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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렌고(Marengo)와이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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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20. 2. 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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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렌고 부부>   

                                        

마렌고 가족은 지인의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1899년 부터 와인 양조를 해 왔고 현재는 7헥타르 포도밭을 경작하고 있다고 했다. 순간 내 머리속은 이런 생각이 스쳤다. 마렌고 가족이 운영하는 와이너리가 속하는 라모라 마을은 지속적으로 포도밭 면적이 늘어난 지역이다. 포도밭 매매가 지금보다 훨씬 저렴했을 십 년 전에 재빨리 움직였다면 적어도 두 자리 숫자로 늘릴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한자리 숫자에 머문 건 어쩌면 강산이 열두 번도 변하는 동안 밭 늘리는 데는 관심 끊고 포도농사만 지었거나 친척들간에 불란 때문에 포도밭이 두 동강 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거다.


몇 달 후 지인한테 부탁해서 방문 예약을 넣었다. 그러나 마렌고와의 만남은 예약 날짜 이틀전에 있었다. 그란디 랑게라는 대형 시음회였는데 마렌고 스탠드는 어찌 된 영문인지 지키는 사람은 없었고 몇 개의 병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약속 시간에 도착하자마자 사모님한테 스탠드에 들렸지만 아무도 없었노라고 하자 오랜만에 동료 생산자를 만나서 마실 다니느라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고 했다. 나한테는 그 말이 자리를 비워도 와인이 좋으면 사람은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배짱으로 들렸다. 그녀의 첫인상은 약간 무뚝뚝해 보였지만 강인하고 솔직해 보였다.



와이너리 건물은 바롤로 포도밭 중 해발고도가 높은 축에 드는 라모라 마을 세라데나리에 위치했고 전망이 뛰어났다. 양조장과 숙성실은 지상 1층에 지어졌고 내부는 청결하고 정리정돈이 잘되어 있었다. 양조 기계들은 각자 기능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적절한 동선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일명 '바리까이아'라 불리는 숙성실은 중앙 통로 좌우로 프랑스산 바리크가 쌓여 있었다. 보는 순간 현대방식으로 바롤로를 숙성하는 모더니스트라 단정 지었다. 후에 시음 할 때야 섣부를 단정이었음을 알았다.


<바리까이야 숙성실,마렌고 바롤로는 여러번 사용한 바리크 용기 사용 횟수와 네비올로 작황상태를 가만해 숙성한 뒤 블랜딩 한다>


최근에 개조한 시음실은 모던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었고, 특히 와인 사진 찍기에 적합한 조명 배치와 실내 밝기가 마음에 들었다. 알고 보니 사모님은 인스타 그램 계정을 갖고 있으며 시음실에서 찍은 사진을 자주 올린다고 했다.


마렌고는 랑게 토착 레드 품종인 돌체토, 바르베라, 네비올로가 주력이며 현재는 화이트 와인 생산계획은 없다. 총 7헥타르 밭에서 4헥타르는 바롤로 와인 양조에 쓰일 네비올로가 재배된다. 바롤로가 포도밭의 57%를 차지하는 포도밭 대비 바롤로 비율이 높은 와이너리다. 마렌고가 바롤로 생산자로 입지를 굳히는데 큰 역할을 한 부르나테, 브리꼬 델레 비올레, 부르나테 리제르바 바롤로가 4헥타르 밭에서 온다.


네비올로 달바 와인도 주목할 만하다. 와이너리에서 20km거리 떨어져 있으며 로에로 지역에 속하는 발마조레(Valmaggiore)밭에서 재배한 네비올로로 만들었다. 발마조레는 경사가 심해서 손농사만 가능하고 네비올로에 적합한 미세기후와 바롤로 네비올로 수확시기와 비슷한 10월 중순에 한다. 최근에 몇 군데 바롤로 생산자들이 발마조레 밭을 구입하면서 doc급 네비올로 투자 적합지로 떠오르고 있다.


<네비올로 달바 발마조레 와인 2018년 빈티지>


2016년 빈티지가 주를 이룬 마렌고 MGA(크뤼) 바롤로는 마렌고 가족이 포도밭에 얼마만큼 정성을 기울이며 다년간의 수확 경험을 표출하고 있었다. 장미, 민트, 체리, 감초 향이 은은하며 살짝 후추향을 머금고 있었다. 소량의 바다향기도 스쳤는데 마르코 사장님의 의견에 따르면 입에 느껴지는 쌉쌀함 때문이라 했고 바롤로 구조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했다. 산미와 타닌의 밸런스가 좋고 맛의 집중력이 뛰어나 오랜 여운을 남겼다.


<바롤로 부르나테 2016와 바롤로 부르나테 리제르바 2015>


와인 어디에서도 바리크 오크의 개성은 없었다. 짙은 색, 묵직함, 실크 타닌등 군더더기는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슬라보니아 전통 오크에 숙성했을 때 오는 순수한 네비올로가 다가왔다. 이 모두를 양조한 마르코 사장에 따르면 바리크는 여러번 사용했으며, 용기 사용 횟수와 네비올로 작황상태를 가만해 숙성한 뒤 블랜딩을 한다 했다. 결론은 마렌고는 전통방식을 가미한 현대주의자라 할 수 있겠다. 밭의 개성과 오크통의 정확한 이해와 이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경험만이 끌어올릴 수 있는 품질 수준이 아닐까 싶다.


포도밭에서 전정을 막 끝 낸 마르코 사장님이 시음실에 얼굴을 드미는 순간 고 정주영 회장이 환생한 줄 알았다. 와인 얘기를 할 때 눈은 어린아이처럼 빛났고 수줍음이 얼굴에 번졌다.


화재가 와인이면 2박 3일을 훌쩍 넘기는 건 대수지만 축구의 '축'을 듣는 순간 '도망 모드'가 작동할 분위기를 풍겼다. 천직이 최상의 바롤로 생산인 부부, 우직하고 순수하며 와인밖에 모르는 남편과 터프하며 무뚝뚝하며 직설적인 부인이 서로를 보완해가는 마렌고 부부의 금실이 이탈리아판 원앙새와 다름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