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갈라진 틈으로 유황가스가 흘러나오고, 새어 나온 유황 냄새를 호흡하면서 자기 몸을 키우는 포도가 있을까? 유황 향이 스며든 와인은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하다.
남이탈리아 캄파니아주 지도를 들여다보면 나폴리가 있고, 나폴리 서부 해안을 타고 가다 보면 도로 끝에 캄피 플레그레이 Campi Flegrei 지방에 이른다. 캄피 플레그레이는 불의 땅을 뜻하며 의미대로 20여 개의 분화구가 해안을 따라 나있다. 넓이가 230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며 이 면적은 240 ㎢ 의 경남 통영시와 비슷한 넓이다.
인공위성이 찍은 사진을 보면 실감이 나는데 20여 개의 분화구와 칼데라 호수가 이곳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분화구는 숲으로 변했고 주변은 건물이 우후죽순처럼 나있어 겉으로는 화산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땅 속 4km를 파내려 가면 마그마 방이 끓고 있다.
캄피 플레그레이는 1538년에 있었던 폭발을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휴화산이다. 30km 떨어져 있는 나폴리 동쪽에 버티고 있는 베수비오 화산과 함께, 나폴리를 폼페이처럼 한 순간에 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가공할 만한 물리적 위협보다 더 위험한 것은 우리 세대에 화산이 안 깨어나기를 바라는 요행 주의다.
베수비오는 성층화산(원뿔형태)의 수직형태나 캄피 플레그레이는 낮은 분화구가 넓게 퍼져 있는 수평 형태다. 탄생 시점을 볼 때 베수비오보다 3만 년 앞선다. 마지막 폭발이 있던 1538년을 포함해 최소 50번의 화산 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중 가장 눈여겨볼 것은 1차와 2차 폭발이었다. 즉, 평평한 땅을 화산으로 탈바꿈하게 만든 VEI 7급( 백두산 폭발 위력과 동등) 위력의 메가급 폭발이다.
1차 폭발은 '이님브리테 캄파나(Ignimbrite Campana)'라 하며 3만 9천 년 전에 발생했다. 이폭발로 대형 분화구가 솟아올랐다. 이때 위력이 얼마나 컸는지 화산 쇄설물(화산의 분화로 분출되는 크고 작은 파편이나 고체물질)과 화산가스가 만든 기둥이 지상 40km로 치솟았다. 화산이 게워 낸 용암은 50km 멀리 까지 흘러갔다. 화산재는 오랫동안 대기 중에 잔존해 기후변화를 일으켰고 그 당시 유럽에 생존하고 있던 네안데르탈인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
두 번째 폭발은 1만 4천 년 뒤에 발생했고 '투포 잘로 나폴레타노(Tufo Giallo Napoletano)'라 한다. 이전에 형성된 대형 분화구 안에서 20 여개의 국지적 폭발이 발생한 거다. 결국, 커다란 칼데라 내부를 20여 개의 화산이 구멍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현재의 형태가 이루어진다.
5백 년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캄피 플레그레이 땅 속은 끊임없이 화산의 징후를 내보내고 있다. 앞에서 말한 벌어진 땅 틈에서 유황가스가 스며 나오는 분기공(fumaroles)이 그거다. 다른 증후는 브라디시스모(bradisismo)다. 즉, 땅 표면이 부불 었다 제자리로 돌아왔다를 반복하는 거다.
포쭈올리라는 해안 도시는 해저가 몇 년간 조금씩 솟아오르고 있다. 부불어 오른 해저는 육지로 변 해 해안이 육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결국 항구도 새롭게 드러난 해안가로 옮겨가고 있다.
캄피 플레그레이 와인
캄피 플레그레이에서 자라는 포도와 와인은 어떤 맛을 낼까? 모든 것은 화산이 좌지우지한다. 50번이나 땅을 풍지박살 낸 화산에 잘 견딘 강인한 유전자가 살아남았다. 팔랑기나(falanghina)와 피에디 로쏘(piedi rosso) 품종을 들 수 있겠는데 이곳뿐만 아니라 캄파니아 주 전체 그리고 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지방에도 번성하고 있다. 그러나 캄피 플레그레이 환경에 적응한 품종은 플레그레아 생채형(Flegrea Biotype)으로 분류하며 세계 유일하다.
팔랑기나는 화이트 품종이며 원래 그리스 품종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탈리아 해안에 상륙했을 때 첫 발을 내린 곳이 캄피 플레그레이였다고 전한다. 그들은 고국에서 팔랑기나를 들여와 심었는데 초기에는 고향의 관습을 따라 땅에서 자라게 했다. 그러나 이곳의 습기 찬 바닷바람과 지열로 인해 농사에 실패했다.
나중에 농부들이 꾀를 내어 땅에 나무 기둥을 박은 다음 기둥 주위를 포도가지가 타고 자라게 했다. 그래서 어원은 기둥을 뜻하는 라틴어 falo(팔로)에서 따 왔고 후에 팔랑기나로 정착했다.
피에디 로쏘는 캄파니아 해안가가 원산지인 레드 품종이다. 워낙 오랫동안 재배했기 때문에 지방마다 클론이 자랐고 방언과 동화가 일어나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발음은 다르지만 뜻은 하나같이 '비둘기 발'이다. 포도송이가 익을 무렵이면 포도 자루가 붉게 물드는데 그 모양이 마치 비둘기 발가락과 흡사하다.
팔랑기나와 피에디 로쏘 와인은 포도 아로마와 화산 뉘앙스가 겹쳐진다. 와인에 따라 정도가 다르지만 어떤 와인은 내추럴 와인과 흡사한 개성을 낸다. 시트론, 청사과, 허브, 꽃 향기의 신선한 포도 아로마를 발산한다. 여기에 고무 탄내, 유황, 버섯, 바닷 비린내, 혈액, 때로는 조개나 굴 껍데기 같은 오묘한 향기를 발산한다. 희귀한 와인이라 맛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향기 층이 복합적이라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석식 같은 간식, 간식 같은 석식 (0) | 2022.05.17 |
---|---|
마테라(Matera) 랜선여행- 동굴유적지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곳 (0) | 2021.03.29 |
이탈리아의 맨해튼- 중세 탑으로 알려진 산지미냐노 (0) | 2021.01.29 |
이탈리아인들은 성탄절에 어떤 음식을 먹을까요 (0) | 2020.12.28 |
토리노에 첫 눈이 내렸어요(동영상) (0) | 2020.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