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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단골이 생겼다.

와인&음식 축제이야기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18. 2. 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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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도 올리브 오일 단골이 생겼다. 그동안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엑스트라 버진유로 생략)이 바닥이 드러날 즈음이 되면 세일하는 마트를 찾거나 아니면 세일하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대형마트에 가서 구입하곤 했었다. 오늘부터는 적어도 안면 있는 사람이 재배하고 압착한 엑스트라 버진 유를 구입할 수 있는 거래처가 생긴거다.


주변의 이탈리안 이웃들이나 친구들은 남이탈리아가 고향인 사람들 한테 부탁해 구입하고 있다. 특히, 풀리아주나 마르케주가 고향인 사람들은 적어도 고향의 텃밭이나 농장에 한 두 그루의 올리브 나무를 소유하는 게 보통이라 이곳 사람들을 알면 가격도 저렴하고 믿음 가는 엑스트라 버진유를 살 수 있다. 그동안 일부러 이런 구입 루트를 수소문하러 다닌 건 아니지만 우연한 기회에 저절로 찾아온 절호의 찬스 덕에 나도 입 맛 만은 이탈리안 대열에 끼게 되었다.


먹을게 지천인 요즘에도 와인, 빵, 고기, 올리브유는 이탈리아  4대 주식의 자리를 확고히 지키고 있으며 이탈리아 가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필품들이다. 옛날에는 식수의 위생상태가 나빠 그 대용으로 와인을 마셨지만 식수 상태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개선된 요즘도 이탈리아 식탁문화에서 식사와 와인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매년 1인당 와인 소비가  45리터에 이를 만큼 이탈리아는 와인 소비 대국이다.


한 집 건너 있는 빵가게는 어떤가? 어떠한 조리법을 사용해서 음식을 만들더라도 빠질 수 없는 올리브 오일은 이탈리안 감초다. 그래서 옛날부터 백성이 배곯지 않게 4대 음식을 시장에 꾸준히 공급할 수 있는 정책을 핀 정치가가 최고의 군주로 추앙을 받았다는 내용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엑스트라 버진유 단골집이 생긴 뒤 우리 식구의 주식 공급처를 잠시 돌아보았다. 먼저, 와인..요리용 와인(팩 와인)이 떨어지거나  갑자기 특정 와인이 마시고 싶을 때를 제외하고는 마트 와인코너에 일부러 가지는 않는다. 와인 쪽 일을 하다 보니 와이너리에 수시로 가기 때문에 이탈리아 와인 생산자들과 직거래하고 있는 셈이다.


고기의 경우 브라 살시차(Salsiccia di Bra, 육회 소시지)를 좋아하는 친구 부부를  초대하는 날을 빼고는 마트 정육코너에 간다. 브라 살시차는 날로 먹는 음식이라 신선함이 생명이라 잡다한 부위와 지방을 섞어 부피만 늘린 살시차가 아닌 파소네 토종 육우와 허브를 갈아 소 내장에 채운것만 취급하는 정육점에서 구입해야 믿음이 간다.


동네 빵집이 가까이 있긴 하지만 이곳에 가지 않은지 오래다. 동네빵집은 신선한 빵을 사려고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로 미어터지는데 고객의 대부분은 아침에 시간이 넉넉한 정년퇴직한 어르신 내들이다. 이 분들은 하루치 빵도 사고 이웃들과 수다를 떨 수 있기 때문에 동네빵집은 친목 도모의 적소다.


이들이 사는 빵은 기껏해야 차바타 빵 두 세 덩어리 아니면 바켓트 빵 한 덩어리 정도인데 가격으로 따지면 50~60 센트(6~7백 원 정도)다. 푼돈이면 갓 구운 빵의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곳에서 이웃들과 말을 섞을 수 있으니 아침 빵집은 어르신들로 문전성시가 되는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이분들이 나누는 화제는 거창 한 건 아니고 애완견, 애완묘가 재주 부리던 이야기나 어제 갑자기 무릎이 아팠다는 등 소소한 일상 얘기다. 우리 집에 있는 동물이라고는 허락 없이 침입해 사는 개미가 전부이고  매일 아침 빵 사러 가는데 지장 없을 정도로 내 건강상태는 아직 양호하므로 빵집에 놀러온 할머니, 할아버지들과는 공통화재가 없다.


처음에는 이분들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맞장구치다가 저번에 들었던 이야기를 몇 번 반복해서 듣게 된 날은 이분들이 나의 이탈리아어 이해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가 싶어 은근히 비위가 거슬렸다. 몸 아픈 얘기를 잔뜩 들은 날은 내 몸도 덩달아 찌뿌듯해지는 것 같았다. 또한, 아침 9시 넘으면 갓 구운 차바타 빵은 다 팔리고 진열대에는 고작 몇 개의 빵 덩어리만 덩그러니 남아있어 빵 재고 처리하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마트의 빵 코너와 뭐가 다를까 싶어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그동안 엑스트라 버진유는 마트에서 구입했었고 대체로 만족했다. 가격도 좋고 무엇보다도 마트의 올리브유는 향기가 순해 음식 맛이 변하지 않는 이유에서였다. 가끔, 남이탈리아에서 올리브유를 배달해 먹는 친구가 저녁 초대했을 때 전체요리로 내오는 빵의 하얀 속 살을 녹색으로 물들인 올리브유가 풍기는 진하면서도 담백한 고소함에 매혹된 적이 있었다. 올리브유 드레싱에 버무린 푸른 채소와 흑색 올리브 열매가 내는 윤기는 정말 눈이 부셨다. 그러던 중 한 이탈리아노가 맛보라고 준 엑스트라 버진유 샘플은 입에 살살녹던 고소함의 향수를 일깨웠다.


올리브 오일 새 단골은 와인 심사원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시칠리아 친구다. 그 친구는 와인 양조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와인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집안의 농사일을 돕고 있다. 농사일을 도우면서 틈틈이 국제 와인품평회 심사원으로 초대받아 유럽을 누비고 있는데 그정도면 시칠리아 출신으로는 출세한 편이라 할 수 있겠다. 친구의 가족은 올리브 나무를 재배하지만 밭 한켠에는 와인용 포도를 키우는데 양조시설을 갖추지 못해 재배한 포도는 와인 협동조합에 판매한다.


2017년 이탈리아의 올리브 농사는 흉작으로 인해 엑스트라 버진유가 비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시칠리아 친구는 정말 좋은 가격으로 보내주었다. 보통 100% 이탈리아산 올리브를 압착해서 만든 엑스트라 버진 유는  1리터당 최소 16 유로를 줘야 사는데 그보다 훨씬 밑도는 가격을 불러 오히려 미안할 정도였다.


이탈리아 생산자 연맹(COLDIRETTI)의 통계를 인용한 이탈리아 신문사 연합( ANSA, 2017년 10월 29일 자) 일간지에 난 기사를 보면 작년 여름은 이상고온으로 인해 올리브의 평균 작황이 2016년 보다 11% 줄어든  3억 2천 만 kg을 수확했다고 한다. 특히, 올리브 오일의 최대 생산지인 풀리아와 마르케주는 작년에 비해 각각 25%, 30% 로 생산량이 감소해 피해를 가장 심하게 겪었다. 보통 100kg 당 15kg의 엑스트라 버진유를 압착하는데 2017년은 100kg당 10kg으로 생산량이 줄었다.


한편으로는 날씨가 너무 덥다 보니 올리브 해충(파리의 일종)이 번식할 수 없어서 올리브의 품질이 최상이었다는 소식은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친구 말로는 그의 올리브 농장이 위치한 마르살라(Marsala, 시칠리아 서부 해안지역)는 올리브 풍년이 들어 예년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캔의 뚜껑을 여는 순간 조그만 입구를 통해 논의 봇 물이 터지 듯 향이 밀려 나왔다. 아티초크, 토마토, 사과, 호두, 풀 잎 향기의 순간적 임팩트로  뒤로 한 발짝 물러 나야 했다. 여과를 거치지 않아서 진녹색이 나는 오일을 병에 따를 때 표면은 매끈하고 윤기가 돌았다.



엑스트라 버진유의 비밀은 단순, 신속한 생산 절차에서 온다. 나무에서 수확한 올리브는 곧장 착유장으로 보내지는데 섭씨 27도 이하에서 압착 (cold pressing)한 뒤 곧바로 병입 된다. 친구가 보내온 올리브유는 체라수오라(Cerasuola)와 비안코릴라(Biancolilla) 품종을 블랜딩해 만들었으며 둘 다 서부 시칠리아 토종품종이다. 체라수오라 올리브는 붉은색이 돌며 매콤한 맛과 쌉쌀한 맛을 특징으로 하며 비안코릴라에서는 풋풋한 녹색이 나며 섬세한 꽃, 야채, 허브향을 발산한다.


시칠리아 산 올리브유를 보고 있자니 시칠리아 요리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엑스트라 버진유는 맛과 향기가 풍부하지만 그렇다고 함께 넣은 식재료의 맛을 압도하거나 덮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음식재료와 오일의 풍미가 만나면서 서로 상호보완 역활을 해 풍미가 강화된다.


그리스식 샐러드, 크로스토네, 피자, 오렌지 샐러드와  환상적 궁합을 이루는 엑스트라 버진 유는 후레쉬한 연성 치즈에 살짝 뿌리면 치즈의 풍부한 맛이 증폭된다. 그릴에 구운 황새치와 궁합을 맞춘 올리브유는 쫄깃한 식감 속에 생선살의 고소함이 배어 나온다. 토마토, 완두콩에 익힌 꼴뚜기 요리에 듬뿍 뿌린 올리브유는 토마토소스 맛을 한결 부드럽게 하며  꼴뚜기의 맛과 잘 융합된다.





                           <이탈리아 마트에서 구입가능한 올리브 오일 종류>

처음 이탈리아에 왔을 때 이탈리아인들은 올리브 오일만 먹는 줄 알았다. 그러다 이탈리아어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슈퍼 진열대에 있는 땅콩유, 옥수수유, 해바라기유, 쌀로 만든 식용유가 눈에 들어왔다. 최근에는 에스닉푸드(Ethnic Food) 코너에 가면 중국산이지만 참기름도 있다.


마트에서는 보통 엑스트라 버진유(Olio Extra Vergine di Oliva), 그리고 버진 올리브유(Olio Vergine di Oliva), 올리브 오일(Olio di Oliva composto di oli di oliva raffinati e oli di liva vergini)를 판매한다. 위의 올리브유는 압착한 후 얻어진 올리브유를 검사한 후 식용관점에서 품질의 결점정도와 산도를 기준으로 분류한 것이다.


무결점이며 산도가 0,8 이하이면 엑스트라 버진유로, 약간의 결점은 있으나 산도가 2% 미만이면 버진 올리브유로 분류된다. 만일, 결점이 확연하고 산도가 2% 이상 일 경우 람판테 올리브유(Olio di Lampante)로 구분되며 이건 식용으로 적당치 않아 정제 과정을 거친다. 정제를 통해 좋지 않은 향, 색깔 , 산도를 대폭으로 낮춘 뒤 올리브유나 엑스트라 버진유를 섞으면 올리브 오일(Olio di Oliva)로 변하는데 올리브 열매 자체의 영양성분이나 향기와 맛은 줄어들지만 건강에는 무해하다. 올리브 오일의 중성적 특징 때문에 야채나 참치의 장기 보존 유나 튀김, 조리시간이 긴 요리에 적당하다.


올리브를 압착하고 남은 부산물은 사료로 쓰거나 건조시킨다. 건조된 부산물에는 아직 올리브유가 소량이지만 남아있기 때문에 화학 용매제에 담가 기름을 추출한다. 이 걸 산사 올리브유( Olio di Sansa Greggio)라 하는데 식용으로 부적합하지만 정제를 하면 무해하다. 정제된 산사 올리브유(Olio di Sansa Rettificato)란 이름으로 시중에서 팔리며 튀김용 기름으로 주로 사용된다.


◆ 일부 사진은  ULIVETI MEZZAPELLE  웹사이트에서 사용허가를 받았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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