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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와인의 매력 덩어리-리구리아 와인

블로그 운영자가 쓴 와인칼럼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16. 12. 23.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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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이탈리아 부호들의 휴양지인 포르토피노(Porto Fino)에 간적이 있다.

별장이나 요트가 없는 이탈리아인들이 이곳에 가는 이유인 쪽빛 리구리아 바다에 떠있는 흰요트나 구릿빛 피부에 걸친 흰셔츠가 멋지게 어울리는 이탈리아 남성이 모는 빨간색 페라리를 보러 간 것은 아니다.


다만 포르토피노의 물살을 가르는 흰 요트 밑 해저에서 "심연의 스푸만테 Spumante Abissi"가 숙성되는 장소를 보고 싶었고

잠수하는건 불가능할 테지만 배를 타고 근처만이라도 가 볼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물살이 높아 유람선은 항구에 묶여 있었고 포르토피노의 유명 와인샵에 갔는데도 스푸만테는 예약한 고객만 살 수 있다고 했다.




"심연의 스푸만테"라는 이름도 독특하지만 바다 밑의 바위처럼 불가사리,굴,해초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병포장도 재미있다. 이 와인은 고대에

바다에 침몰한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와인이 수 십세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침몰 당시의 향기를 보존하고 있는 것에 주목한 루가노(Lugano)씨의

아이디어다. 바다를 열린 숙성실로 만들고 싶었던 루가노씨의 꿈은 포르토피노에서 30km떨어진 조류가 느리고 햇빛이 도달하지 않아

연중 15도를 유지하는 "Cala Degli Inglesi" 바다 밑 60미터 지점을 발견해낸 후 물 만난 물고기 처럼 신속하게 추진됐다.


모래를 품은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 내듯 포르토피노 바다가 2년 품어 숙성시킨 "심연의 스푸만테"의 연 생산량은 6500병 전도다. 매년 성탄절 이브에

"심연의 스푸만테"가 출시되지만 사실은 1년 전부터 예약자 명단에 있는 고객한테 약속한 스푸만테를 전달하는 이벤트에 불과하다.



                                    


루가노씨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만든 스푸만테가 희귀 와인이라 구하기 쉽지 않은건 사실이지만 어느정도 리구리아 와인의 현주소를 알려준다.

리구리아주는 리구리아 해안과 평행으로 뻗어있는 아펜니노 산맥을 따라난 좁고 긴 분지에 인구와 주거지가 몰려있다. 그렇다 보니 포도밭은 해안에

면한 가파른 아펜니노 절벽에 조성돼있고 면적은 헥타르 단위로 측정되기에는 협소하기 때문에 보통 제곱미터로 표현된다.


또한, 리구리아주의 푸른 바다와 이국적 풍경은 관광객을 연중 끌어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머물다 간 곳에서 생산된 와인은 거의 동이난다. 리구리아 자체내에서

와인이 거의 다 소비되기 때분에 주 경계 밖의 이탈리아 내에서도 구하기 쉽지가 않다.


하지만 리구리아주 서쪽 끝, 토스카나주 북쪽과 맞닿은 루니(Luni)지역은 사정이 좀 다르다. 리구리아의 비좁은 분지를 관통하던 아펜니노 산맥이

동쪽으로 한 발짝 물러나고 갑자기 평지가 나타나는 곳에 위치한 루니에 도달하면 마치 막혔던 속이 뜷린 것처럼 시원해진다.


평지와 바다의 수평선이 닿는 지점에는 한여름인데도 눈을 덮고 있는 듯한 산이 보이는데 푸른 밀밭과 기괴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산은 카라라(Carrara)대리석 광산으로 순도높은 백색 대리석으로 명성이 높다. 이곳에서 캐낸 카라라 대리석은 판테온신전,트라야누스 기둥,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피사와 피렌체의 두오모 파사드(정면) 장식에 쓰여졌다.



카라라 대리석은 세계인을 감탄시키는 우아한 예술품으로 변신했고 근교의 루니지역 와인은 로마인을 열광하게 했다. 현재 루니 와인은

"콜리 디 루니 Colli di Luni DOC)"의 이름으로 생산되지만 로마인들은 Palma와인으로 불렸다. 채굴된 대리석은 루니로 옮겨진 다음 이곳의 항구를

통해서 지중해 연안도시로 수출되었다. 대리석이 실린 배에는 루니의 베르멘티노 와인도 실려있었고 대리석이 하역되는 곳에 루니와인도

함께 내려졌다.


루니는 기원전 177년 로마인에 의해 세워진 도시로 성곽밖에 로마의 콜로세움에 비견될 만한 규모의 원형극장이 건설되었고 관중석은 모자이크로

장식될 정도로 화려했다. 한 에피소드에 따르면 롱고바르드족이 루니에 침입했을때  이 원형극장만 보고 로마라 착각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규모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후에 사라센해적과 게르만족의 잦은 침입때문에 루니는 폐허가 되었고 이곳에 부를 가져다 주던 항구는 근처에 흐르던 강에 실려온

모래와 흙이 바다를 메워버려 카라라 대리석을 싫은 배는 더 이상 로마로 향할 수 없게 되었다.


한참 발굴작업중인 옛 루니 유적지에서 저만큼 멀어져 있는 해안을 보니 문득 자연의 힘에 굴복한 과거의 영광이 덧없게 보여졌다.


루니지역은 리구리아 와인의 70%가 생산되는 리구리아 와인의 수도이자 허브다. 다 수의 포도재배농들과 이들로부터 구매한 포도와 생산자가

소유한 포도원에서 직접 재배한 포도를 양조해서 연평균 20~30만 병을 생산하는 소수의 중소규모 와이너리가 공존한다.


루니와인은 베르멘티노와 산조베제로 대표된다. 베르멘티노는 짠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야만 제맛과 향을 낼 수 있는 바다친화 품종이다. 그래서

지중해에 접한 스페인,프랑스 해안과 이탈리아 서해안이 최대의 생산지가 된 건 우연이 아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강렬한 햇빛과 염기 품은

바람이 불어오는 루니지역(리구리아 동북부와 토스카나주 북부해안),볼게리,사르데냐섬에서 생산된 베르멘티노 와인을 최상의 품질로 여긴다.


                                


루니 베르멘티노의 빛깔은 영롱하면서 투명한 짙은 노란색이며 복숭아,라임,골든사과,허브,미네랄의 농축된 향기는 화사하고 개별 향기를 구별해낼 수

있을정도로 또렷하다. 적절한 산미와 두드러지는 짠 맛, 목에 넘긴 후 혀에 남는 쌉쌀한 아몬드 맛이 일품이다. 베르멘티노의 향기만 맡으면

프레쉬한 치즈나 구운생선, 올리브유를 듬뿍 넣은 봉골레 스파게티와 마시고 싶지만 실제로 입에 넣어 혀로 굴리면 토마토소스에 익힌 생선요리,

허브를 듬뿍넣어 구운 송아지 스테이크와 함께해도 좋을 만큼 깊고 풍부한 맛이 난다.


루니 산조베제는 토스카나 내륙쪽의 산조베제와는 구분된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의 빛깔, 말린 꽃과 검붉은 과일향, 복합적인 부케가 농축되어 집중된

힘이 느껴지는 끼안티 클라시코,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까르미냐노 산조베제와는 사뭇 다르다.


루니 산조베제는 약간의 칠리에졸로,카나이올로 품종과 블랜딩해서 코르크를 여는 순간 제비꽃,핑크빛 장미, 체리,스파이시향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날카로운 산미는 알콜의 실키함과 만나 둥글게 느껴지며 타닌은 영와인의 힘과 잘 숙성된 레드의 부드러움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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