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 왔다. 뭔가 든든하고 따뜻한 국물이 그리워진다. 투박한 그릇에 푸짐하게 담겨 나오는 음식들. 비주얼은 뒤쳐지지만 정성은 선두를 다투는 엄마표 음식이다.
이탈리아 인들이 떠올리는 겨울 음식 중 하나가 폴렌타(polenta)다. 적당한 우리말을 고르자면 옥수수 죽이 맞다. 사실, 폴렌타는 사계절 음식이라 해야 맞다. 다만, 폴렌타는 고기나 치즈와 먹는 이탈리아 식습관상 식감이 묵직한 이유로 겨울에 적합한 음식이란 선입관이 있다.
폴렌타는 알프스나 아펜니노 산골의 전통 맛으로 알려져 있다. 스키장이나 등산 루트로 각광받는 산악지대에 폴렌타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다. 꼭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산 공기 쐬러 간다는 핑계로 산에 올라가는 이탈리아인들이 꽤 많다. 이들의 저의는 산 자체보다는 폴렌타 식탐 해소로 봐도 좋을 거다.
뜨끈한 폴렌타 한 접시와 바르베라 한 잔을 곁들이면 포만감과 몸이 후끈 달아오면서 한 주의 피로가 일순간 몸에서 빠져나가는 후련함 같은 것 말이다.
최근에 베르가모에 출장 갈 일이 있었는데 (베르가모 소개는 '베르가모를 알려면 여기에 가라'blog.daum.net/baeknanyoung/215?category=4332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나름 폴렌타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수정해야 했다.
베르가모는 알프스 산을 북쪽에 두고 있는 평원 도시라 나의 고정관념에 따르면 폴렌타와는 무관한 도시다. 하지만 내가 간 레스토랑마다 폴렌타가 감초처럼 메뉴에 등장했다. 그것도 평지에서 나는 계절 식재료와 결합한 형태로 전채요리부터 디저트까지 다양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산골 폴렌타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산악 지역 특성을 살린 스페짜티노 폴렌타와 곤차 폴렌타가 대표적이다. 앞의 것은 폴렌타 위에 사슴, 멧돼지, 살시차 돼지 순대를 레드와인과 토마토소스에 뭉근히 익힌 고기 요리가 얹혀 나온다.
두 번째의 곤차 폴렌타는 연성 치즈를 폴렌타에 녹인요리인데 구수한 맛과 크리미 한 식감이 돋보인다. 폴렌타를 포크로 퍼올리면 버터 향과 함께 녹은 치즈가 고무줄처럼 딸려 올라온다. 이러한 요리들은 원조란 뜻에서 클래식 폴렌타라 한다.
베르가모식 폴렌타는 좀 더 식재료의 다양성과 응용력이 반짝인다. 일단, 핵심 재료인 옥수수 가루를 보자. 보통 옥수수 가루는 폴렌타 비앙카(백색 폴렌타) 또는 폴렌타 잘라(황금색 폴렌타)가 원료다.
타라냐 폴렌타(taragna polenta)라 불리는 베르가모식 폴렌타는 메밀이 들어간다. 옥수수와 메밀을 맷돌에 갈았는데 가루를 손가락 사이에 넣고 문지르면 고운 옥수수 가루와 메밀 겨의 까칠함이 느껴진다.
일반 옥수수 가루 폴렌타는 맛이 나는 둥 마는 둥 밋밋하지만 크리미 한 식감이 돋보인다. 허나 타라냐는 구수함이 짙고 메밀 겨의 꺼끌 거림이 혀에 닿으면 입은 반사적으로 폴렌타를 씹으려고 하며 이때 입안에 은은한 여운이 번져나간다.
사실, 폴렌타는 한식 식단으로 치자면 밥에 해당된다. 밥은 다양한 반찬과 혼합이 됨으로써 조화로운 맛을 얻는다. 또한, 밥과 반찬과 섞이면 간이 맞게 되어 맛세포는 음식이 맛있다고 인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폴렌타 역할도 주요리를 보조해 주지 절대로 맛이 튀면 안 된다. 폴렌타를 먹는 방식도 다양하다. 처음부터 폴렌타와 소스를 한 번에 섞는 비빔족이 있는가 하면, 한 번에 먹을 만큼의 폴렌타와 소스를 섞어 먹는 한입족이 있다.
폴렌타 만들기 (6~8인분 기준) ~ 이탈리아 식품 체인 스토어 Eataly가 제안하는 레시피
재료: 폴렌타 가루 500그램, 물 2리터, 소금 2~3 티스푼, 약간의 올리브 오일
1. 물이 따뜻해지면 먼저 소금과 오일을 넣고 폴렌타를 조금씩 붓는다. 물이 뜨거우면 덩어리가 생기므로 물의 온도가 중요하다. 가루를 다 넣을 때까지 막대기로 저어가며 천천히 붓는다.
2. 같은 방향으로 계속 저어주기를 한 시간 정도 한다.
3. 폴렌타가 걸쭉해지고 수저를 젖는데 힘이 들어가면 완성이다.
다음은 블로그 운영자가 베르가모의 여러 군데 식당에서 맛 본 폴렌타 요리를 소개하겠다.
전채요리
다 수의 베르가모 전채요리가 한 접시에 모듬식으로 나오는데 그중 폴렌타는 소금에 절인 엔초비를 가니시로 곁들였다.
프리미(파스타나 리조토 요리)
베르가모의 전통 치즈인 탈레조와 버터를 폴렌타가 다 익었을 무렵에 넣는다. 녹은 치즈가 폴렌타와 딸려 오면서 버터향이 퍼진다.
세콘디(메인 요리)
아마도 폴렌타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베르가모는 교통 요충지인 롬바르디아주에 속한 도시라 이탈리아 각지에서 식자재가 모여든다. 이런 천혜의 조건은 풍성한 폴렌타 식문화를 낳는데 기여를 했다.
칼라마리 폴렌타~ 이태리산 오징어를 토마토에 익힌 소스와 곁들여 나온다.
발칼레피오 와인 브라자토 폴렌타~ 베르가모산 레드 와인을 넣고 장시간 끓인 소고기 스튜요리다.
바칼라 폴렌타: 염장 대구를 버터에 졸인 요리다.
디저트
폴렌타 에 오세이~ 베르가모 전통 디저트다. 오목한 밥그릇을 엎어 놓은 모양이다. 초콜릿으로 만든 새가 황금 빵 위에 앉아 있는 모양인데 마치 새 둥지를 지키고 있는 어미 새를 연상시킨다. 폴렌타 빵이 촉촉한 카스텔라를 감싸고 있다. 폴렌타의 폭신하면서도 알갱이가 씹히는 식감과 카스텔라의 부드러움이 콘트라스트를 이룬다.
폴렌타는 식으면 딱딱하게 굳는다. 물이나 우유를 조금 붓고 다시 끓이면 죽 상태로 돌아간다. 먹고 남은 폴렌타는 훌륭한 빵 구실을 한다. 폴렌타가 미지근할 때 직사각형 빵 틀에 부어 식게 놔둔다. 이렇게 굳은 폴렌타를 1cm 두께로 썬 다음 팬에 살짝 굽고 그위에 치즈, 파테, 바냐 카우다 소스(피에몬테식 마늘소스)를 얹히면 훌륭한 부르스케타가 된다.
보통 이탈리아인들은 폴렌타를 먹고 싶으면 날짜를 잡아서 산으로 올라간다. 요리시간이 길고 준비할게 많은 폴렌타를 가정에서 좀처럼 요리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베르가모 인들은 산악 음식을 평야로 끌어내려와 일상적인 맛으로 돌려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몇 년 전부터 즉석 폴렌타 가루가 시판되어 가정에서도 쉽고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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