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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에 옷을 입히는 치즈 숙성사

이탈리아 치즈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18. 3. 27.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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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 전 치즈시식할 기회가 있었다. 이 치즈들은 '치즈 숙성공방'에서 온 것들로 공방내 숙성실에서 일정기간 머문 후 좀 더 우아하고 고상한 맛을 갖게 된 이른바 감동을 주는 치즈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숙성공방의 필수불가결한 존재는 바로 아피뇌르(affineur)라 불리는 숙성사다.


치즈 숙성사는 원래 프랑스에서 탄생한 직업으로 다양한 치즈의 생산과정, 원유(우유, 양젖, 염소젖)의 특징, 치즈 미생물학, 수의학, 사육 및 방목된 가축의 특징, 자국은 물론 세계 치즈의 트렌드등 치즈 전반에 대한 지식을 갖춘 치즈 박사다. 


일단, 원료인 프레쉬 치즈 덩어리가 공방에 입고되면 숙성사는 숙성의 모든 단계를 결정한다. 숙성사는 치즈표면을 천일염 마사지 또는 식염에 담글지 결정, 곰팡이 주입 시기(고르곤졸라 치즈의 경우), 허브나 향초, 포도지게미, 담뱃잎 등 치즈의 본래 향과 맛을 향상해줄 숙성재료와 방법을 결정한다. 또한,천연동굴, 숙성고, 토기 항아리 등 치즈숙성의 핵심단계인 숙성장소를 결정한다. 이렇게 숙성사의 손길을 거친 치즈들은 일반 숙성한 치즈가 따라 올 수 없는 독특한 풍미를 얻게 된다.


이날 시식한 치즈는 1876년에 창립한 '루이지 구판티(Luigi Guffanti)'란 치즈 전문 숙성공방에서 공들여 만든 치즈들이다. 이 숙성공방은 북이탈리아에 위치한 마조레(Lago di Maggiore)호숫가 아로나(Arona)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공방명칭인 루이지 구판티는 창립자의 이름으로  5세대째 치즈 숙성공방을 운영하는 이탈리아 유수의 치즈 숙성 가문이다.



루이지 구판티씨는 현재 숙성고가 있는 아로나의 성벽 지하를 치즈 숙성고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치즈 숙성업계에 입문한다. 초기에는 고르곤졸라 치즈를 구입해서 숙성했는데 이 숙성고의 온도와 습도가 연중 일정해서 고르곤졸라 치즈의 숙성지로는 제격이었다. 여기서 숙성된 고르곤졸라 치즈는 대성공을 거두어 아르헨티나, 미국의 캘리포니아에까지 수출되었다.


고르곤졸라의 성공을 기반으로 토마, 페코리노, 파미자노 레자노등 이탈리아의 유명한 치즈 숙성으로 확장했다. 현재는 4세대와 5세대가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탈리아 전국의 치즈 공방을 직접 방문해 프레쉬 치즈를 구입한다. 현재 이들이 숙성하는 치즈의 종류만 해도 50여 종에 이르며 구판티 치즈는 일부 미식가를 위한 가스트로노미아(고급 식품점),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치즈 전문점에서만 살 수 있다. 


오늘 저녁 시식한 치즈는 모두  6종류로 프레쉬 치즈, 반경성, 경성 치즈, 고르곤졸라 치즈였다. 원유는 염소젖, 우유, 양젖이며 개별 원유로만 만들거나 일정 비율로 섞은 혼합유 치즈다. 그중 두, 세 종류는 치즈 만드는 방법이나 탄생 이야기가 특이했는데 그 치즈들을 중심으로 포스팅하겠다.


1, 카프리니(Caprini) 프레쉬 치즈, 염소젖 100%, 20 일 숙성

직경 5~6cm의 가는 실린더 모양이며, 치즈 표피는 비올라 꽃을 태운 재로 덮여있다. 치즈 속살은 백자 빛이 나며 치즈 테두리는 재 껍질이 둘러싸고 있다. 치즈에서는 비올라 꽃 냄새와 원유 향기가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한입 물었을 때 솜사탕처럼 입안에 사르르 녹는 식감이 마치 꿈결 같다.





2, Ostrica di Montagna 반경성치즈, 비멸균 우유 100%

치즈 표면이 굴 껍데기처럼 울퉁불퉁해서 '산의 굴'이란 별명을 갖는다. 크기는 어른 주먹만 하며 표면에는 말린 허브 가루가 붙어있다. 이 치즈는 옛날 농가에서 흔히 만들던 치즈로  커드(우유가 산이나 응유효소에 따위에 의해 엉기어 굳어진 것, 성형 틀에 옮기기 전의 따끈한 단백질 덩어리,다음 국어사전 인용)를 공 모양으로 만든 후 집 안에 걸어 놓으면 자연적으로 숙성되었다.


치즈가 어느 정도 건조되어 표피가 굳어지면 로즈마린, 사루비아, 타임의 허브 믹스를 표면에 문지른 후 집에 다시 걸어놓았다. 이 향초는 치즈가 세균에 감염되는 것을 방지하며 치즈에 독특한 향초 향기를 준다. 허브 믹스 향이 치즈특유의 향을 덮어 향초 향이 은근히 나며 솔잎에 찐 송편을 깨물 때처럼 화사한 솔잎 향이 입안에 퍼진다. 담백하며 씹을 때 쫀득함이 맛깔스럽다.




3, Salva Cremasco 경성 치즈, 우유 100%

치즈 속살은 일반 치즈처럼 보이지만 자른 조각은 파미쟈노 레자노 치즈처럼 모양이 일정치 않다. 여름철 알프스 산에서 방목한 소들이 평지의 목장으로 돌아온 직후 짠 우유로 만든다. 알프스산의 드넓은 방목지의 마지막 날의 추억을 품고 있는 치즈다. 숙성사의 설명에 따르면 목장에 돌아온 뒤 들에서 자란 풀을 먹은 소젖으로 만든 치즈에서는 들 향기가 난다고 했다


버터 향이 나며 크림 같은 부드러운 식감, 잘 구워진 군밤 맛이 난다. 짭짤한 맛은 입맛을 돋우며 고소함이 입안에 은은히 퍼진다.



4, Bettelmatt di Bettelmatt 반경성 치즈, 우유 100%

Bettelmatt 롬바르디아주(밀라노가 속해 있는 주)와 스위스 국경에 있는 해발 2천 미터에 있는 방목지다. 매년 두 나라의 목동은 이 방목지를 먼저 차지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버릴 만큼 젖소 방목의 최적지로 알려졌다.


폰티나 치즈(발레다 오스타 주에서 생산되는 알프스 방목 치즈)의 풍미와 비슷하며 버터, 건초, 견과류 향, 구수한 육수 맛과 짭조름한 맛이 조화를 이루며 뒷 맛이 길다.


5, Pecorino Pepato Cedrino 양젖 치즈(페코리노 치즈에 대한 포스팅),

숙성사가 사르데냐 섬에 가서 직접 고른 페코리노 치즈를 12개월 숙성했다. 치즈 살 내부에 통 후추 층이 세겹이 있는데 이는 치즈를 성형 틀에 넣기 전에 커드와 통후추 층을 반복해서 쌓은 후 성형 틀에 넣어 압착한 것이다.


숙성을 오래 했음에도 매운맛과 페코리노 치즈의 고유향기가 강하지 않으며 달콤한 꿀과 견과류 향을 풍긴다. 통후추와 치즈 조각을 씹을 때 매콤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난다.





6, Gorgonzola 블루치즈, 200일 숙성

조직이 매우 치밀하며 조직 사이에 촘촘히 박힌 푸른곰팡이(페니실리움 로크포르티)가 마치 화석처럼 굳은 이탈리안 파슬리를 품고있는 것 같다. 크림 식감 속에 코를 아른거리게 만드는 매운맛이 숨어있다. 매콤함과 부드러움의 대비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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