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로마근교에 있는 한 와이너리를 방문한적이 있다.와이너리 주인장하고 몇 번 이메일이 오가고 방문날짜와 시간을 정했다. 주인장은 약속시간 10분전에 미리전화하면 마중나가겠다고 이메일 끝에 적었다.
약속당일날 우리일행은 딴청 피우다 약속시간에 늦게되었고 곧장 와이너리로 찾아갔다. 내비게이션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까지 왔는데 간판이 눈에띄지 않고 주위는 잡초만 무성하고 폐허나 다름없는 건물하나만 덜렁서있었다. 그제서야 우리는 주인장이 약속시간 몇 분전에 전화하라고 했던게 기억났다.
그래서 전화를 해서 약속장소를 다시정하고 그장소가서 주인장을 만났다. 주인장이 자기차를 따라오라고 해서 마치 병아리가 암탉 꽁무니를 쫓아가듯 따라갔다.5분쯤 갔을까. 우리가 도착한 곳은 먼저왔던 그 폐허였다.주인장이 차에서 내리더니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고 쓰러져가는 건물쪽으로 걸어갔다.
순간"이사람 우리를 납치해서 이건물에다 산매장 하려는게 틀림없어,여기서 도망가야해"라는 생각으로 소름이 돋았고 오른발은 이미 엑셀레이터 페달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주인장이 우리를 납치할만한 이유가 없으니깐 밑져야 본전이라는 셈치고 그를 따라가기로 했다. 주인장은 폐타이어 더미가 있는곳으로 갔고 그걸 치우자 그 밑으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드러났다.
"이사람 점점 수상해지는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끝까지 가보자는 허세가 생겼고 지하실로 따라 내려갔다.지하실엔 전기가 않들어오는지 그는 몇 개의 촛 불을 켠다음 여기저기에다 놔두었다. 켜진 촛 불은 자기 주위를 드러냈고 그렇게 대여섯 군데의 촛 불 켜진 곳을 눈으로 조립해 짜맞춘 풍경은 3층으로 된 바리크 열이 사방을 둘러싼 와인 숙성실이었다. 촛 불을 바리크에 갖다 대자 수확연도,품종명이 적힌 명찰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인장은 시음하러 가자고 했고 촛 불을 훅 불어 끈다음 손가락으로 계단을 가리켰다. 밖으로 나온 그는 폐타이어를 원래자리로 옮겨놨다.이번에는 잡초가 그의 키만큼 자란 곳으로 우리를 데려갔고 잡초 키가 그의 무릎에 닿는 곳에 다다르자 아담한 집이 나타났다. 문을 열고 '스위치 작동소리가 나자 등이 환하게 밝혀졌다. 환해진 집내부 한가운데는 등 빛을 반사하고 있는 크리스탈 와인잔과 구운지 얼마않되어 고소한 향기가 올라오는 폭신폭신한 포카차빵이 담긴 접시가 세팅되있는 정갈한 테이블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여기에 온 목적인 "체사네제 델 필리오"레드와인을 원없이 시음했다.로마근교에서 생산되는 짙은 루비색의 강건하면서도 집중된 맛과 장기숙성력이 있는 로마 토착품종 와인이다. 시음실에 딸린 주방에는 엄청난 빈병이 쌓여있었는데 어제 전문인 시음회에서 해치운 와인이라고 주인장이 덧붙인다.
시음후에 약간 알콜기운도 돌고 낯가림이 어느정도 사라지자 " 여기는 여느 와이너리와는 다르게 좀썰렁하고 지하셀러 입구가 독특해요"로 말머리를 시작해서 주인장의 설명을 유도했다.
"이곳에 간판을 내걸으면 도둑들이 이곳이 양조장인걸 알고 트럭을 가져와서 통째로 와인을 실어가버려요. 그래서 도둑의 접근을 막으려면 폐허로 위장을 해야 와인을 지킬 수 있어요"
여태까지 에피소드가 내가 '체사네제델 필리오(Cesanese del Piglio)'와인을 처음 만난 사연이다. 가끔 '체사네제'란 단어를 들으면 주인장 얼굴과 폐타이어가 쌓인 셀러입구가 겹쳐서 떠오른다.이 글을 쓰면서 그의 웹사이트에 가서 혹시나 하고 주소와 약도를 뒤졌다. 내가 주인장에게 처음 이메일 넣었을때와 다름없이 그대로다.
▶혹시 로마에 가게되면 EST! EST!!EST!!! 와인과 함께 "체사네제델 필리오" 와인도 시도해 보세요. 당분간 로마여행 계획이 없으면 9월 1~3일간 대전에서 열리는 '대전국제와인페어'로 오세요. 대전무역센터 치타델비노 B31,B32,B33부스 에 오면 이 와인을 시음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않되면 이 블로그 읽으면서 눈으로 건배하시죠.(체사네제 델 필리오 품종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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