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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데냐에서 차가운 까리냐노 레드로 더위식히기!!

사르데냐 와인

by 이탈리아 와인로드 2016. 8. 1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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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사르데냐섬의 에메랄드빛 바다는 이탈리아인의 최고 여름 휴양지다.)


필자가 사는 동네의 여행사 쇼윈도에 여름이면 걸리는 사르데냐섬 포스터를 볼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모델이 누워있는 해변의 주인공이 될테야"라는 희망을 마음속으로 품어왔다. 그 꽁꽁 묻어두었던 꿈이 드디어 푸른 바다속으로 다이빙할 날을 맞게 되었다.


사르데냐가 고향인 친구한테 나의 소망을 수줍게 털어놓자 6월말에서 7월초는 관광비수기라 관광객도 적고 항공요금이 저렴하다고 하면서 당장 시도해보라고 하는게 아닌가!! 바닷물이 덥혀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해수욕하기에 적당하다는 말과 함께 친척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B&B(조식과 침대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숙소)의 주소도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망설임없이 곧바로 항공권 할인 사이트 검색을 시작했다. 검색하다 보니 비성수기라도 이미 항공권 좌석이 90%이상 예약돼있었고 검색하는 순간에도 예약가능 좌석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정년 퇴직한 노부부나 여름방학중인 학생들이 비성수기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고객층이였다.


친구의 조언과 항공권 예약을 고려해서 고른 사르데냐섬의 목적지는 술치스(Sulcis)지방으로 사르데냐섬의 남서쪽에 위치한 외진 곳이다. 관광객이 많은 곳을 피하고 싶기도 했지만 예전에 맛있게 마신 까리냐노 와인의 기억이 이곳을 점찍은 이유다. 또한번 나의 이탈리아 여행은 와인을 만나러가는 와인여행으로 둔갑했다.




사르데냐에 도착한 첫 날부터 여행사 포스터 모델처럼 하얀 모래밭에 누워있는 멋진 나의 모습은 포기해야 했다. 한 낮의 기온은 35도 이상으로 피부에 화상을 입지 않으려고 열심히 그늘을 찾아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바닷가로 가면 파라솔 딸린 비치의자를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옮기면서 그늘아래 숨어있었다.


밤과 이른 아침은 17~18도로 급강하해 얇은 옷만 가져간 나에게 동네 옷 가게를 기웃거리면서 긴 팔 웃도리를 사게 만들었는데 이런 널뛰기 기온은 체온조절에 둔감한 내 몸에 도전처럼 느껴졌다.


                                        (위: Is Arenas Biancas해안은 사르데냐섬에서 가장 긴 흰모래사장중 하나다)


이곳에 온지 사흘만에 안사실이지만 햇빛이 가장 뜨거운 오후1~5시 까지는 해변의 파라솔이나 에어콘 나오는 호텔에서 낮잠을 푹자다가 해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오후 5시경부터 커피숖에 가서 시원한 스피릿 칵테일이나 베르멘티노와인을 마시면서 초저녁을 맞는게 이곳의 여름관습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레스토랑과 커피숍만 제외하곤 상가 정문에는 오후 1~5시 영업중단이란 안내문이 걸린 채 굳게 문이 닫혀있었다.


하루는 미스트랄(mistral,프랑스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이 불어와 해수욕 할 수 없는 날이었다. 초속 15-20 m/s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 때문에 바다가 심하게 출렁거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탄티오코(Sant'Antioco)섬으로 짧은 여행으로 그날 일정을 대신하기로 했다. 산탄티오코 섬은 사르데냐섬에 속한 부속섬으로 다리로 연결되있어 뱃 편을 이용하지 않아도 갈 수 있다는 점때문에 본섬(사르데냐)에 실증난 관광객들의 기분전환지로 선호되고 있다.


산탄티오코로 불어오는 미스트랄은 무화과,올리브 나무를 뽑아버릴 기세로 세찼다. 그런 미스트랄을 온몸으로 버티어내고 있는 포도나무가 눈에 들어왔는데 키가 너무 작아서 땅에 납작 엎드린 것처럼 보였다. 거센바람에 휩쓸리지 않게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는 땅은 흰모래사장으로 먹음직스런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녹색의 백련초로 둘러쳐진 울타리와 이국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위:난쟁이 까리냐노 포도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흰모래밭은 알갱이의 결합력이 약해 필록셀라 해충 감염을 억제한다)


이 포도나무는 까리냐노(carignano)품종으로 지중해 연안에서 자란다. 워낙 지중해를 면하고 있는 여러나라에서 재배되다 보니 나라별로 다른 이름을 가진다. 사르데냐는 까리냐노,프랑스에서는  Carignane Noire, Mollard, Girarde, 스페인에서는 Carinena, Mazuela,사르데냐외의 이탈리아(마르께와 토스카나)에서는 Legno Duro로 불린다.

까리냐노 포도도 봤으니 까리냐노 와인에 대한 갈증이 심해졌다. 포도밭에서 멀지않은 칼라셋타란 어촌에 갔는데 쪽빛 바다에 흰 요트가 떠있고 해풍이 지나가는 방향을 따라 길을 낸 골목에는 흰색 회칠을 한 집들이 드리워져 있었다. 무슨 축제가 있었는지 골목마다 바다빛과 흡사한 깃발이 걸려있었다.


                                                         (위:산탄티오코섬의 칼라셋타 어촌)


그리스 산토리니섬의 하얀집과 닮은 바에 들어가 까리냐노 한 잔을 시키니 냉장고에서 꺼낸 와인병에서 따라준다. 바 맨의 와인을 따르는 솜씨를 보니 드라이한 레드와인은 차갑게 마시면 타닌이 강하게 느껴지고 와인향이 제대로 피어나지 못한다는 상식쯤은 알고있을법 했다.


그의 능숙함은 다만 일의 반복에서 온 기계적인 습관쯤으로 여기로 김이 서린 잔에 담긴 까리냐노를 입에 가져갔다. 그런데 갈증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청량감에 온 몸이 서늘해지는게 아닌가! 필자의 상식대로 타닌은 또렷했고 향기는 냉기에 눌려있었지만 차가운 레드와인이 주는 서늘함의 비상식은 상식을 비웃고 있었다.


후에 안사실이지만 술치스의 와인숍이나 동네 수퍼에 진열되있는 와인은 실온과 같은 35도에서 보관되며 필자가 간 어촌의 바처럼 규모가 적은 곳은 변변한 셀러가 없기 때문에 냉장보관이 더위로 부터 와인변질을 막는 유일한 자구책이었다. 더욱이 까리냐노의 냉기는 더위에 지친 이방인들의 목을 타고 온몸으로 흐르니 실온의 레드와인은 오히려 비상식인 셈이다.


(위:사르데냐섬의 특산물중 하나는 코르크로 이를 가공해 다양한 장식품으로 쓴다)


까리냐노 품종이 사르데냐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서 의견이 둘로 나뉜다. 첫번째 의견은 페니키아인이 사르데냐로 상륙한 3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니키아인이 첫 식민지를 건설했던 곳은 Sulcis 마을이였고 지금의 산탄티오코 섬에 위치한다. 페니키아인의 지배력은 본 섬인 사르데냐 남서부로 확장되었고 이들이 들여온 까리냐노 품종의 보급도 식민지 확장속도와 일치했다.


두번째 의견은 16세기 스페인 아라곤왕조가 사르데냐를 지배했던 시기로 보는 설이다. 이설의 근거는 사르데냐 방언에서 찾을 수 있는데 까리냐노를 "Axina de Spagna"로 불렀고 이는 "스페인 포도"란 뜻을 갖는다.


까리냐노 포도밭은 카르보니아 - 이글레시아스 (Carbonia-Iglesias)와 Cagliari(칼리아리)현에 속하는 17군데 마을에 모여있다. 술치스 지방은 바다의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내륙언덕에 위치한 몇 군데 마을과 지속적인 해풍및 사막과 비견될 정도로 건조한 여름기온과 바다의 짠 습기 영향을 받는 해안 마을로 나뉜다. 필자가 반나절을 보냈던 산탄티오코섬의 까리냐노 포도밭 환경은 술치스지방의 포도밭을 축소해논 거울인 셈이다.


내륙쪽에서는 현대적인 방식으로 까리냐노를 재배하지만 해안 쪽 마을은 옛날 로마농부들 방식대로 과일나무(알베렐로, alberello latino)처럼 키운다. 키가 사람의 무릎정도 밖에 않되어 해풍을 덜 맞기도 하지만 포도의 나무 잎 수가 적게 돋아나 건조한 여름의 불필요한 수분증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까리냐노는 술치스 지방의 1700여 헥타르에서 재배되지만 사막과 비슷한 환경에서 가꿔지다 보니 생산량이 낮아 고품질의 까리냐노 와인은 "Carignano del Sulcis DOC"뿐이다. 사르데냐의 다른 지역에서 재배된 까리냐노로 만든 와인은 "IGT della Sardegna"이며 다른 토착 레드품종과 혼합되기 때문에 카리냐노 고유의 맛과 향이 희석된다.


술치스에서는 갖 딴 포도로 드라이,로제,햇와인을 만들며 햇빛에 건조시켜 달콤함이 농축된 파시토와인도 마든다. 드라이 와인은 5개월간 숙성하면 짙은 루비색을 띄지만 2~3년이 지나면 차분하며 투명한 루비색으로 변한다. 방금딴 검붉은 과일향과 금방 깎은 잔듸의 풋풋한 향기가 피어나며 와인이 투명한 루비색이 될 즈음에는 스파이시향이 같이 난다. 타닌은 입안을 꽉 채우지만 부드럽게 혀를 적시며 톡쏘는 산미는 알콜의 매끈함과 결합해 상큼함으로 와 닿는다.


                                                     (위:메사 와이너리의 "까리나노 델 술치스" 와인)