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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의 흥을 돋우는 와인들 제(2)편

블로그 운영자가 쓴 와인칼럼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19. 5. 16.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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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의 흥을 돋우는 와인들 제(1)편에 이어지는 후속 편입니다


이브레아 카니발의 또 다른 볼거리는 '텐트 식당'에 쌓여 있는 '음식의 산'이다. 텐트 식당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파졸라타(fagiolata)다. 이 음식은 일종의 지방이 보강된 콩요리인데 강낭콩, 돼지껍질, 잠포네와 코테끼니(이탈리안 소시지의 일종)를 넣어 푹 익힌 전통요리다.


카니발이 끝난 뒤 이어지는 사준절 기간에 음식 자제 풍습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카니발 동안에 기름지고 느끼한 음식을 폭식한 뒤 검소한 음식과 금육 기간에 대비하던 식탐의 타성은 변하지 않았다.


카니발 주체 측에 따르면 작년(2017년) 카니발 때 사용한 강낭콩은 무려 7100kg 이였다고 한다. 하룻밤 물에 불려 놓은 강낭콩에 2300kg의 돼지껍질, 3900kg의 코테끼니, 400kg의 잠포네, 600kg의 돼지뼈, 300kg의 돼지비계, 400kg의 양파를 대형 동 냄비 안에서 6시간 동안 푹 고아서 완성한다.


오렌지 전투가 끝난 다음날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의 첫날이며 이 날 먹는 음식은 카니발의 음식과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일명, 양파소스에 익힌 대구와 폴렌타 죽인데 노란빛이 도는 도톰한 대구 살을 담백한 양파소스에 익힌 소박한 음식으로 빨간색 일색이었던 파졸라타에 비해 지방의 거품을 뺀 음식이다. 그러나 대구요리는 겉모습과는 달리 준비기간이 길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보통, 3천 명이 한 끼에 먹을 양을 준비하는데 카니발 1주일 전부터 시작된다.


먼저, 염장된 대구 900kg을 닷 세 동안 물을 세 번 갈아내며 소금기를 제거한다.이렇게 염분이 제거되면 이틀간 물기를 건조한 뒤 작은 도막으로 자른 다음 밀가루에 묻혀 튀긴다. 재의 수요일 전날에는 양파 1100kg과 마늘 7kg으로 대구 소스를 준비한다. 재의 수요일 당일 날 아침에는 1200kg의 옥수수 가루와 물을 대형 냄비에 넣고 중간 불에서 천천히 저어가면서 폴렌타 죽을 완성한다. 전투를 끝낸 두 팀의 전사자들과 비올렛타, 이브레아 시민들이 같이 하는 평화와 화해의 음식은 이렇게 완성된다.



            <사순절 첫 날 3천 명이 먹을 폴렌타가 익어가는 동 냄비>


고기와 생선이 주가 된 카니발 음식은 이브레아인들의 음주 풍습처럼 카레마(Carema)와 에르바루체(eubaluce) 와인과 즐긴다. 카레마 와인은 네비올로가 주품종인 와인이며 이브레아 근교에 있는 카레마 마을과 그 근교에서 생산된다. 피에몬테주의 최북단에 위치하며 이곳에서 단지 몇 미터만 북쪽으로 올라가도 일교차가 적정 온도 밑으로 급강하해 품질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때문에 카레마는 피에몬테의 북방한계선에 놓인 극한의 와인이다.


이런 독특한 카레마의 기후조건에 맞게 최적화된 포도 재배방식은 '페르골라Pergola'다. 페르골라는 돌과 회반죽을 섞어 만든 1m 80cm 높이의 돌기둥을 뜻하며 네비올로 나무의 전후좌우에 세워진다. 네비올로 한 그루와 4개의 페르골라 기둥이 한 세트를 이루며 그 위에는 바둑판 모양으로 엮어진 나무 지붕이 얹힌다.


보통 첫 페르골라를 세운 후 땅에 깊숙히 박힌 바위 덩어리를 만나거나 땅이 끊기는 곳에 도달할 때까지 페르골라는 수평방향으로 계속 세워진다. 결국, 페르골라 위에 놓인 네비올로는 낮의 태양을 충분히 받게 되며 태양열로 달궈진 페르골라는 마치 온돌처럼 열을 발산해 네비올로는 밤의 혹한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다.


카레마의 네비올로가 미네랄 성분이 높은 화강암 토양으로 된 산 중턱에서 재배된다면 에르바루체 화이트 품종은 산, 인, 칼륨이 혼합된 모래, 자갈 토양으로 이루어진 낮은 언덕에 심어진다. 에르바루체(erbaluce)는 풀(erba)과 빛(luce)의 의미를 가지며 다 익어 수확할 때가 뙤면 태양주위의 코로나처럼 찬란한 황금색을 내며 다채로운 풀 향기를 풍긴다. 이브레아인들이 신의 열매로 부르는 이 품종은 아름다운 알바루체 요정의 애틋한 전설을 담고 있다.

                             

                                      <에르바루체 포도>

                                                  

알바루체 요정은 아침의 여인 알바(alba)와 태양의 신(luce:빛, 태양)의 사랑으로 태어났으며 이브레아 근교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로 놀러 오곤 했다. 이브레아에 사는 농부와 양치기 들은 호수에 와서 알바루체의 아름다움을 보며 찬사와 감탄의 노래를 불렀다. 이러한 평화로운 풍경은 유량민의 여왕 입빠가 호수의 명성을 듣고 이곳에 오는 순간 옛이야기가 된다. 호수의 풍부한 수량을 본 여왕은 여기에 정착하기로 하고 호수를 터 버린 다음 농토로 개간했다. 흔적조차 없어진 호수를 본 요정은 그만 슬품에 젖어 눈물을 흘렸는데 말라버린 호수에 떨어진 눈물은 포도나무로 변했다.황금색 즙이 풍부한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린 이 나무를 사람들은 알바루체 요정의 포도나무라는 뜻의 에르바루체로 부르기로 했다.


에르바루체 와인은 요정처럼 청순한 들 꽃 향기와 산도와 단 맛이 잘 어우러진 과일을 한 입 깨물 때 입안에 터지는 신선한 맛과 향이 매력적이다. 포도의 아로마가 와인에 잘 구현되는 동시에 품질도 상승되는 이점이 있어 에르바루체는 다양한 양조기법에 적절하다.


저온 침용을 잠시 거친 후 사멸한 효모 위에서 숙성한 드라이한 맛의 에르바루체는 풍부하며 깊은 맛의 아로마가 느껴지며 산미는 원만하며 중간 보디감 정도의 무거움이 입안을 채운다. 사과,자몽, 마르게리타, 버터 과자, 호두, 아카시아 꿀 향기를 발산하는 스푸만테는 샴페인 방식(섬세하고 부드러운 기포를 만들기 위해서 병 안에서 2차 발효를 함)으로 숙성해 버블이 곱고 균일하면서도 중단 없이 올라오기 때문에 각광받고 있다.


황금색으로 잘 익은 포도 껍질을 뚫고 과육에 안착한 귀부 균이 포도 아로마와 만나 변화무쌍한 조화를 일으키는 파시토(passito, 건포도로 만든 스위트 와인)는 에르바루체 와인의 정상이다. 어머니 손가락에 끼어 있던 호박 반지 빛깔이 돌며 아몬드와 꿀, 헤즐넛, 살구, 파인애플 향기가 꿈결 같다.


일 년 전 오렌지 전투에 갔을 때 파졸라타를 먹고 난 후 파시토와 함께 부지에(busie, 밀가루, 계란 반죽을 튀긴 과자, 카니발 전통 과자)과자를 먹던 추억이 떠오른다. 파졸라타를 먹고 난 후 위장은 음식 거부를 외치고 있었지만 설탕가루가 듬뿍 뿌려진 튀김 과자와 파시토의 유혹에 백기를 들었던 기억이다. 카니발이 한 달 채 안 남았지만 내 코는 이미 공기 속에서 오렌지 향기를 맡으며 파시토의 달콤함에 사그라들던 카니발 과자의 고소한 기억은 침샘을 자극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블로그 운영자가 쓴 칼럼으로 The Scent 온라인 와인매체에 2018년 2월 12일에 발표되었습니다.

기사 링크 http://www.the-scent.co.kr/xe/wine_story/23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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