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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궁합이 맞는 오렌지 와인

와인별곡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17. 12. 1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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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계절이라 따뜻한 것이라면 뭐든 좋다. 빨간색의 모자와 장갑,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치찌게...그리고 홍시가 빠질 수 없다. 홍시는 문 밖에서 나는 찬바람 소리를 들어가며 아랫목에서 홍시를 두 세게 가뿐히 먹어 치우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홍시를 한 입 무는 순간 속 살에 갇혀 있던 싸늘한 달콤함이 입안에 퍼지는 즐거움에 윗목에서 떠들고 있던 TV는 외면당한다.


잘 익은 홍시 빛의 온기가 와 닿는 오렌지 와인은 겨울과는 궁합이 맞는다. 화이트 와인처럼 청포도로 만들지만 시음 적정 온도는 겨울철 적정 실내온도(섭씨 18~20도) 보다 약간 낮은 16~18도가 좋다. 외출에서 돌아온 후 추위에 곱은 손이 냉장고를 더듬어 화이트 와인을 꺼낼 필요 없이 집 어딘가 놓여 있던 오렌지 와인을 열어 마시기만 하면 된다.


오렌지 와인의 따뜻함은 이 와인을 처음 만난 7월 달의 개인 추억과도 닿아 있다. 32도가 연일 계속되던 날 나는 고리지아(Gorizia)의 폭염 속에 있었다. 고리지아는 이탈리아에서 오렌지 와인의 탄생지인 오스라비아(Oslavia)를 가려면 꼭 지나야 하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원래 이탈리아 영토였지만 1947년 정치적인 이유로 슬로베니아 국경을 맞대고 있던 고리지아 일부가 분리되면서 두 개의 고리지아가 탄생했다. 이탈리아령 고리지아와 슬로베니아령의 노바고리까(Nova Gorica)는 원래 하나 이었던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르다. 두오모와 중세고성이 빼곡하게 들어서있는 고리지아 고시가지와 고층 아파트 단지, 쇼핑센터와 카시노가 즐비한 노바고리까는 서로 결합될 수 없는 고전과 현대의 극이 한 곳에 공존한다.


내가 홍시 색깔에 비교한 오렌지 와인은 홍시는 물론 오렌지와는 전혀 무관한 와인이다. 오스라비아에서 생산되는 와인 색깔을 처음 본 영국의 와인 수입상 눈에 오렌지 빛으로 비춰진 연유로 와인이름이 오렌지 와인으로 굳어버렸다. 즉, 오렌지 와인은 오스라비아 경계 밖에 사는 이탈리아인이나 외국인들 사이에 통하는 이름이고 이곳 사람들은 '리볼라'로 부른다.


리볼라는 청포도 품종이름이며 오스라비아인들이 옛날부터 만들어 왔고 즐겨마시던 와인이다. 청포도를 레드와인처럼 마시고 싶던 이들의 희망이 오렌지 와인의 시작이다.


오렌지 와인은 다음 과정을 거친 후 만들어진다. 리볼라 포도를 압착해 포도주스를 얻은 다음 껍질, 씨, 포도자루를 버리지 않고 주스에 남겨 침출 한다. 침출 기간 동안 와인은 공기와 접촉하면서 산화가 일어나 주스의 색깔이 오렌지빛으로 변하게 되며 와인은 다양하고 독특한 향기와 맛을 얻는다. 껍질과 포도씨에서 녹아 나온 탄닌은 오렌지와인에 구조감과 장기숙성력을 불어넣어 와인은 마치 레드 옷을 입은 화이트처럼 변한다.


오렌지 와인 생산자들은 지방도로 양옆에 나있는 도로를 따라 서로 이웃하고 있지만 와인 맛과 향은 밤과 낮처럼 다르다. 이 차이는 침출 기간(주스와 껍질,씨가 섞여 있는 상태에서 여러 성분이 침출되는 기간)과 침출 할 때 사용하는 용기의 소재와 크기가 결정한다.


생산자들한테 동네의 맛 집을 소개하여 달라고 했더니 고리지아에 소재하는 "Trattoria La Luna"에 가보라고 했다. 문 앞에 걸려있는 메뉴판만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 칠 뻔했던 평범한 건물 정면에 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전통의상을 입은 여종업원들이 테이블을 옮겨 다니면서 주문을 받거나 완성된 음식을 테이블로 나르느라 바빴다.


우리가 안내된 2인 용 테이블 위에 놓인 식기와 테이블 세팅의 위치가 색달랐다. 호기심이 일어 주위를 둘러보니 동일한 색과 디자인을 용납하지 않는 듯 테이블은 가지각색의 장식으로 치장되있다. 벽과 천장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거는 장식으로 한 껏 멋을 부려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자아냈다.


La Luna 트라토리아(레스토랑)는 오스트리아,헝가리,슬로베니아 요리와 삼 개국 음식을 이탈리아인의 입에 맞게 변화시킨 퓨전요리가 전문이다. 손으로 일일이 쓴 메뉴가 정성스러웠으며 메뉴 구색은 겨울에 재사용해도 될 만큼 식자재와 요리법이 풍성했다. 고리지아 전통 야채 스푸인 요타(jota)로 식욕을 깨운 뒤 이 트라토리아의 자랑인 감자 요리를 시켰다.


자두의 시큼 달큼함과 감자의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룬 수시네 뇨끼(삶은 감자와 밀가루를 섞은 반죽을 도토리알 크기로 만든 것)와 짙은 고기 소스로 맛을 낸 슬로베니아식 뇨끼는 수준급이었다.


매콤하며 구수한 굴라쉬, 고소한 버터 향기의 튀김옷이 감싸고 있는 쫄깃한 식감의 루브리얀스카(Lublijanska di maiale,슬로베니아식 돈가스)는 오늘 식사의 정점이었다. 접시에 남은 소스를 빵으로 닦어 먹는 우리의 식욕을 눈치 챈 여직원이 따끈한 프리고(frico)를 서비스로 내온다. 프리코는 갖찐 감자를 으깬 반죽에 볶은 양파와 몬타시오 치즈로 맛을 낸 것을 프라이팬에 살짝 구운 요리로 오렌지 와인의 밑바닥을 금새 드러내게 만드는 와인 도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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