜론, 망고의 열대 과일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바닐라의 달콤한 향도 피웠고 매혹적인 페트롤 향이 꼬리를 길게 남겼다.
페트롤 향과 더불어 허브 뉘앙스가 곁들여졌는데 지중해 감성도 자아냈다. 연속적으로 올라오는 품위 있는 향기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노촐라(헤이즐넛) 향을 기대했으나 향보다는 입 안에서 맛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마치 아몬드를 씹을 때 우러나오는 쌉쌀함과 고소함이 입안에 퍼졌다.
산도는 원만했고 짭짤함과 잘 어우러졌다. 제법 묵직함도 느껴졌고 살짝 입안을 조이는 타닌 감은 와인에 품격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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