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란티노(Sagrantino) 품종은 상업목적으로 재배되는 와인 중 타닌 수치가 최고인 품종 중 하나다. 사그란티노와 어깨를 겨루는 품종은 타낫(tannat)과 네비올로 정도다. 타닌의 양은 보통 1리터 당 그램 수(g/litre)로 표시하는데 사그란티노는 3.5~4 그램, 네비올로는 3~3.5그램이다.
타닌이 비교적 높으면서 우리 입맛에 친숙한 와인으로는 카베르네 쇼비뇽이 있다. 허나 타닌 수치는 리터당 1.5~1.8 그램에 불과해 사그란티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수 있다.
타닌 때문에 사그란티노 시도 욕구를 억누르지 말라고 당부드리고 싶다. 사그란티노의 타닌은 대부분 껍질에서 온다. 껍질 속 타닌은 고급 타닌으로 알려져 있으며 와인에 보디감과 숙성력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고급 타닌을 축출하려면 사그란티노 포도가 나무에서 완숙한 시기와 장소가 달려있다.
즉, 천천히 시간을 갖고 언덕에서 익어야 한다. 다른말로 하면 포도밭이 3~4백 미터대 안에 들어야 하며 서늘한 바람을 맞아가며 10월 중순이 지나 완숙한 타닌이다.
사그란티노 타닌이 특별한 것은 용해력이 뛰어나 알코올에 신속히 녹기 때문이다. 알코올 발효 중에 타닌이 와인에 완전히 흡수된다. 일반 레드와인 같으면 타닌 양을 감당 못해 물과 기름처럼 타닌과 와인이 겉돌게 되고 결국 와인 맛이 떫고 쓰다.
지구 상에 그런 곳이 어디에 있을까?
남부 이탈리아 움브리아주다. 정확히 말하면 성지순례 도시 아시시(Assisi)를 이정표로 삼으면 된다. 아시시 맞은편에 몬티 마르타니(Monti Martani) 산이 있는데 산의 허리춤에 해당하는 220~472 미터 간격에 사그란티노 포도밭이 조성되어 있다.
포도밭은 몬테팔코, 베바냐 , 괄도 카타네오, 카스텔 리탈디, 자노 델 움브리아 등 다섯 군데 마을에 속해 있다. 몬테팔코는 다섯 마을의 수도 격이며 사그란티노의 본산지다. 사그란티노 와인은 두 종류가 있는데 원산지인 몬테팔코 지명을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된다.
사그란티노는 원래 움브리아 토착품종이 아니였다. 15세기경 아시시 성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이 중동지방에 갔다가 이 품종을 접하게 되었고 귀향길에 이 품종을 들여왔다.
처음엔 아시시 주변에서 가꾸었고 여기서 나온 와인을 미사주로 올렸다. 신성한 장소에 헌주되었던 까닭에 신성하다는 뜻의 Sacra(사크라)라 했고 후에 Sagrantino(사그란티노)로 명칭이 굳었다.
사그란티노 와인은 이때 부터 달게 마셔왔다. 단맛이 나는 와인을 파시토(Passito)라 하는데 사그란티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사그란티노는 알맹이가 껍질이 두꺼워 아파시멘토 자연건조에 적당했다. 건조 후에 당분과 포도 아로마가 농후해진 사그란티노는 신성함을 더했다.
몬테팔코 전통에 따르면 파시토 와인은 부활절에 개봉했다. 몬테팔코의 부활절 전통요리인 양고기 구이와 마시면서 명절을 보냈다.
여기서 우리는 사그란티노 파시토가 아마로네의 전신인 레초토와 비슷한 길을 걸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파시토나 레초토 와인은 스위트한 맛이었으나 서로 다른 이유로 드라이한 와인으로 변했다.아마로네는 일설에 따르면 건망증이 심한 농부가 알코올 발효를 중단시키는 걸 깜빡하는 바람에 효모가 잔당을 다 소진해 버렸다고 한다.
사그란티노의 드라이한 맛은 1970년도에 등장했다. 드라이한 레드와인이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잡자 파시토 생산자들이 자발적으로 양조 실험을 거듭한 뒤에 탄생했다. 당신이 사그란티노를 접했다면 십중팔구는 드라이한 맛을 통해서다.
사그란티노 와인은 Docg 등급으로 지정되었고 단맛의 정도에 따라 두 종류가 있다.
▲ Montefalco Sagrantino Docg, 드라이한 맛
--> 사그란티노 100%, 의무숙성기간: 37개월, 오크 숙성은 최소 12개월, 병 숙성기간은 최소 4개월, 최소 알코올 농도 13도
▲ Montefalco Sagrantino Passito Docg, 스위트한 맛
--> 사그란티노 100%, 아파시멘토 기간: 최소 2개월, 의무 숙성기간: 최소 37개월, 이 기간 중 오크 숙성은 최소 12개월, 병 숙성기간은 최소 4개월. 최소 알코올 농도 18도
몬테팔코 지역의 테루아
여름은 서늘(18~28도) 하고 겨울은 4~6도 정도로 지중해성 기후대다. 비는 여름철에 주로 내리며 1년 평균 강수량은 750~1300mm 다. 수확철을 한 달 앞둔 9월, 10월은 건조하며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수확은 두 번에 나누어서 하는데 파시토용 사그란티노는 9월 말~ 10월 첫째 주에 시작되며 드라이 와인은 둘째 주에 개시한다.
토양은 가장 최근의 것은 11만 년 전, 가장 오래된 것은 약 258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토양 역사가 장대한 만큼 토양을 한마디로 압축하기 어렵지만, 대략 4군데 토양 그룹으로 압축할 수 있겠다.
1. 역암토--> 호수, 강이 운반한 황토색 모래와 자갈이 굳어서 됨
2. 모래토--> 점토와 호수 바닥에 묻혀있던 모래가 융기함
3. 충적토--> 빙하기에 산에서 쓸려내려 온 자갈과 흙이 굳어서 된 충적토다. 대부분 토질이 여기에 속함
4. 석회석과 사암토
몬테팔코 로쏘 와인 Montefalco Rosso Doc
사그란티노의 타닌이 부담스럽다면 몬테팔코 로쏘 와인은 좋은 대안이다. 가격이 착한 로쏘를 맛보기 삼아 사그란티노의 감을 잡는다. 어느 정도 감이 잡히면 순조롭게 묵직한 사그란티노 세계로 연착륙할 수 있다.
산조베제와 사그란티노 블랜딩이며 산조베제는 60~ 8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사그란티노가 메운다.
와인의 전체 느낌은 산조베제 와인 그릇에 사그란티노의 스파이시(후추, 피망..)와 허브(잔디, 로즈마린..)를 담았다고나 할까!! 타닌의 조이는 느낌이 많이 유순하다. 대체적으로 푸르티 하며 발랄하고 보디감은 있지만 무겁지는 않다.
▶ 이 포스팅은 빠르게 이탈리아의 주요 레드와인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그란티노 와인을 전반적으로 소개한 글입니다. 앞으로 사그란티노 와인 생산자들 시리즈로 올릴 예정인데 이 포스팅을 미리 읽어두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1회 사그란티노 생산자 포스팅 --> "퇴마사 와인으로 코비드 19를 쫓아내세요" blog.daum.net/baeknanyoung/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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