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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의 겨울 보양식

블로그 운영자가 쓴 와인칼럼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18. 12. 2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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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바냐카우다는 푸욧에 담겨 나온다. 심지를 켠 미니 양초를 화구에 넣어 소스를 덥히면서 먹는다>


맛있는 건 알지만 막상 먹으려면 망설여지게 되거나 먹는데 용기가 필요한 음식이 있다. 이 음식을 먹으려면 금요일 저녁으로 하되 외출을 자제하면서 구취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주말에 먹을 수밖에 없다면 월요일 자택 근무를 자청하고 이틀간의 구취 휘발 기간을 갖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 주변 5미터를 둘러싼 공기는 요란한 마늘 냄새로 포화상태가 되고 동료들은 그 안에 근접하려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한테 폐가 되지 않는 날을 정하면서 까지 먹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음식은 바로 바냐카우다(Bagna Cauda)다. 겨울이 몹시 습하면서 추운 북이탈리아 피에몬테주의 계절 음식으로 이곳 방언으로 뜨거운 소스라는 뜻이다. 과히 충격적이라 할 맛과 냄세와는 달리 바냐카우다의 독특함은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식재료를 인내로 요리한 단순 조합에 있다.


다양한 레시피가 있지만 2005년 이탈리아 요리학교 아스티 지부가 '코스티리오네 다스티' 지방법원에 등록한 레시피를 정통으로 받아들인다. 이 레시피는 구전으로 전해오던 요리법을 정리한 것으로 12인분을 기준으로 마늘 12통, 올리브 오일 6컵, 스페인산 염장 엔초비 6백 그람이 든다.


위의 재료를 토기 냄비에 넣고 마늘과 엔초비가 올리브 오일에 녹아 죽처럼 농도가 걸쭉해질 때까지 뭉근히 익인다. 보통 3시간 내지 4시간이 소요되며 다 익으면 윤기 도는 짙은 갈색으로 변한다.


바냐카우다는 푸욧(fujot)이라 불리는 토기 소스 그릇에 담겨 나온다. 푸욧과 함께 색이 현란한 샐러리, 양배추, 배추, 파, 레디쉬, 피망의 신선한 채소와 감자, 구운 양파 같은 익힌 야채가 푸짐하게 곁들여 나온다.푸욧 하부에 난 구멍에 심지에 불을 켠 미니 양초를 넣어 상부의 넙적한 보울에 담긴 소스를 덥힌다. 소스 표면에 덮인 올리브 오일에서 작은 방울이 솟아오르기 시작하면 야채를 집어넣어 건더기와 오일이 잘 섞이게 젓는다. 맛있게 먹는 비법은 단 하나, 야채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푹 담가 채소 곳곳을 충분히 적시는 거다.



                            



마늘을 오래 익혀서 매운맛은 사라졌지만 엔초비의 비릿하면서도 쌉싸름한 맛과 결합해 지구상의 어떤 소스도 흉내 낼 수 없는 광폭한맛을 낸다. 여기서 올리브 오일은 서로 상반되는 땅의 맛(마늘)과 바다의 맛(엔초비)을 포용해 감칠맛을 돌게 하는 역할을 한다. 잎채소와 먹으면 채소의 신선한 산미가 입안 가득 퍼지며 소스를 한 껏 빨아들인 익힌 양파와 감자는 좀 더 온순한 맛을 낸다.


평상시라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엄청난 양의 야채를 단 몇 분안에 사라지게 하는 이 소스는 가히 야채 도둑이라 할 수 있겠다. 한겨울에 자진해서 야채를 챙겨 먹게 만드니 바냐카우다 상차림은 이태리식 겨울 보양음식인 셈이다.


보통, 바냐카우다와 야채는 따로 먹을때 궁합이 맞는 와인을 고르는데 애먹을 수 있다. 하지만 둘을 같이하면 어지간한 레드와인 한 병쯤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깨끗이 비울 수 있다. 피에몬테인들은 흔한 식재료의 혼합인 이음식을 바르베라나 네비올로 같은 편안한 와인과 곁들인다. 와인이 어릴수록 진가를 발휘하는데 신선한 과일향과 산미가 바냐카우다의 비릿하면서도 쌉쌀한 맛을 완화해 주고 풋풋한 탄닌이 입안의 잡내를 상큼하게 씻어 준다.


<사진설명: 카비올라(Ca' Viola)와이너리의 와인들. 와이너리 이름인 카비올라는 보라색 집이란 뜻이다. 오너인 주제페 카비올라씨는 무려 28군데 와이너리의 수석 양조가를 맡고 있는 이탈리아 와인계의 전설이다. 1991 년에 취미로 만든 돌체토 와인이 좋은 결과를 거둔 후 자신의 이름을 건 와인을 생산해오고 있다>


바냐카우다 소스는 삼 면이 육지로 둘러싸였으며 겨울이 혹독해 올리브 나무 재배에 적당치 않은 피에몬테주의 자연환경과 타협한 음식이다.


소금값이 금 값이던 중세시대, 소금 무역상들은 세금을 적게 내려고 소금이 담긴 용기를 엔초비로 가려 국경 감시원의 눈을 속여 들여왔다. 이후, 서쪽의 리구리아로부터 올리브 오일이 도입되자 타지에서 온 진귀한 식재료는 피에몬테에 흔한 마늘과 결합해 소스 형식으로 태어난다.


바다와 육지가 결합된 맛으로 바냐카우다 외에 톤나토란 전통 소스가 있다. 톤나토 소스는 참치,엔초비,레몬, 마요네스를 믹서에 갈아 얻는데 이때 올리브 오일을 몇 방울씩 넣어주면서 벨벳 식감을 얻는 게 포인트다.마늘 자리를 참치와 마요네스가 대신하며 충돌을 일으키는 여러 맛이 교묘히 결합된 소스다. 톤나토 소스로 맛을 낸 음식으로는 회처럼 얇게 포 뜬 구운 송아지 고기에 소스를 듬뿍 뿌린 비텔로 톤나토다.


마늘냄새가 진동하는 바냐카우다를 귀족들은 불경하게 여겨 역사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문서에 올렸다. 주로 서민들이 즐겨먹었고 모양이나 먹는 방식이 세련되지 못해 빈약한 요리란 뜻의 '쿠치나 포베라' 취급을 당했다. 레스토랑 메뉴에서도 밀려나는 푸대접을 받았지만 최근 Bagna Cauda Day란 행사로 피에몬테 식탁에 다시 등장했다.


행사의 취지는 단순하다. 3일간의 행사기간 만이라도 허리띠 풀고 입 냄세 걱정하지 말고 실컷 먹자다. 다 같이 먹으면 구취 염려 따윈 붙들어 매도 된다는 물귀신 작전이 의심되는 행사다.


※본 포스팅은 블로그 운영자가 쓴 칼럼으로 The Scent 온라인 와인매체에 2018년 12월 17일에 발표되었습니다.

링크 http://www.the-scent.co.kr/xe/wine_story/258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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