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석식 같은 간식, 간식 같은 석식

와인별곡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22. 5. 17. 22:12

본문

와이너리에서 즐기는 아페리티프,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나요? 아페리티프는 이런 유의 식사를 일컫는 공통어이고 이탈리아 피에몬테주는 이를 메란다 시노이라 Merenda Sinoira라고도 불러요. 간식을 뜻하는 메렌다(Merenda)와 석식을 뜻하는 시노이라(Sinoira)를 합쳐놓은 단어예요. 간식과 석식? 서로 섞이지 않고 튕겨져 나갈 것만 같은 상대어를 결합해 놓았네요.

 

메란다 시노이라는 북이탈리아 피에몬테 농부들이 즐기던 풍습이에요. 고단한 밭일을 마감하는 오후 5시경, 농부들은 농기구를 잠시 내려놓고 땅에 빙 둘러앉아 빵, 살라미, 치즈를 먹으면서 허기를 달래 곤 했죠. 평범한 음식이지만 영양가 높고 배를 채우기는 적당한 건강식이죠. 그래서 메렌다 시노이라를 해석하면 저녁식사 후 느끼는 만복감을 주는 간식  이 가장 적당한 표현이죠.

 

예전에는 협업이 필요한 힘든 노동이 끝나면 농부들은 의례적으로 이 시간을 가졌다고 하네요.  거의 밥상이 부러질 정도로 다채로운 음식들이 차려졌다고 해요. 여기에다 돌체토, 바르베라 레드와인을 곁들었다고 해요. 비싼 와인이 아니고 단순한 맛이 나면서도 맛이 좋은 무난한 와인을 마셨다고 해요.

 

그러고 보니 메렌다 시노이라는 아페리체나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내요. 오후 5시면 이탈리안 바 Bar의 쇼윈도를 장식하고 있는 형형색색 음식들이 바로 메렌다 시노이라 전통을 현대식에 맞게 해석한 신 음식 문화죠.

 

※아페 리체나: 아페리티보와 체나(석식)의 결합어.  오후 5시 이후의 독특한 바 Bar 문화로  핑거푸드나 간단한 음식이 주를 이루는 뷔페를 말한다. 와인, 칵테일, 버무쓰 등의 가벼운 알코올과 즐길 수 있는 저렴한 석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

파스콸레 펠리세로 와이너리가 생산하는 와인들. 메렌다 시노이라에 제공되는 와인들은 음식과 페어링이 잘 맞는다

최근에는 몇몇 와이너리들도 와인 애호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 전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자신이 만든 와인과 페어링이 잘되는 간단한 음식을 결합한 메뉴를 선보이는데요. 아무래도  와이너리가 운영하는 관계로 와인의 가짖수에 힘이 실렸어요.

포도밭 주변의 경치

제가 다녀왔던 파스콸레 펠리세로(Pasquale Pellisero) 와이너리는 바르바레스코 와인과 돌체토, 바르베라 와인에 어울리는 메뉴를 선보이고 있더군요. 먼저 식사에 들어가기 전에 포도밭을 산책해요. 로제 와인을 마시면서 언덕을 걸어갈 때 주변에 펼쳐지는 광경이 황홀하답니다. '내가 마시고 있는 와인이 이런 환경에서 나오는구나'를 알게 되는 기쁨에 마냥 가슴이 설레죠. 날씨가 비교적 좋은 봄에서 늦가을까지는 포도밭 정상에서 메렌다 시뇨리아를 즐길 수 있다고 하네요.

 

화이트 와인부터 어린 레드 와인, 묵직한 바르바레스코 와인 순서에 맞추어 랑게 음식이 서빙이 되더군요. 가볍고 감칠맛 나는 치즈와 살라미로 시작해서 따끈하고 부드러운 식감의 플랑, 묵직한  고기 타르타르, 수제 햄버거가 나왔어요. 마지막은 초콜릿 케이크와 디저트 와인으로 마무리했는데 디저트 와인은 주인 식구가 마시려고 만든 수제 파시토 와인을 내 왔어요.

 

가격도 비싸지 않고 무엇보다 와인의 풍미를 끌어올리는 음식과 궁합을 맞춰본다는 게 멋진 아이디어로 보였어요. 그리고 시간의 바늘을 과거로 돌려 18세기 이탈리아 농촌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답니다.

깔끔한 테이블 세팅
동네 시장표 살라미

 

토마치즈
소고기 타르타르 와 미니 햄버거
파시토 와인과 함께한 디저트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