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카니발의 흥을 돋우는 와인들 제(1)편

블로그 운영자가 쓴 와인칼럼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19. 4. 24. 23:47

본문

맞기 위해 가는 축제가 있다. 이것이 몸에 부딪칠 때 속이 터지면서 분출하는 시큼 달큼한 액체로 옷이 더럽혀지더라도 기꺼이 미소 지을 수 있는 각오로 간다. 맞아도 즐겁고 용케 피하면 다행인 이 기괴한 축제는 매년 이브레아(IVREA, 이탈리아 피에몬테에 위치, 주도인 토리노에서 30km북쪽 방향에 소재)에서 열리는 카니발 행사로 올 해(2018년)는 2월 13일 부터 15일까지 열릴 예정인 '오렌지 전투(Battaglia delle Arance)"다.


3일 간의 카니발 동안 매일 두 시간씩 이브레아는 전시중인 도시를 방불케 한다. 전투가 치러지는 다섯군데의 광장과 이 광장에 이르는 길들은 오렌지 직격탄이 관람객한테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해 거대한 그물 망이 처진다. 거리 곳곳은 이브레아 카니발의 공식 무기인 오렌지 보급품이 담긴 상자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고색창연한 건물은 오렌지 폭탄으로 더럽혀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비닐과 널빤지로 도배를 했다. 소속은 다르지만 울긋불긋한 유니폼을 입은 시민단은 오렌지로 배불뚝이가 된 헝겊 가방을 어깨에 두룬 채 적군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


긴장된 분위기는 비올렛타(Violetta)가 탄 마차가 등장하자 잠시 누그러든다. 빨간색 모자와 흰 드레스 차림의 그녀가 미모사 꽃과 사탕을 시민단을 향해 던지자 이들은 "비바 무나이아Viva Munaia"환호로 화답한다. 오렌지 전투의 화신인 그녀가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이 축제는 "신혼 첫날 밤 법(Ius Primae Noctis)"와 깊은 연관이 있다.


             

            <비올렛타(사진 왼쪽에 양팔을 벌리고 환호하는 여성)는 매년 바뀌며 경쟁을 통해 선발된다. 비올렛타의 얼굴과 정보는 카니발 하루전에 공개된다>


때는 중세시대, 이브레아가 몬페라토 남작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작은 폭군인데다가 어떤 신부든 결혼 첫날 밤은 무조건 자신과 지내야 한다는 법(Ius Primae Noctis)을 만들어 원성을 쌓았다.


사랑하는 총각과 결혼을 앞둔 비올렛타는 말도 안되는 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혼 첫날 밤 몸에 단도를 숨기고 태연한 척 남작의 침실로 들어간 그녀는 폭군을 보는 순간 단도로 그의 머리를 자른 다음 성 밖에 내 건다. 창문에 걸린 남작의 머리를 본 시민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남작과 그의 비하세력들을 몰아내다. 이후 이브레아 시민들은 비올렛타의 용기와 폭군을 몰아낸 선조들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오렌지 전투를 시작하게 되었다. 전투는 시민을 상징하는 비무장한 시민단(aranceri)와 남작과 그를 비호하는 무장한 귀족세력을 대표하는 폭군단(tiranni)이 벌이는 대결구도로 진행된다.


비올렛타의 마차가 사라지자마자 폭군단을 실은 마차 행렬이 광장에 입장한다. 시민단은 마차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서 오렌지를 던지며 이에 질세라 폭군단도 오렌지 투하로 응답한다. 마차가 광장을 한 바퀴 들 때까지 이 오렌지 투척은 쉼 없이 계속되며 폭군단의 저항이 심할 수 록 시민군의 오렌지 폭탄 세례는 격렬해 진다. 오렌지 전투는 광장에 쌓아 놓은 오렌지가 다 소진되어 광장 바닥이 오렌지 쓰레기로 수 십 센티미터 덮일 때까지 계속된다.


시민단은 모두 9개 팀으로 이브레아의 아홉 군데의 행정구역을 대표하며 출전 팀 수는 오렌지 전투 탄생 후 변함이 없다. 반면, 폭군단은 해마다 참가 팀 수가 줄었다 늘었다 하는데 최근 몇 년 동안 50~55개의 팀을 유지한다. 두 적수는 다섯군데의 광장에 배정되어 같은 장소에서 삼일 동안 전투를 벌인다.


양자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나지 않게 몇 가지 규칙을 염두에 두면서 전투에 임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다 보면 감정에 휘말려 반칙이 수수로 벌어진다. 가장 심한 반칙은 일부러 적군의 얼굴에 오렌지를 던지거나 말이나 마부, 그물망 밖에 있는 관중들을 향해 오렌지를 투척하는 행위다. 3일 동안의 경기를 지켜본 후 페어플레이상을 수여하는데, 시민단의 경우는 적군의 어깨와 팔뚝 그리고 헬멧을 적중한 횟수가 많은 팀에게, 폭군단은 말 장식이 멋지고 말이 동요하지 않게 말을 부린 마꾼이 모는 팀에게 돌아간다.


<사진: 땅에서 오렌지를 투척하는 선수들은 시민단원, 마차 위에서 오렌지를 던지는 선수들은 폭군단원들이다.

2017년 카니발때는 8천 톤의 오렌지가 전투에 사용 되었다>


오렌지가 폭군단 머리 위에 터지는 걸 볼 때 스트레스가 간접 해소되는 스릴이 전달되지만 한편으로는 멀쩡한 오렌지를 이런 식으로 버리는건 자원낭비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카니발 주최측에서는 식용에 적당치 않은 불량 오렌지만 사용하므로 되려 폐기물을 재활용한 거라며 항변한다. 참고로 오렌지는 시칠리아와 칼라브리아에서 재배된 것으로 2017년에는 무려 8천 톤이 전투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가끔 시민단의 표적이 관중을 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시선을 오렌지 세례를 받은 관객의 머리로 향하길.. 십중팔구 그는 적색 베렛토 모자를 쓰고 있지 않을 것이다. 적색 베레토는 시민단 편이라는 무언의 동참행위이므로 오렌지 폭탄의 표적이 되지 않으려면 적색 베렛토를 꼭 써야 한다.


터진 오렌지가 발효하는 냄새는 묘하게 갈증을 부추긴다. 전투 내내 양쪽 군단 전사들의 엄청난 양의 빈부루엘(Vin Brule,레드와인게 설탕,꿀,오렌지,계피의 향신료를 넣고 끓인 와인)을 들이킨다. 전투 전에 몸을 덥히고 긴장을 풀거나 전투가 끝난 후 오렌지 몰매의 통증을 잊는데는 특효약이다.


카니발의 흥을 돋우는 와인들, 제(2)편이 계속 됩니다.


※본 포스팅은 블로그 운영자가 쓴 칼럼으로 The Scent 온라인 와인매체에 2018년 2월 5일에 발표되었습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